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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젊작 떡밥도 4번째이고, 독갤에서도 이제 지친 나머지 “왜 자꾸 똥을 퍼먹으려 하느냐?”라는 여론이 대세이긴 한데, 그 답변을 하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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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그래. 남 칭찬하는 것보다 남 욕하는 게 더 재밌기도 하고, 가끔은 못 쓴 글이 보고 싶어지기도 하거든.

그래도 그것도 한두 번이지, 굳이 4번씩이나 할 이유가 있을까? 이미 묵을 만큼 묵었다, 아이가.

내가 젊작을 까지도 않고, 반대로 옹호하지도 않고, 미온적인 스탠스를 유지하고자 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음.

나는 이러니저러니 해도, 젊은작가상이 여성-퀴어 서사라는 현재의 젊은 문인들이 일으킨 열풍의 첨단에 서 있다 생각하고, 이를 통해 한국문학의 가장 최신 유행을 읽어낼 수 있다고 봄.

좋다, 나쁘다의 가치판단이 아니라, ‘분석’의 대상으로 보자는 거지 ㅇㅇ

한가지 중요한 점은, 젊은작가상은 작가들의 응모를 받아 그중에서 선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심사위원들이 한해 올라온 등단 10년 이내 작가의 단편을 임의로 선정한다는 것임.

그렇다면, 젊은작가상을 읽어낼 때는 “왜 심사위원들은 많고 많은 작품 중에 이 7편을 골랐을까.”를 중점적으로 봐야한다고 할 수 있겠지.

가치판단을 하자면, 한편 한편의 퀄리티를 가늠해보는 작업이 필요하겠지만,

이건 분석이니까. 7편의 공통된 부분에서 편집진의 의도를 파악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고,

나는 이번 7편의 수상작들에서 한국 최신 문학의 3가지 조류를 찾아낼 수 있었음.




1. 여성서사의 확장 : 남성서사를 카피하고 전복하기

‘남성서사’라는 표현은 원래부터 있던 말이 아니고, 여성서사의 반대급부로 쓰이기 시작한 말임. 왜 그런지 이유를 생각해 보자면,

첫째, 옛날에는 대부분의 소설이 남성서사였기 때문에 굳이 ‘남성서사’라는 표현이 필요하지 않았다.

둘째, 남성서사라고는 해도 어떤 일관적인 장르적 규칙이 있던 것은 아니고, 역사소설, 사소설, 모험소설, 건달소설, 성장소설 등 수없이도 많은 장르가 속해 있다.

뭐 이정도겠지.

반대로 여성서사는 그동안 마이너한 장르로 취급되어 왔는데, 가라타니 고진이 근대문학의 종언 이후에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 등의 마이너한 소설이 대두될 것이라고 말했다는 데서도 알 수 있음.

내가 이 말을 왜했냐면,

남성소설이 99개 나오고 여성소설이 1개 나오던 시절에는,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기만 해도 충분히 여성서사로서 인정받을 수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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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여성소설이 과반을 넘겨버린 지금은 어떨까? 단순히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만으론 지겨워진 거지. ‘무언가 더 재밌고 더 새롭고 더 창의적인 게 필요하다!’ 결국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의 변신이 필요했던 거야.


물론 SF+여성서사의 김초엽이나 고딕소설+여성서사의 강화길처럼, 다른 장르와의 융합을 시도하는 경우는 꾸준히 있어왔지만, 이번에는 보다 집단적인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구상하려 했던 것 같음.

나는 문학동네와 심사위원들이 찾아낸 답이 ‘남성서사의 전유물을 여성서사의 것으로 전복하자!’라는 데 있다고 봄.


