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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어떤 나라에 대하여 외국인이 자국인보다 더 예리하게 분석할 때가 있다. 미소녀 게임 <블루 아카이브>를 플레이하던 중 문득 들었던 생각이다. 이 게임의 제작진은 한국인이다. 그러나 그들은 일본의 어떤 미소녀 게임 제작진들보다도 오타쿠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블루 아카이브>는 나올 수 없었다.
그렇다면 <조선과 예술>의 저자 야나기 무네요시는 어떨까? 그는 <블루 아카이브>의 제작진들처럼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조선의 예술을 그 누구보다도, 심지어 조선인들보다도 예리하게 평론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에는 그렇지 못했다. 왜냐하면, 야나기 무네요시는 결국 조선의 예술에 대하여 완벽하게 사랑해내지 못한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박경리 선생의 말씀. ‘아니, 우리나라 사학자들이구 민족학자들이구 문인들이 무식하게 유종열 같은 사쿠라 새-끼를 놓고 걔가 조선을 좀 칭찬했다고 숭배하는 꼬라지 좀 보세요. 이거 정말 너무 한심헙니다. 아니 걔가 뭘 알아요. 조선에 대해서 뭘 알아요. 걔가 조선 칭찬하는 것은 조선에 대한 근본적 멸시를 깔고 있는 거예요. 걔가 어떻게 조선의 위대함을 압니까?’
실로 맞는 말씀이다. 과격한 말씀이기는 해도, 분명 야나기 무네요시는 조선을 모른다. 그는 조선의 예술을 사랑한 것이 아닌, 그저 예술 애호가로서 조선을 동정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는 야나기의 글에서 아예 고백되어 있는 것이기도 하며, 그의 글을 읽다보면 실제로 조선인들은 예술을 알 수 있도록 계몽되어야 한다는 듯한 우월감의 뉘앙스가 느껴지기도 한다.
<조선과 예술>은 꽤 흥미로운 책이다. 그러나 흥미 그 이상을 찾기에는 철저하게 아쉬운 책임이 분명하다. 나는 이 책에서 조선의 예술에 대한 심도있는 고찰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 안에 존재했던 것은, 자신이 생각하는 분야에 대해 제대로 사랑하지도 못하는 자가 적은 서투른 리뷰 뿐이었다. 사랑을 모르는 학자보다, 사랑을 아는 오타쿠가 낫다.
윽 오따끄
물론 개추는 눌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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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글도 당시 일본에선 비국민이라고 욕 먹기 딱 좋고 조선에선 기만자라고 욕 먹기 딱 좋은 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