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찌하여 낙태되어 묻힌 핏덩이가 되지 못하였는가? 빛도 보지 못한 벌거숭이가 되지 못하였는가?
그 곳은 악당들이 설치지 못하고 삶에 지친 자들도 쉴 수 있는 곳,
포로들도 함께 안식을 누릴 수 있고 노예를 부리는 자들의 욕설도 들리지 않는 곳,
낮은 자와 높은 자의 구별이 없고 종들이 주인의 손아귀에서 풀려나는 곳.
그런데 어찌하여 고달픈 자에게 빛을 주시고 괴로운 자에게 생명을 주시는가?
-히브리 성서 욥기 중-
정교한 논증이 가능해진건 분석철학과 양상논리학의 발전 때문이지만
그 곳은 악당들이 설치지 못하고 삶에 지친 자들도 쉴 수 있는 곳,
포로들도 함께 안식을 누릴 수 있고 노예를 부리는 자들의 욕설도 들리지 않는 곳,
낮은 자와 높은 자의 구별이 없고 종들이 주인의 손아귀에서 풀려나는 곳.
그런데 어찌하여 고달픈 자에게 빛을 주시고 괴로운 자에게 생명을 주시는가?
-히브리 성서 욥기 중-
정교한 논증이 가능해진건 분석철학과 양상논리학의 발전 때문이지만
그닥 정교하다고 느껴지지가 않음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과거에는 논증보다는 삶의 고통에 대한 레토릭으로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으니.
난 저걸 보면서 드는 감상이, 삶이 그렇게 괴로우면 죽던가 속세를 떠나던가 하지.. 왜 꾸역꾸역 세상에서 부대끼면서 어떻게든 살아내려는 사람들한테 부정적 기운을 전염시키나 싶음
그쪽 논자 얘기를 인용하면 태어나지 않는게 태어난 것보다는 나은데 이미 태어났으면 사는게 자살하는 것보다는 낫다네. 남아있는 사람들이 자살한 사람 때문에 고통을 겪어서. 살지 말라 권유하는것이 아닌 낳지 않는 것이 더 윤리적이다 주장하는 데 가까움.
https://www.amazon.com/Debating-Procreation-Wrong-Reproduce-Ethics/dp/0199333556
당연히 반박도 있고 양측 의견 다 들어보고 싶으면 추천
그 논리가는, 자기는 이미 탄생으로 생명을 획득하며 타인의 도움을 입고 살아가고, 생명이나 사회망의 혜택은 포기하지 않겠지만, 내 인생이 힘드니 쟤 인생도 그럴것이 분명하니 또 다른 생명을 탄생시키는 생명 보편의 활동에 훈수 둘 자격이 있다고 주장하는 건데.
내 삶이 힘드니 “나는” 안낳겠다면 모를까 출산 자체를 윤리적으로 평가하려 한다는 것 자체 희안함… 자기 기분이 세상의 절대적 기준이라는 유아적 사고
난 반출생주의 지지자는 아니고 양상논리를 이딴식으로 써먹나 팝콘뜯으면서 보는 입장인데 '보편'으로 끌어들이는 그쪽의 빌드업이 있긴 함. 까고 싶으면 직접 읽어보는 것도 재미있음
난 딱히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패배주의를 전염시키는 게 싫은 입장이라 들여다 보고 싶지 않고, 그냥 여기서 이정도 언급해서 읽을사람 읽게 두는 걸로 난 만족함
성경보다는 불교가 더 낳지 않나 싶네여. 성경에서 나오는 것들은 걍 신세한탄 수준이라서...
불교에서는 단순히 태어나지 않음을 넘어서서 윤회의 사슬을 끊어야 하는데, 윤회론은 정말 어려워서 다른 장에서 다뤄야 할듯. 불교에서야 개인이 애 안낳는다고 해서 윤회가 끊기는게.아니니가.
어렵군여....
근데 솔직히 태어난 이상 뭘 어떻게 하자는 건지 모르겠음. 빅뱅 이전을 논하는 게 아무 의미없는 것처럼 이미 시작해 버렸는데 탈출구는 살자밖에 없는 거 아님? 되돌릴 수 없으니 끝내야지
그런 건 있긴 함. 중증 장애라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선택권에 대한 논의는 다뤄져야 한다고 봄. 누군가 선택해 줘야 하지만 본인의 의사를 확인할 수 없으니까
제대로 된 반출생주의 반박은 존재할 수 없으려나? 철스퍼거 같은 사소한 논리 태클 말고.. 나중에 애 가지고 싶은데 낳고도 계속 이 철학 떠올라서 기분 ㅈ같을듯;
https://www.amazon.com/Debating-Procreation-Wrong-Reproduce-Ethics/dp/0199333556
찬반 둘이서 토론한 책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