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처음에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이란 소설의 소개글을 읽었을 때는 단순히 그 당시 러시아 내에 있었던 젊은 허무주의자들을 까는 글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렇게 얄팍한 소설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당시 러시아 사회에 가득 차 있던 갈등과 모순을 까발려주었기에 나는 이 소설을 읽고 오히려 '아... 러시아 혁명은 일어날 수 밖에 없었겠구나.'하고 납득하게 되었다. 19세기 말의 러시아는 세대 갈등, 젠더 갈등, 같은 군인 계급 내에서도 결혼을 어떻게 하느냐 상속을 얼마나 받느냐에 따라 생활의 차이가 엄청나게 벌어지는 극심한 빈부 갈등에 시달리고 있었다. 해방되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차별 받고 있던 '전 농노 현 농민'들에 대한 무시와 차별은 말할 것도 없었다. 작가는 어쩌면 그런 모순과 갈등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작품 내에서라도 해결 혹은 완화시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위대한 노파심. 나는 작가가 글을 쓰게 된 마음을 그렇게 표현하고 싶다.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중하다"라고 가르치는 기독교적 관점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 '네차예프 사건'은 작가에게 큰 충격을 주었는지도 모른다. 어설프게 허무주의자, 자유주의자 모임에 참여했다가 사형 선고 후 유배형에 처해졌던 터라 더욱더 감정이입을 했었는지도... 하지만 처음 글을 시작했던 동기와는 달리 <악령>은 스타브로긴의 '무' 그 자체에 주목하며 '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주제로 나아간다.
스타브로긴의 마음에는 아무것도 없다. 다른 등장인물들이 갖고 있는 허무주의나, 인신론, 무신론적 자유주의, 기독교적인 희생심 이런 것들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無' 그 자체. '없음'을 상징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저 귀족 사회에 있던 관습을 어기는 행동 밖에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영향력은 막대했기에 그 자체로도 귀족 사회에 커다란 파장을 가져온다. 그를 숭배하는 표트르는 러시아 내의 반 정부 반 차르 세력을 만드려고 노력하지만, 정작 그는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저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와 스위스 오지에 틀어박히고 싶어한다. 그게 그의 진짜 본심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런데, 이 '無'야 말로 기독교적인 악 그 자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곡성>의 외지인, 그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단지 사람들의 파멸의 지켜보기만 하는 캐릭터... 만화 <몬스터>의 요한이 떠오르기도 했다. 말 몇마디와 작은 행동만으로 작은 도시를 파멸로 몰아갔던...
어쩌면 영향력 그 자체는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청난 영향력을 갖고 있던 스타브로긴은 정작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중헌걸까. 인간의 내면에는 무엇을 담아야하는가. 이 소설은 그런 물음을 남겼고, 책을 덮은 지금도 그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그렇기에 명작인건가. 하는 단순 소박한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아직 읽지 않은 독붕이들이 있다면 꼭 한 번 읽어보기 바란다. 처음의 인상과는 상당히 다른 굉장히 다면적인 소설이니.
스타브로긴의 고백 매우 흥미로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