할머니가 보기에 모든 사람에게는 아이를 향한 일정량의 사랑이 있고 때로 그것은 바닥났다. 목경의 부모가 밖으로 도는 까닭도 아이 사랑 함량이 다 떨어졌기 때문이다. 반대로 목경의 고모처럼 아이가 없어본 사람은 종종 쌓인 아기 사랑을 풀어줘야 한다. 훗날 목경은 할머니의 그 사상이 남성의 ‘성욕 배출 신화’를 여성의 ‘모성 배출 신화’로 교묘히 바꾼 것임을 알았다.
- 이미상, <목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 18p

대상작에서는 아예 대놓고 이 지점을 언급하고 있음. 기존의 소설이 남성의 성욕 배출 신화를 활용해 이야기를 풀어갔다면, 이 소설은 여성의 ‘모성 배출 신화’를 활용하겠다는 거지.

그리고 ‘총’으로 상징되는 남성적 권력을 가진 고모의 서사가 중심이 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남성서사와 여성서사의 교차를 다분히 의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음. 그래서 대상작이 아니었을까 싶네.

다른 작품들 얘기도 해봅시다. 함윤이의 <자개장의 용도> 평론에서는 이렇게 말함.


여로형 소설로도 불리는 이 플롯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유구한 세월 동안 남성 인물의 전유물이었다. 그러한 플롯을 따라 모험을 떠난 남성은 방탕한 생활 끝에 탕아가 되어 귀향해서도 ‘성숙한 남성’으로 대접받지 않았던가.
- 임정균, <금기의 역사와 탈주의 규칙>

남성서사의 전유물이었던 여로형 소설을 여성서사로 전환했다는 게 이 평론의 요지라고 볼 수 있음.

이외에도 대다수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모계 중심의 가족사가 등장한다는 걸 발견할 수 있었는데, 이게 올해 젊은 작가상의 가장 핵심적인 의도가 아니었을까 싶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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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다시 쓰는 가족사 : 모계전승 서사

최은영의 <밝은밤>을 필두로, ‘외할머니’-‘엄마’-‘나’의 관계성을 다루려는 소설들이 차츰 늘어나는 추세임.

기존의 가족사 소설이 아버지와 아들의 대립과 계승을 바탕으로 했다면, 이제는 엄마와 딸의 대립과 계승이 중심에 오게 된 거지.

이번 수상작 7편 중 성혜령의 <버섯 농장>을 제외한 6편에서 이러한 흔적을 느낄 수 있었음.

그동안 남성적 상징으로 여겨졌던 ‘총’을 고모에서 조카로 계승하는 대상작은 물론, 외증조할머니에서 외할머니, 엄마를 거쳐 ‘나’에게로 대물림되는 신비한 자개장을 다룬 <자개장의 용도>, 거식증에 시달리는 외할머니-엄마-나 삼대의 이야기를 다룬 <연필 샌드위치> 등등.

몇 년 전의 여성서사가 해외유학이나 이민 등 공간적 확장에 집중했다면, 요새는 엄마-외할머니-외증조할머니로 이어지는 시간적 확장에 집중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함.
정리하자면, 지금 젊은 문단은 여성서사의 외연을 확장해야 한다는 목적 의식을 갖고 있고, 그것이 소설로 쓸 소재가 풍부하고 남존여비 사상이 더 심했던 할머니 세대를 향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거지.

나는 이러한 흐름을 나름 유효한 전략으로 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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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일기 같은 소설 : 당사자성에 대한 집착

또 한가지 눈에 띄는 점은 일기 같은 소설에 대한 수상할 정도로의 집착이 엿보인다는 것임.

대상작의 작가노트에서는 아예 “일기장 형식의 소설, 일기에 가까워지려는 소설 - 증거제출 가능합니다”를 제목으로 했는가 하면,

<젊은 근희의 행진>, <요카타>, <자개장의 용도>, <연필 샌드위치>의 작가노트에서는 각 작품의 등장인물이 실제 자신의 가족들을 모티브로 했음을 직접적으로 밝히고 있음.

불과 3년 전에, 김봉곤의 오토픽션 논란으로 큰 고역을 치른 것치고는 의외의 일이 아닐 수 없음.

