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개인적으로 김영하는 장편보다
단편을 더 좋아한다. 이를테면 <비상구> 같은 스타일.

<전태일과 쇼걸>

소설의 초반 부분에서 어느덧 서른쯤 된 남자와 여자가
낡은 극장 안에서 재회한다.

시대적 배경은 90년대.

그리고 미술관 안에서 그림을 보다
옛 풍경, 추억,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방식의 액자식 구성으로

극장 안 남자와 여자의 재회로

대학 시절 - 졸업 후 방황 - 다시 대학 시절 - 20대 후반이 된
남자의 이야기가 역순행적, 지그재그적 구성으로 펼쳐진다.

80년대, 학생시절. 한때는 '우리' '여럿이서 함께'였지만

어느새 낡은 극장 안에서 쇼걸을 보러 온 사람들이
드문드문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영화 전태일을 보러온 손님들은 파리채만 날리듯
남자와 여자 그외 몇 사람 없다시피 하는 듯하다.

마치 어느새 사람들은 다 떠나가고 그 시절에 열망, 격정적인 우정, 젊음과 청춘
이런 것들은 혼자서 추억하고 감상해야 될 심심한 옛 드라마가
됐다는 듯.

소설은 시종일관 남자와 여자의 관계가 학생 시절에는
어땠고, 또 그러다 왜 엇나가게 되는지 그런 이야기들을
들려주다

완전하게 자리잡고 사는 것도 아닌
남들처럼 회사에 취업해 번듯한 직장을 다니는..

그저 학원 강사를 하며 프리랜서와 같은 어딘가
완전하게 성숙하가, 완전하게 굳었다고 할 수 없는

남자가 옛 연인을 만나고 머쓱하게 혼자 나와
마을버스에 오르는 장면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모든 소설은 자전적이고, 모든 자서전은 소설적이라는 말이 있듯이

흔히들 소설을 읽다 보면, 독자와 작가가 숨겨놓은 케이크 안에 든
반지를 찾듯이

허구라는 크림 안에 쏙 숨어 있는 진실을 찾아보기 위해

나름 소설 안에서 작가와 '즐거운 지적 장난'을 벌이게 되는데

이때 김영하는 버스에 오른 남자가 주절주절 청승맞은 톤으로
옛 연인과의 재회를 쑥쓰러워하는 듯 찌질한 톤으로 말하다

마지막 문장에는 “사실이 그랬다”로 끝을 맺는다.

그리고 여기에는 마치

마치 흔히 드라마에서 남자 주인공아 상대가 방심한 사이에 확 자신쪽으로 상대의 몸을 끌어당겨 포옹을 하거나 입맞춤을 할 때

시청자들의 마음속에서 짜릿함 속시원함 같은 것을 유발하는

매력을 보여주듯

마지막 저 한 문장이 허구와 진실을 매개로 줄다리기를 하는
지적 유희인 소설이라는 줄을 빳빳하게 잡고 있던

독자들을 자신 쪽으로 확 당겨버리는 재치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