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그렇다면 선생님 만약에 자신의 아들이나 딸이 누군가에게 살해당하거나 윤간당한다해도 그것은 결국 과거에 불과하다는 말이죠?


철학자: 그렇다네 물론 처음에는 화가 나겠지, 아마도 살인자나 강간범을 죽이고싶어할지도 몰라.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깨닫게 되겠지 결국에는 과거의 일일뿐이고. 나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그것은 과거의 연연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아까도 말했지 않나? 트라우마에 매여있는 것은 결국 본인이 스스로 만들어 낸 이유에 얽매여있는 것일세. 과거에 딸이나 아들이 살해당했다고 해서 현재의 삶을 살지 않는건. 단지 현재의 삶을 살기 힘들기 때문에 트라우마에 얽매일 이유를 만들어내는 걸세 .


청년: 정말로 선생님의 딸이나 아들이 살해당하거나 윤간당한다해도 절망하지 않을 자신이 선생님에게 있는겁니까?


철학자:그렇네


청년: 오 그렇다면 선생님. 선생님은 아마도 괴물이거나 신일지도 모르겠군요. 대부분의 부모들은 10년이 지나도 20년이지나도 그 광경을 잊지못합니다. 최근에 일어난 강서구 PC방에 일을 보죠. 그 청년은 잔인하게 난도질당해서 죽었습니다. 그의 담당의사에 소견을 보면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상처가 너무 많았다. 게다가 복부와 흉부에는 한 개도 없었고, 모든 상처는 목과 얼굴, 칼을 막기 위했던 손에 있었다. 하나하나가 형태를 파괴할 정도로 깊었다. 피범벅을 닦아내자 얼굴에만 칼자국이 삼 십 개 정도 보였다. 대부분 정면이 아닌 측면이나 후방에 있었다. 개수를 전부 세는 것은 의미가 없었고, 나중에 모두 서른 두 개였다고 들었다. 따라온 경찰이 범죄에 사용된 칼의 길이를 손으로 가늠해서 알려줬다. 그 길이를 보고 나는 생각했다. 보통 사람이 사람을 찔러도 칼을 사람의 몸으로 전부 넣지 않는다. 인간이 인간에게 그렇게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가해자는 이 칼을 정말 끝까지 넣을 각오로 찔렀다.
모든 상처는 칼이 뼈에 닿고서야 멈췄다. 두피에 있는 상처는 두개골에 닿고 금방 멈췄으나 얼굴과 목 쪽의 상처는 푹 들어갔다. 귀는 얇으니 구멍이 뚫렸다. 양쪽 귀가 다 길게 뚫려 허공이 보였다. 목덜미에 있던 상처가 살이 많아 가장 깊었다. 너무 깊어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복기했을 때 이것이 치명상이 아니었을까 추정했다. 얼굴 뼈에 닿고 멈춘 상처 중에는 평행으로 이어진 것들이 있었는데, 가해자가 빠른 시간에 칼을 뽑아 다시 찌른 흔적이었다. 손에 있던 상처 중 하나는 손가락을 끊었고, 또 하나는 두 번째 손가락과 세 번째 손가락 사이로 들어갔다. 피해자의 친구가 손이 벌어져 모아지지 않았다고 후술한 기록을 보았다. 그것이 맞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하나가 형태를 파괴할 정도로 깊었다.


강서구PC방에서 청년은 이토록 잔인하게 살아당했습니다. 이런 그의 시선을 보고 부모는 분명 깊은 트라우마에 빠지게되겠죠. 그 청년을 무참하게 살인한 살인마는 고작해야 10년이면 풀려날게 뻔하고요. 10년동안 아마도 그 부모는 그 살인마에 복수심으로 가득한 세상을 살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이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될까요?

선생님은 원인에 얽매이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고통을 주는 원인이 너무나 명확합니다. 부모입장에서는 자신의 아들을 저토록 무참하게 살해한 살인자가 고작 10년형을 받고 세상에 나오는 것을 보게 될거고 그 이후에 살인마가 자신의 페이스북으로 "그 새끼 참 싸가지 없는새끼였어. 죽을만한 새끼였지."라는 글을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런대 원인에 집착하지말라? 모든것이 내 마음먹기에 다르다? 선생님은 자기계발서같은 소리를 연달아 지껄이고 있군요. 만약에 선생님이 자신의 아들이나 딸이 살해당해도 냉정을 유지한다면 세상사람들은 선생님은 신이나 괴물로 볼것입니다. 선생님은 공감을 바랬으나 세상은 존경과 혐오감으로 당신을 바라보겠죠. 선생님 종교를 창시하십시오. 세상사람들에게 온 몸으로 다가가 내 아들이나 딸에게 돌을 던져라 나는 그것을 보더라도 슬퍼하거나 좌절하지 않겠다고 대중앞으로 나아가십시오. 그렇지 않다면 결국에 당신은 이상론자에 불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