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 손가락에 붕대 감아놔서 글이 제대로 안 써지는 점은 양해바람.
최대한 오탈자 줄이려고 했는데 안 된 부분 있을 수 있음.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 대한 전반적인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음.
지금까지 필자가 그래왔듯이, 이번 대회도 누가누가 참가해서 이런 좋은 글들을 남겼구나하고 넘길 생각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필자가 이 대회에 참여할 생각은 없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자기 직전 갑자기 주마등처럼 감상문의 대략적인 내용이 떠올라서 급하게 노트북을 켜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참가 동기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멋진 신세계에 대해서 말해보자. 올더스 헉슬리가 창조한 멋진 신세계는 행복하다. 적어도 그곳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그들은 우리들처럼 부모를 거쳐 태어나지 않는다. 부화소의 공장을 통해 태어나며, 태어남과 동시에 알파에서 감마에 이르는 계급을 부여받고 그들이 살아갈 미래 또한 결정된다. 가령 알파 계급이라면 지식인 계층으로서 이 멋진 신세계가 온전히 유지 될 수 있도록 하고, 감마 계급이라면 이곳저곳에서 노동자로 일하는 것을 예시로 들 수 있겠다.
어쨌든간에, 그들은 우리와 같은 방식으로 태어나지 않으며, 오히려 우리와 같은 탄생방식을 부끄러워 한다. 사랑에 빠진 남녀가 관계를 맺고 가정을 이뤄 자식을 만드는 과정을 부끄러워하며 입에 담는 것을 넘어 생각하는 것조차 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도록 교육받았기 때문에. 다른 것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태어나면서, 그들이 부여받은 계급대로 살아갈 미래가 행복하다고 느끼도록 교육한다. 그리고 그런 사회의 바깥, 야만인 보호구역에서 온 야만인 존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두 세계가 만나면, 두 세계는 서로가 없어질때까지 충돌한다. 대부분의 경우에서 공존이란 존재할 수 없다." (명대사 아님)
멋진 신세계에 나오는 말이 아니다. 다른 책에 존재하는 문장도, 어떤 유명한 학자가 한 말도 아니다. 단지 필자가 짧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직접 몸으로 체득한 결과이다. 다소 오글거리다고 생각될 수 있는 말이지만, 필자가 살아가다 서로 다른 견해가 충돌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될때, 속으로 자주 떠올리는 표현이기도 하다.
이 말처럼, 멋진 신세계에서도 두 세계가 충돌한다. 소마, 부화소, 죽음에 대한 관점, 셰익스피어를 비롯한 문학을 대하는 문명인들의 태도, 그 어느 것 하나 이해할 수 없으며, 시와 이야기를 사랑하며, (멋진 신세계의 실상을 알기 전까지) 멋진 신세계를 동경했던 존의 세계와 소마를 통한 행복, 촉감 영화, 육체적인 관계를 통한 사랑의 표현 등에 익숙한 문명인-여기서는 주로, 존과 교류했던 레니나 크라운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의 세계가 충돌한다. 그리고 거의 마지막 장에서 두 세계는 최후의 충돌을 하는데, 그것은 바로 문명인의 세계를 대표하는 '무스타파 몬드'(쉽게 말해 멋진 신세계를 이끄는 사람 중 한 명으로, 이 세계의 실상을 놀랍도록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와 현대인(바로 우리들)의 세계를 대표하는 야만인 '존'의 대화이다. 여기서, 존을 '야만인 세계의 대표'가 아닌 '현대인 세계의 대표'라고 표현한 이유는 그의 관점은 야만인보다 우리 현대인에 가깝기 때문이다.
(존은 문명인 어머니와 옛날-셰익스피어-의 책, 이 두가지에 동시에 영향을 받았는데, 이는 야만인만큼 미개하지도, 문명인만큼 책에 대해 무지하지도 않은, 어중간한 위치에 있는 현대 사회의 우리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무스타파 몬드와 존의 대화에서, "우리는 편하게 일하기를 좋아합니다."라는 몬드의 말에 존은 다음과 같은 명대사를 남긴다.
"나는 안락함을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신을 원하고, 시를 원하고, 참된 위험을 원하고, 자유를 원하고, 그리고 선을 원합니다. 나는 죄악을 원합니다."
- <멋진 신세계> 17장 362p
이 대사는, 멋진 신세계 속 소마에 절여진 문명인들, 그리고 그렇게 소마를 남용하도록 만든 사회를 강하게 꼬집는 말이라고 볼 수 있다. 작중에서 "1세제곱센티미터의 양이면 열 가지 침울한 기분이 물러간다."라는 말이 계속 나오는데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부정적인 감정에 내성이 없다. 그러한 감정을 이겨내는 방법을 배우지 않은채 행복을 강요받았고, 오직 그것만을 추구하도록 세뇌받았다. 그 결과 그들은 부정적인 감정을 감내하고, 이겨내려는 대신 소마를 통해 행복으로 도피한다. 멋진 신세계가 아닌 현대 우리 사회를 보자, 사람들은 부정적인 감정을 참아내고, 무던해지고, 이겨내며, 더 나아가 그것에서조차도 즐거움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문명인들의 모든 행복 수단은 소마로 귀결된다. 그들은 행복이라는 소마의 노예이자, 소마라는 행복의 노예인 것이다. 이를 생각했을때, 위에서 나온 무스타파 몬드의 "우리는 편하게 일하기를 좋아합니다."는 '행복을 위해, 자칫 불행할 가능성을 불러올 수도 있는 모든 일을 제거했다.'라는 해석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이어진 존의 명대사는 그런 '제거'를 거부하며, 스스로의 행복은 소마가 아닌 스스로 찾아나갈 것임을 의미한다. 이 대화가 더 이어진 후에, 존은 무스타파 몬드에게 다음과 말을 한다.
"나는 불행해질 권리를 주장하겠어요."
- <멋진 신세계> 17장 363p
그가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권리를 요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가 비록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더라도, 그는 결국 행복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행복은 불행 속에서 가장 아름답게 피어나는 법이기에.
굿..
하지만 엔딩은...
참 그리고 글 잘 읽었음. 난 개인적으로 멋진 신세계의 주민들 관점이 거부감이 들지언정 마냥 틀렸다고 할 수는 없어서, 역으로 존의 의지에 관해서도 조금 거리를 두게 되더라
처음에 무스타파 말 들으면서 뭔가 명확한 반박이 안떠올랐었음... 뭔가 아닌 것 같은데 뭐가 문제라고 확실히 말을 못하겠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