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준 <중국기행 - 위대한 새 중국>(1952)을 보고....

독후감 겸해 뭐라도 남겨 놓고 싶어 이하, 작성.





[배경]


-소설가 이태준이 월북한 시점. 얼마 뒤 전쟁 터짐.

전쟁 중이던 1951년 9월. 중국 국경절(10.1.) 초청 기회 얻음.


-어찌된 일인진 몰라도 전쟁통에도 북한은 중국에 대표단('관례단'이라고 부름)을 파견.

그 일원에 이태준이 끼임. 문화인 대표로...?


- 그 여행길에 중국 가서 보고 들은 것 적음.

이태준이 확실한 사회주의자, 친북.친소.친중파가 된 상황에서 작성한 것이기에

전체적으로 걸러 볼 것들 존재.

(책 제목부터가 '위대한 새 중국'이지 않은가....)




[자료]


- 국립중앙도서관 사이트에서 이 자료 볼 수 있음. pdf로.

6.25전쟁 중에 미군이 북한군 포로한테서 노획한 도서들이 미국으로 건너감.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 그 책이 있었음.

2000년대 들어 한국 국립중앙도서관이 '해외한국자료' 발굴 사업으로

미국에 있던 그 책들을 pdf로 제작, 사이트에 공개함.


(참고로, 월북 작가들 대개는 해금된 상태! 이거 좀 봤다고 시비 말 것!)

( '김일성 개새끼!' )





<범례>

-은 책 속의 내용.

ㄴ은 나의 느낌, 코멘트






[내용]


ㄴ 사실 좀 놀랐음. 지금 '남북의 창' 프로 보면 이따금 볼 수 있는 현행 '북한식 맞춤법'이 이때도 잘 준수된 거.


북한에서 1948년에 '신철자법'을 제정했다는데, 1952년에 나온 책에서 그 북측 특유 맞춤법이 잘 실천되고 있음.

(물론 100% 잘 실천은 아니나...)

두음법칙 안 지키는 것 등등.


ㄴ 이태준이 애초에 그렇게 썼는지(자기 이름부터 스스로 '리태준'이라고 원고에 썼는지), 

이태준은 되는 대로 쓰고 편집 과정에서 교정을 철저히 했는지....? 궁금.


ㄴ 또 지금 북한서 쓰는 문구들 다대.

"...0000한 데 대하여~~" 

" ~~~로 하였다" (한국 같으면 "~~가 됐다"라고 쓸 부분)

" ~~이였다" (움라우트. 즉 ㅣ모음화 현상. 한국 같으면 "~~~이었다")

위 같은 사례.

지금 북한식 단골 문구들이 이때부터 빈출.


아무래도 해방 전 이태준의 문장과는 좀 다름.

이것도 혹시 편집 과정서 교정원이 막 뜯어 고친 거?

아님 이태준이 북측식 문장에 금방 적응한 거?




- 여행 시작.

관례단 인원은 모두 6명.

1951.9.27.에 평양 발. 거의 40일 구경.



- 관례단으로 14개국 대표단이 북경 진입.

아시아 각국, 동유럽 지역, 기타 일부 국가 등.

소련에선 작가 에렌부르크(나름 좀 유명한 이), 칠레에선 시인 네루다(호오...)가 참가.


심지어 영국 모 민간단체(좌경화?)서도 대표가 참가.

(ㄴ당시 영국은 6.25에 유엔군 파병했던 상황인데...영국군이 직간접으로 한국 중부전선에서 중공군하고 싸웠을 텐데...)


관례단 규모는 모두 합치면 50~60명인 듯.


ㄴ 통역을 어케 했을지가 궁금.

이미 1945년에 한 도쿄재판 다큐 보면, 헤드폰을 착용해서 통역을 거치는 장면 있는데...

1951년의 중국에선 그런 게 없었나?

헤드폰 통역 묘사 같은 것은 無.



- 통역에 관한 묘사....

북한측 통역으로 북경대학 조선어과 학생이 붙었다고.

그 학생이 관례단의 유람 내내 일일이 옆에 붙었던 듯.



-14개국(대표단)이 사실상 저마다 언어가 상이.

그래서 '2중, 3중 통역'을 했단 묘사 有.


ㄴ 아마 각국 대표단에게 중국측이 사전에 통보를 준 것?

'일단 이번 방문 행사에서 공용어는 중국어,러시아어다. 그에 맞는 통역을 대동하라.

아니면 우리가 그에 맞는 통역을 준비하겠다'

->이런 식으로?...



- 이태준이 중국인과 의견 나눌 땐 통역(한국-중국어 통역사)을 통했겠으나, 유럽인들하고도 의견 나누는 대목 有.


