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처음, 청춘.
인생에서 가장 각별한 단어, 누구나 가릴 것 없이 사연 많은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들이 사연 깊은 것은, 과연 그것이 잘 짜인 플롯처럼 드라마틱해서였나요? 오히려 대부분의 사랑 이야기들은 소소하고, 잔잔하며, 남몰래 지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그 추억 속 이야기가 각별한 이유는 사건의 격정에 있지 않고, 사랑하는 당신과 내가 그 자체로 드라마 같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소설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블라디미르’의 첫사랑, 지나이다는 바람 같은 여자였습니다. 그녀는 여러 남자들과 어울리는 자유분방한 사람이었고, 마음을 주는 듯 주지 않는, 잡히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지나이다를 떠올리는 화자의 마음은 그녀로 가득 차있습니다. 그녀가 유부남인 자신의 아버지와 교제한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지만 이제는 나이를 먹은 화자의 추억 속에서 사건 자체는 첫사랑을 향한 생각과 감정에 비해 제법 간단하게 서술됩니다. 그의 청춘은 무언가를 이루거나 벌어진 일에 있지 않았고, 그의 추억의 중심은 사건이 아닌 사랑이었습니다.
그런 추억 고백 끝에 화자는 이렇게 씁니다.
「아마도 너의 아름다움의 비밀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가능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가능성에 있을 것이다. 바로 네가 다른 곳에다 쓸 생각도 못한 그 힘을 바람결에 자유롭게 놓아 보내는 것에 너의 비밀이 숨어 있지.」
이는 다른 누구도 아닌 유부남을 사랑했던 지나이다의 청춘, 그리고 다른 누구도 아닌 그런 지나이다를 사랑했던 화자의 청춘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흔히들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하는 바로 그 순진하고 열정적인 청춘을, 다른 것은 쳐다보지도 않고 바람 같은 당신에게 쉬이 놓아 보낸 것. 그것이 말로 못할 정도로 사연 깊었던 이 첫사랑 이야기가 아름다웠던 이유였습니다.
그래, 나의 청춘에 잘 짜인 플롯처럼 드라마틱한 일들이 있어서가 아니라, 사랑했던 당신과 내가 그 자체로 각별했기 때문입니다.
투르게네프는 이런 섬세한 감성을 기가막히게 짚는듯
멋진 감상인데, 인용한 구절은 오역인 듯합니다. 원문의 뉘앙스는 청춘의 매력이 부질없이 낭비되어 사라진다는 점에 있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그대의 충만한 힘을 다른 무엇에도 기울여보지 못하고 바람결을 따라 흩날려 보내는(김학수역)". 즉 바람은 자유가 아니라 탕진의 상징이라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