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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총평

소설이라는 건 도대체 어떻게 써야하는 걸까? 환원론적 접근을 하자면 멋진 소설을 이룰만한 요소들을 다 모은 뒤 그걸 뒤섞고 잘 고쳐쓰면 훌륭한 소설이 완성된다라고 볼 것이다(수학의 힘!), 전일주의적 접근을 하자면 소설은 작가가 품고 있는 고유한 사상, 감정, 무의식, 자기표현 욕망, 아이디어 등이 자연스럽게 표출된 결과물이지(불의 힘!) 레고블럭 조립하듯이 소설을 쓸 수는 없다고 볼 것이다. 어느 쪽이 맞을까? 나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아마도 수학과 불 모두가 필요하다고 보는 게 정답이리라! 그런데 이 '재수사'라는 소설처럼 작가가 소설을 쓰면서 취재, 조사, 독서 경험, 살면서 만났던 사람들이 들려준 일화등을 다 때려넣고 마구 버무리면 근사한 총합소설이 될까? 조사와 취재와 인용과 배합이 너무나 도드라지는 조합형 소설 말이다. 그렇지만 이건 키메라 아닌가? 현실에서 키메라를 만나면 누가 친근하게 느낄까? 기괴한 외모를 보고 거부감이 들어서 도망가고 싶겠지. 결론적으로 이 소설에선 미학적 구조와 완결성과 천의무봉한 매끄러운 문장력과 작가의 총체적 구상을 잘 반영하는 유기적 형상화 실력을 갖춘 소설을 만났을 때 느낄법한 만족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이 시대와 사회의 전체상을 보여주겠다는, 다양한 인물들의 다양한 인생을 버라이어티하게 보여주겠다는 시도는 동서고금 작가들의 야망이긴 한데, 이런 야망은 취재, 조사, 인용 등을 단순히 조립하고 이리저리 배치하는 것으로 실현될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불가마에 들어가서 화학적으로 변성이 되고 단단한 구조와 밀도를 얻을 때 근사한 총합소설이 되는 것 아닐까?


장강명 작가가 뒷부분 '작가의 말'에서 시시콜콜히 밝히며 고백하고 있듯이(그 부분에서 작가의 ‘양심’을 느낄 수 있다. 소설을 쓸때 도움을 준 사람들과 어떤 도움을 받았는지, 어떤 책들을 읽고 어떤 내용을 인용하고 빌려왔는지 빠짐없이 다 밝히고 있다. 장강명은 적어도 세상에 거짓말을 늘어놓는 사람은 아닌 거다. 나는 그의 이런 태도가 좋다. 그의 칼럼, 에세이들은 나도 정말 좋아한다. 생각이 반듯하고 균형감각 있고 어떤 정파적 입장이나 편견에 사로잡히지도 않았고 독서경험도 풍부하고 우리 시대의 맹점에 대해 정확한 진단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가로서의 장강명에 대해 완전한 지지를 보내기 어려울 뿐이지, 칼럼니스트와 에세이스트로서의 그는 제법 훌륭한 작가라고 생각한다.) 이런저런 것들을 다 버무려 놓았는데 관통하는 주제의식이야 찾아보면 찾아지긴 하지만 지극히 산만하고 잡다한 내용 속에서 주제의식이 흐려져버린데다, 등장인물들이 그야말로 갈팡질팡하고 생생하게 살아있지도 않고 작가가 끌어모은 잡동사니들을 토해내는 디스펜서 같은 장치로만 보인다. 그래서 당연히 소설이 갖춰야할 정서적 차원을 형성하는데에 실패했다.


담고 있는 서사가 800 페이지 분량이 전혀 안 되는데도 억지로 800 페이지 2권짜리 장편소설 분량을 만들려다 보니 취재한 사실과 지식 나열, 작가의 독서경험, 질질 늘어지는 한담과 밑도 끝도 없는 설명과 맥락없는 지식나열로 범벅되었고, 묘미없는 대사와 유치한 수준의 심리묘사와 심리분석으로 글을 질질 늘려놓아서 소설의 조화가 깨지고 작가의 역량부족이 폭로되고야 만다(간결한 분량의 소설이었다면 덜 들통났을 것을). 작가가 습득한 알량한 지식과 상식과 독서경험, 취재한 내용들을 독자들을 상대로 줄줄 읊어대는 꼭두각시같은 인물들이 춤추는 소설.