ㄴ과연 어케 말을 나눴나? 통역사를 2~3인씩 동원?


이태준의 외국어 실력은 잘 모르겠으되....일본어는 알 테고, 영어는 조금 아는 듯?

중국어 말고 고전한문을 아는 건 확실. 

어릴 때 서당 다녔고, 자기 작품 속에서도 한문 구절 인용하기도.


이태준이 중국 기차 화장실에서 '손 씻은 후 마개를 빼시오'란 안내문 읽어낸 대목도 有.

이때는 중국서 이미 백화문(현대 중국어) 쓰던 때. 

단, 한자는 아직 번체자(정자) 사용하던 때.(지금의 중국대륙서 쓰는 간체는 1951년엔 아직 無)

백화문이라도 기본적으로 한문이니 위 문구 같은 간단한 구절은 이해했던 듯.




- 일부 대목에선 중국측이 소개한 내용을 아주 자세히 인용함.

ㄴ아무래도 중국측이 마련한 중-한(중-조) 버전의 설명서.연설문을 제공받은 듯.



-곳곳에 가는 데마다 중국측 인사들이 연설을 많이 함. 그 내용을 기행문에 다 인용.

ㄴ 그렇다면....저 연설들은 즉석연설이 아니라, 사전에 정해진 원고만 읽은 것?



-이태준이 중국 신문 읽은 대목도 有.

ㄴ 통역이 읽어줬을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이태준 스스로가 한자를 읽기도 한 듯.



-시국이 시국(6.25전쟁 중)이어서 중간중간에 '북중 친선' 강조 구절 多.

근데...자금성이나 항주 서호 같은 관광지를 구경할 땐 정신이 나간 듯 감동해서 꽤 길게 감상문 작성.


ㄴ 혹시 나중에 이태준이 숙청당할 때 이게 꼬투리 되지 않았나?

'부르주아적으로 관광 감상만 했다...'라고.


ㄴ 근데 계속 중간중간에 

'조국서 전쟁이 벌어지는 거 생각하니 여기 참관 온 나는 미안하고, 눈물이...' 

같은 문장 쓴 건...양심인가? '보험' 들기용 문장?




- 국경절 행사 이후 남쪽으로 여행, 이동.

(ㄴ중국측이 북한측에게 꽤나 유람, 호강시켜 주는 것)

1951년10월10일 20시40분 차, 북경 발차.

그 당시, 북경역에서 신문.잡지 무인판매대를 봤다고....


ㄴ흐흠....이걸 어케 해석? 이태준은 이걸 '사회주의 도덕'이 올바로 선 거라고 봤는데...

과연 그 무인매대가 제대로 돌아갔을까?

얼마나 갔을까?....설마 외국인들에게 일종의 보여주기용으로 만든 꾸밈 장치였나?




-1951년10월21일자 상해의 <해방일보>가 보도한 6.25전쟁 기사.

' 50년 겨울~51년 봄엔 적 손실이 매일 평균 900명.

최근엔 5600명'  ( ? ? ? ? )


ㄴ 위의 주장 검증할 수 있나?

위키백과에 나온 미군 사상 수치로 3년간 매일 평균 피해치는 알 수 있겠는데...

기간을 한정시키니 좀.....맞나? 아니겠지?




- (이야기 좀 점프. 동북지방의 '하얼빈'으로 이동.)

하얼빈에서도 일정 소화.

얼마 후, 하얼빈에서 기차로 출발. 귀국길(평양 행).


이 기차에는 식당칸 有.

식당칸을 나온 이태준은 3등칸으로 구경을 가 봄.

거기서 본 것---

흰 위생복 입은 '위생원'이 기침 많이 하는 승객에게 가서 '독방'으로 이동하라고 권유.

주위 승객에 대한 위생 문제 때문에 자리를 옮기라고....

(아주 친절히, 간곡히 권했다는 묘사)


ㄴ 여기서 말하는 '독방'의 의미는? 어떤 방인가?

1등칸 같은 곳? 아님 기차 화장실 규모의 좁은 곳?



- '누을 수도 있는 독방'이라는 암시 有.

ㄴ 이걸 과연 어케 해석할지.....?



- 이태준, '중국 여행 동안 누가 누구에게 명령조 소리, 큰소리 치기 하는 걸 못 봤다'고....

ㄴ(글쎄.....과연? 다들 보여주시 식으로 격조 있게 행동한 게 아니라면....)

ㄴ 근데 한편으론 무슨 코로나 시국 때 보던 풍경을 1951년 중국 만주 쪽에서

볼 수 있었다는 말인데.....

이건 무슨 '위생 인프라를 걱정해야 하는 사회, 기초 위생 취약한 사회'란 뜻도 되는 것 같고....흐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