이 당사자성에 대한 집착은 구조적인 문제에서 기인한다고 보는데,

1) 현재의 한국문학이 단순히 ‘재미’를 추구하기에는 영화나 드라마 등의 다른 매체를 이기기 어렵다. 첫째, 영상과 글은 표면적인 임팩트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둘째, 투입되는 비용과 인원이 다르다. 셋째, 더구나 대부분의 젊은 작가들은 투잡을 뛰기 때문에 재밌는 이야기를 밀어붙일 장편을 쓸만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2) 그리하여 한국문단은 재밌는 장편을 쓰기보단 윤리적이고 감성적인 단편을 쓰려 하기 시작한다. 얼마 안 남은 소수의 독자들은 한국문학에서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자 한다. 그러니 당연히 독자들은 당사자성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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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2번 대목을 체감한 건 작년 국제도서전에서였음. 오혜진-심보선-양경언의 “정치적 올바름과 문학의 실효성”이라는 주제의 북토크를 들었는데,

이때 청중 질문의 대부분이 당사자성에 관한 질문이었음. 당사자성을 넓히려는 건 좋지 않다는 게 모든 질문자들의 요지였음.

남성이 여성소설을 쓴다는 것, 비장애인이 장애인 소설을 쓴다는 것, 이성애자가 퀴어소설을 쓴다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진 것처럼 보였음. (오혜진 평론가는 오히려 당사자성을 버리고 시민적 책무를 수행하기 위해 자신이 아닌 타자의 서사를 다뤄야 한다고 말했지만.)

당연히 이런 상황에선 당사자성을 우선한 일기장 형식 글쓰기가 각광받는 것도 이해가 됨. ㅇㅇ

한국문학이 끊임없이 ‘타자’를 말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도, 결국은 당사자성에 매달려 자기 얘기만 쓰게 된다는 건 다소 아이러니한 지점이지만...


추신 1.

이미상의 작품이 대상작인 이유는 명확함. ‘1) 여성서사의 확장, 2) 다시 쓰는 가족사, 3) 일기장 형식의 소설’ 이 세가지 흐름을 분명히 인식한 상태에서 글을 쓰고 있기 때문임. 굳이 비평을 거치지 않아도 심사위원들이 원하는 소설을 그대로 완성시켜 두었음. 

특히, 3번에서는 ‘일기 같은 소설’과 ‘일기장 형식의 소설’을 구별하며 당사자성의 문제를 넘어 ‘일기’의 문학적 형식 자체에 대한 관심으로 향해간다는 점에서 고무적임. 이 부분은 당사자성에만 몰두해 ‘일기 같은 소설’을 쓴 다른 수상작들과는 명백히 차별화되는 지점임.


추신 2.

이서수 <젊은 근희의 행진>은 인스타 사기, 유투브 벗방, SNS 인플루언서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지극히 현대적임.

사실 그래. 2023년을 살아가는 현대인을 묘사하는데, 인터넷 커뮤니티나 sns를 빼놓을 수 있을까? 그럼에도 대부분의 소설가들은 이 부분을 애써 외면해왔는데, 대화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소설이란 장르에서 인터넷 세상을 묘사하는 게 생각보다 까다롭기 때문임. (나는 그 부분에서 실패한 게 김봉곤의 카1톡 인용이었다고 봄.)

그런 점에서 이 단편은 가장 ‘젊은 작가상’이란 타이틀에 걸맞다고 할 수 있음.



추신 3.

현호정의 <연필샌드위치>보다 <라즈베리 부루>를 선정하고 싶었다는 신형철의 심사평에 공감함. 아마 그편이 심사위원의 의도와도 더 잘 맞았을 것 같음.

<라즈베리 부루>는 그동안 “인류의 경전이 비하해온 생리혈의 지위를 격상”시키는 신화적인 소설이라고 함.

아마 많은 독붕이들이 고개를 저을지도 모르겠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함. 문학은 본질적으로 불온한 것이라고.

나는 앞으로의 여성서사가 ‘무해함’과 ‘당사자성’에 파묻히기보단, 차라리 더욱 과감하고 격렬하게 기존의 가치관을 전복할 필요가 있다고 봄.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인상을 받았던 작품이 페미니즘 리부트가 있기 한참 전인 1992년 양귀자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인데, 이런 작품들이 앞으로는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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