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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 출신 저자라는 약력을 볼 때면 약간 거부감이 들기는 한다. 아마 이 거부감은 귀족에 대한 편견 자체보다는 어릴 적에 읽었던 <스칼렛 핌퍼넬>이라는 시리즈 때문일 것 같다. 저자가 혁명을 피해 도망간 귀족 출신이라던 그 스파이 소설은 프랑스 대혁명 시대에 무례하고 폭력적인 평민들로부터 귀족들을 대피시킨다는 줄거리로, 당시 읽었던 다른 책들에 비해 심하게 유치했었다. (007 소설을 읽었다면 비슷한 감상이었을까?) 사실, 나보코프처럼 비슷한 출신에 비슷한 거부감을 갖고 훌륭한 글을 쓰는 사람이 있는 것을 생각해보면 어쩔 수 없는 편견이겠지만, 그래도 <아이리스>를 읽기 전에 그 떄문에 기대감을 다소 낮춘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아이리스>는 꽤나 좋은 글이었다. 멕시코 혁명 이후 멕시코에서 살아가는 귀족 소녀의 성장 과정을 담은 (의미심장하게도 자전적인) 이 글은 당시 멕시코에서 프랑스 귀족 출신 혼혈로 살아간다는 것을 계급제의 붕괴와 정체성의 혼란, 멕시코 고유의 문화와 광적인 해방신학과 함께 버무려냈다. 아무것도 모르는 유년기 귀족의 언행과 생각에서 약간의 불쾌감까지 느껴질 정도로 충실하게 쓴 글을 읽으며 우리가 한 때 가지고 있었던 질서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그러니까, 우리는 정말로 당연히 아랫사람으로 태어나는 사람들이 있는 시대에 참으로 오랫동안 있었던 것이다.
책의 전반부는 이 순진한 소녀와 가족이 혁명 이후 변해가는 멕시코에서 자신을 멕시코인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묘하게 거부감을 느끼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에 치중한다면, 후반부에서는 본격적으로 그들을 흔들어 놓는다. 해방신학을 따르는 듯한 퇴펠 신부는 마리아나의 기숙학교에서 마리아나를 포함한 학생들을 휘어잡고 그들의 구체계적 사고 방식을 어떻게든 깨어놓으려고 애를 쓴다. 그 과정에서 가족은 신부의 일거수일투족에 휩쓸리며, 잠시 잊고 있던 멕시코적 신앙심이라는 것에 사로잡히기도 하며, 도저히 과거의 자신들로는 의식적 무시 없이는 돌아갈 수 없는 정신 상태로 점차 변해간다.
그러나 신부는 결코, 선인으로서 그려지지는 않는다. 다소 루시퍼스러운 퇴펠 신부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모아 새로운 공동체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고, 멕시코인들을 착취한다고 공장주를 비난하다 멕시코가 원래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지적하는 말을 듣기도 하며, 최종적으로는 정신적 파탄에 한 차례 이른다. 마리아나가 어떤 사람인지를 생각해보고 ("양쪽에 다 발을 걸치고 싶어하는") 이것이 일종의 자전 소설임을 생각해보면, 당시의 멕시코가 어떠해야만 했다라는 것에 대한 선택을 마지막까지도 유보하는 셈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리라. <아이리스>는 그저 우리에게 마리아나라는 한 예시를 통해 이에 대해 직접 생각해보기를 유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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