신계몽주의라는 사상체계를 창안했다고 주장하는 살인범이 어디 여러 책에서 읽은 이런저런 주장들을 큰 맥락없이 줄줄이 나열하기만 한다. 이런 글 읽으면서 '장강명 작가가 이런저런 책들 열심히도 읽으셨구만...' 하는 생각만 든다. 그리고 그 인물이 이런 지겨운(그리고 독창적이지도 않은) 유사사상을 읊어대고는 그런 주절거림이 결국은 민소림이 자신을 모욕한 것이 죽어 마땅한 죄가 되고 자신은 사람을 죽일 정당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망상을 뒷받침하려는 장광설이었음이 밝혀지고 나면 독자는 허탈하기 그지없다. 자신이 정당한 응보를 했으며 처벌받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범죄자들은 널려 있다. 그들은 그런 주장을 위해 누구나 참작해줄만한 자신과 피해자의 주관적 사정들을 변명하는 법이지, 자신이 역사와 세계와 인류와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모든 분야에 통달했다며 유사사상을 줄줄 읊어대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물론 그런 망상으로 가득찬 인물이 있을 수는 있고 소설 속에서 모든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소설적 재미와 맥락을 다 끊어버리면서까지 수사극 사이사이에 끼워넣은 이런 지겹고 재미없는(독창성조차 없으니까. 다 이런저런 책들에서 읽은 내용을 읊어대는 것이니까) 사설의 효용이 이다지도 허망한 것이라면 독자는 소설이 본스토리로부터 삼천포로 빠져서 동해 태평양 인도양 대서양 북극해를 한바퀴 순회하고 헛바퀴를 심하게 돌린후 다시 스토리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러면 독자들은 '내가 도대체 이 지겨운 사설들을 왜 죄다 읽어야만 했던 거지?' 하지 않을까?


지겨운 사실 나열과 사회의 갖가지 직업세계 묘사, 묘미없는 평면적 배경묘사와 사물 이름의 나열, 질질 늘려쓴터라 얼마든지 축약이 가능했던 무의미한 대사와 무의미한 행동 묘사, 한 페이지 안에서도 계속 반복되고 도돌이표로 돌아가는 지지부진한 문장, 앞 문장에서 사용했던 어휘는 되도록이면 다음에는 사용을 피해야 한다는 글쓰기의 기본원칙조차 무시하는 어휘 반복의 향연. 소설 전체적으로도 '독자들이 200 페이지 전에 내가 했던 말을 까먹었으면 어쩌지?' 싶어서 한 말 또하고 또하는 반복. 지겨워서 이 소설 읽기 정말 힘들다. 소설 등장인물이 애국가를 불렀다고 치자. 작가는 '그가 애국가를 불렀다'고 쓰면 된다. 애국가 가사를 4절까지 다 소설에 적을 필요는 전혀 없는 거다. 그런데 이 소설은 애국가 가사를 다 적고야 말겠다는 듯 무의미하고 반복적인 활자를 소설속에 질질 늘려 늘어놓고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를 너무 많이 인용하고 의존하고 있다. 정말로 매혹적인 소설이라면 그 자체의 매력으로 독자를 끌어들이고 그 소설 속 알쏭달쏭하게 드러난듯 안 드러난듯 숨겨놓은 비밀스런 상호텍스트성을 독자들로 하여금 걸신들린듯 찾아 헤매게 만들어야 할 것 아닌가? 보물찾기는 보물이 교묘히 숨겨져 있을 수록 재미있는 법!


또한 등장인물들에게서 별다른 개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연지혜는 "아이고, 아이고"하는 말버릇이 있다, 박태웅은 눈을 잠시 감았다 뜨면서 눈을 이글거리는 버릇이 있다... 이 정도 밖에 기억 안 난다. 인물창조력이야말로 소설가의 실력을 가늠하는 매우 중요한 부분인데, 여기서 장강명 작가는 참담하게 실패했기에 독자들은 공감하고 감정이입하며 독서를 이어갈 동기를 잃어버리고 만다. 800 페이지나 되는 소설을 등장인물에 대한 몰입 없이 꾸역꾸역 참고 읽어나가기는 힘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