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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스트로스가 <슬픈 열대>를 쓴 것이 1955년이라고 한다. 이 책을 처음 읽었던 것이 아마 십 년도 더 되었을 텐데, 당시에 <슬픈 열대>는 약간 읽기 어려우면서도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왔었다. 최근 <신화학> 3권이 나온 김에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어 재차 방문한 <슬픈 열대>는 생각보다는 쉬운 책이었다. 아마 예전보다 구조주의적인 전제나 인류학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 것도 있을 테고, 현대에는 <슬픈 열대>가 제시하는 문명-야만 이분법에 대한 비판이 익숙하다 못해 사실 진부해진 감이 있기 때문이기도 할 테다. 토인비 같은 역사학자들이 주장하던 역사의 단계별 진보는 지금은 낡다 못해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 학설이 되었고, 사회가 무엇이 되어야 한다, 라는 당위적인 전제는 실존하는 사회를 예시로 하는 모방의 과정보다는 모든 사회가 지향해야 할 몇몇 아젠다들을 근간으로 한 지속되는 발전 과정으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며 <슬픈 열대>를 다시 읽어보면 아무래도 시대적인 한계가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중남미의 다양한 부족들과 아시아 국가들을 떠올리며 그들의 사회에 내재하는 자체적인 논리 구조를 긍정하는 태도는 이따금 숨기지 못한 원시성, 후진성의 암시와 함께 긴장 섞인 동거를 한다. 덕분에 인간들의 모임에서 생길 수밖에 없는 공통적인 요소를 찾고자 하는 노력은 유럽적인 사회가 되었어야 할 과거, 혹은 곧 될지도 모르는 미래를 찾아내기도 한다. 어떻게 이들이 자원 부족 앞에서 사람들을 갈라내 사람이 아닌 것으로 쫓아냈는지에 대한 통찰의 과정은, 비록 내가 그 통찰 자체에 대해서는 공감할지라도 전제에 있어서 <슬픈 열대>의 기획에 대해 잠시 의문을 갖도록 만든다. 진정으로 이것이 다른 사회를 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전후 관계 속에 있는 두 단계를 보고 있는 것일까? (당시 사람들이 본 모습에 어떤 ‘원인’이 있었는지를 생각해보면 더더욱 의미심장한 사고과정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슬픈 열대>를 다시 한번 읽어볼 만한 가치는 있었던 것 같다. 외려 현대에 와서 보면 <슬픈 열대>는 다양한 습성이나 사회 구조가 유럽적인 시각에서 보았을 때 어떻게 해석될 수 있었는지를 알려주는 책이기도 하다. 한 부족의 그림 문화에서 이끌어내는 전제와 결론은 약간은 시대착오적이면서도 참 특이한 미학적 사고관을 넌지시 드러내며, 부족의 지도자와 집단적 야만성에 대한 생각은 <슬픈 열대>의 초반부에서 그려낸 전쟁 시기의 유럽인들이 느끼던 집단적 편집증과 불안, 그리고 이후에 도래할 사회에 대한 요구와 맞물리는 감이 있다. 기실, <슬픈 열대>는 유럽과 미국을 포함한 기행문인 것을 뒤늦게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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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 스트로스는 글 진짜 쉽게 써서 교과서로도 쓸 수 있을 정도라는데 진짜 그럼? - dc App
신화학까지 읽어봤는데 말하고자 하는 바에 비해 글이 상당히 쉽긴 함
읽어보려다 너무 두꺼워서 포기했던 ㅋㅋㅋ
엇 나 이거 주문했는데, 리뷰 잘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