두 책 모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버전의 것이다.
번역본의 질에 대한 것들은 뭐 내가 잘 아는 것도 아니니 말을 삼가겠고.이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의 디자인이란 것이 (극소수의)애(대다수의)증을 받고 있다고 알고있는데, 나는 소수의 애호파에 속하는 것 같다. 이 길쭉길쭉한 판영이 독자의 편의를 의한 최선의 선택인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히 내가 이 시리즈의 디자인을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이 시리즈가 책장에서 어마어마한 규모로 모여있는 것은 참으로 장관이라고 부를 만한 종류의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이런 장관을 제대로 구경할 수 있는 것은 세계문학 전집을 따로 취급해주는 특별한 서비스의 도서관이나, 팔아먹기 위한 최선의 상태로 책을 진열하는 서점 뿐이지만, 이런 장소에서는 단색의 책등들이 빚어내는 색의 콜라주들,붙어있는 흑백사진을 통한 대문호들의 친목회가 그 질서의 느낌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내면서도 역시 변화의 느낌을 자연스럽게 포용하는 듯하다. 누군가가 독서갤에서 이런 표현을 썼을 때는 수많은 비판이 쇄도하였단 걸 알지만, 역시 이런 디자인의 미덕은 '간결함'이라 할 것인 듯싶다.
오 헨리 단편선
마지막잎새와 크리스마스선물 등 그의 명작들을 모르는 사람은 적겠지만, 그 줄거리만 알고 소설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던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도 꽤 적지 않은 수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오 헨리의 단편들이 오직 번뜩이는 플롯들로만 남겨질 것이었다면, 그의 명성은 인터넷 썰들이 대체했을지도 모르겠다. 오 헨리는 이야기를 설계하는 만큼 진행하는 방법도 능숙한 이야기꾼이었다. 붉은 추장의 몸값 외에는 그의 모든 작품들이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진행되는데, 소설들에서 등장인물들 만큼이나 부각되는 것은 작품 밖의 서술자 오헨리 자신이다. 그는 작품마다 당대의 온갖 비유들을 끌어다가 자신의 작품을 치장하며, 드레스 이름을 까먹었다고 자책하거나(백작과 결혼식 손님) 글의 첫머리는 이렇게 쓰지 말라고 독자들에게 당부하는 등(식탁을 찾아온 봄) 너스레를 떠는 모습을 보인다. 해설에서는 메타픽션의 이야기를 꺼내지만, 나에게는 구전 동화의 전통이 더 쉽게 떠올랐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들려주며, 아이들의 상태에 따라 여러가지 미사여구가 덧붙여지고, 마지막엔 교훈을 논평하면서 자식들에게 사랑스러움을 담아 끝내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오 헨리의 이런 서술 태도는 당대 독자들과 뉴욕 시민들에 대한 따뜻함과 연민이 진하게 녹아있는 아저씨의 이야기를 한편 한편 듣는 이야기의 느낌이 난다. 물론 그의 작품이 쉽고 재밌긴 하더라도 시간이 지난 현재는 당대인들은 찰떡같이 알아들었을 비유가 잘 안 통할 수도 있겠으며(본인도 약간 그랬다), 개성 강한 플롯과 서술 태도가 가끔은 충돌하는 듯한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그럼에도, 당대 미국, 특히 뉴욕의 대변자로서 오 헨리의 지위는 오래오래 남을 것 같다.
보이지 않는 도시들
이보이지않는도시들은또한읽히면서기억되며기억되지않는도시이기도하다.그들의이름은쉽게잊혀지고그도시들의이미지는찰나에번뜩거리지만결국우리의마음속으로떠나보내지는이도시들은서로의이미지를교환하고또서로나누면서희미해지며선명해진다.우리는각도시를우리의마음으로해석하며각자의도시를본다또한각자의마음을본다.도시들은교환하고서로의이미지가겹치며새로운인상을낳지만나는그것이무엇인지정확히말할수없다.오직인상들만선명하고희미해지며마음속에서는책을소유하고가끔은다시이도시들로마음의여행을떠나고싶다.언젠가는우울해지면그런도시를볼것이고유쾌할때면유쾌한도시를볼것이다.거울을통해나에게로떠나는여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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