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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그 문장을 읽은 건 유난히 덥고 습한 어느 여름이었다. 지구는 마침 궤도의 반환점을 초속 463m의 속도로 통과한 참이었다. 뭐가 급한지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 기우뚱 기울어서는 그닥 기뻐하는 기색도 없이 달려왔는데, 그 위에 드러누운 난 다만 한시도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는 지구의 지구력이 부러울 따름이었다.


  그즈음 난 책 몇 권을 집어던졌다. 벽에 던지고, 침대에 던지고, 쓰레기통에 던지고, 던지고, 던지고, 던지고... 난 책이 싫었다. 책을 읽으면 자꾸 주목을 사는 게 싫었다. 왜 그런 책을 읽냐, 그 질문 속엔 별다른 악의가 없었지만, 아니, 오히려 아무런 악의가 없어서 더 싫었다. 질문 끝자락에 붙어있는 물음표가 내 사랑을 초라하게 만드는 게 싫었고, 내 열정을 우스꽝스럽게 다루는 게 싫었고, 내 일상을 이상한 듯 바라보는 게 싫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어쩌면 내 보물들이 사실 한낱 종이 쪼가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의심하고 마는 스스로가 가장 싫었다. 지긴 싫어서 그럴거면 돈은 왜 모으냐, 결국 같은 종이가 아니냐 반문했지만, 나조차도 속으론 납득하고 있었다. 5000원짜리 지폐 석 장과 “달과 6펜스”의 두께를 비교해보면 어느 쪽이 거추장스러운지는 명확하니까.


  그래서 책을 집어 던졌다. 책을 집어던지고, 전공 교재를 집었다. 알고리즘을 공부했고, 대회에 참가했고, 아무튼 달렸다. 던지고, 달리고, 던지고, 달리고. 하지만 내 심폐지구력은 지구와 같지 않아 꽤 자주 책갈피에 기대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옆으론 나를 제치고 달려가는 친구들이 보였다. 그럴때면 책을 덮어야한다, 던져야한다, 달려야한다, 되뇌었다. 되뇌면서도 책을 손에서 못 떼는 나 자신이 미웠다. 내가 달과 6펜스를 집어든 건 그 무렵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궤도의 반환점을 통과했을 무렵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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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Gaugin, She goes down to the fresh water, 1892


  “She goes down to the fresh water”는 고갱이 타히티에 간 이듬해에 완성한 작품이다. 배경과 여성, 그 앞에 고인 물은 마치 서로 다른 그림에서 각각 떼내온 것처럼 괴리된다. 흙 색깔은 처절하다시피 밝은 주황색이고, 평면적이라 그 위에 선 여성은 사람이 아니라 스티커처럼 보인다. 여인은 아래를 보고 있다. 시선을 따라가보면 자신의 물그림자 보이는데, 물결 탓에 흐려져 색상만이 남아있다. 이 모든 조합은 꿈속 세계를 닮았다. 어쩌면 지나치게 선명한 위쪽 세계는 고갱이 만들어낸 허구적인 그림이고 물속이라 생각되는 그 언저리에 진짜 여성이 숨이 막혀 허우적거리고 있는지 모른다. 주목해야할 건 여인의 표정이다. 여인은 무언가를 무언가를 깊이 고민하는 듯 미간을 찡그리고 있다. 무엇을 저리 골똘히 고민하는 걸까?


  고갱은 주식 중개인이었다. 마흔의 나이까지 착실하게 돈을 모아온 가장이었다. 그런 그를 갑자기 미술계에 투신하도록 밀어붙인 원동력은 뭐였을까, 가끔 고민해본다. 어찌됐건 그 뒤로 집안은 급격하게 기운다. 1885년 가난을 견딜 수 없던 아내가 떠난다. 그렇다고 예술계의 반응이 좋았냐, 그렇지도 않았다. 1891년, 고갱은 거의 무명 화가였다. 인상주의가 나름 자리를 잡은 그 시절에도 고갱의 작품은 우스꽝스럽다며 인정받지 못했는데, 1) 야만스러울정도로 강렬한 단색의 대비, 2) 인상파이면서 현실을 표현하려는 인상주의와 반대로 현실이 아닌 상상을 표현하는 작풍 때문이었다. 돈 많은 중산층의 장난 – 세간에선 그렇게 평가했다. 하지만 고갱은 붓을 꺾지 않았다. 고갱은 생전에 자부심이랄지 자만심이랄지, 아무튼 콧대가 굉장히 높은 남자였다. 자신만한 천재는 천지개벽 이래에 없었다, 머지 않은 미래에 자신을 알아줄 이가 나타나리라 믿었다.


  “She goes down to the fresh water” 지금 그녀는 고민하고 있지만, 제목에서 암시하듯 결국 물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들어가서 헤엄칠 것이다. 1883년 피사로에게 어떠한 댓가를 치르고서라도 화가의 길을 걷겠다고 다짐했듯이. 1891년 가족과 가산을 모두 내버리고 타히티로 향했듯이. 그림이 돈을 못 벌어다 줘도 좋다. 굶어 죽어도 좋다. 아무도 안 알아줘도 좋다. 아니, 좋은 게 아니라 별수 없는 것이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는 중요하지 않다.” 고갱은 그림에 빠져버렸고, 계속 그리는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아직도 지구는 초속 463m의 속도로 달린다. 나 역시 아직도 책을 읽는다. 난해하기만 하고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책에 빠져 사는 나 자신이 너무도 초라해 문장의 마침표 사이로 숨고 싶을 때면,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를 떠올린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는 중요하지 않다. 난 오래전에 물에 빠졌고, 아직까지 헤엄칠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조금은, 아주 조금은 속이 편해지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