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가던 한 남자가 깊은 진흙 구덩이에서 가까스로 눈을 떴을 때에는 이미 시월의 달이 구덩이의 입구를 두 번, 가로지르고 난 뒤였다
그리고 오늘은 달도 없는 밤
당신은 당신과 피를 나눈 적이 있습니까
당신은 당신이 피를 흘릴 때 누구와 속삭이고 있었습니까
어둠 속의 남자는 발꿈치에서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격렬한 통증에 두 눈에선 번갯불이 일었고, 문짝이 뒤틀리는 듯한 비명 소리가 구덩이 속을 가득 메웠다
나뭇가지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통찰해봅시다
이 언덕 저 언덕에서 나무들이 신음하는데요
통찰해봅시다
저 신음하는 나무들의 주인은 대체 누구입니까
통찰해봅시다
오로지ㅡ불과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오로지ㅡ불과하다는 처음에 도달하기 위해
굶주린 사자가 우리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우리의 독실한 마음가짐에 따라 점차 멀어지기도 하고 반대로 우리의 침대 곁으로 슬그머니 다가오기도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것은 과연 그렇습니까
그러면 선생은 누구의 형제입니까 지금 이 곳에서 우리가 느끼는 슬픔과 분노와 공포는 누구의 목소리입니까 새가 날아와 앉으면 나뭇가지는 흔들리지요 작은 소리를 내며 부러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새가 떨어지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대화를 원한다면 다가가서 대화를 하세요 큰 의미는 없습니다 시계가 멈추면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걸어가서 시계 밥을 줍니다
진흙 속에 두 귀를 처박고 있던 남자는 구덩이 속을 가득 메운 비명 소리가 자신의 것으로 들리지는 않았다 마치 몸속의 또 다른 생명체가 육체 밖으로 빠져나가기 위해 기를 쓰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을 뿐ㅡ절박과 침체, 파멸과 혼돈으로부터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질문과 대답으로부터......
당신은 당신과 음식을 나눈 적이 있습니까
당신은 당신의 발아래 떨어진 빵 조각을 누구에게 주었습니까
오랜 세월, 저는 낮 동안에 떠오른 모든 생각들을 메모지에 옮겨 적었습니다 술에 취하기 전에 제가 떠올렸던 생각들은 무엇이었습니까 취한 뒤에는 그것들이 한 미치광이에 의해 창밖으로 마구 던져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선생은 재능이 없어요 선생은 선생보다 느린 노새에 올라탔고 날이 새도록 고집을 부리는 쪽은 누구입니까 만일 선생이 남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다면 이토록 오랜 세월 쓰고 버리는 일을 반복할 리가 있겠습니까
새에게 물어봅시다 어디서 날아오는 거지?
...... 당신은 당신에게 끝없이 민폐를 끼치면서도 죄송합니다, 하고 사과를 해본 적이 있습니까
새가 날아가면서 선생에게 뭐라고 합디까
......사과를 받고 싶습니다, 당신은 당신을 매우 뻔뻔한 사람이라 여기고 있어요 돌아섰습니다 괴로워서 울게 되겠지요 울어보세요 당신은 당신에게 버림받았잖아요
구덩이 속의 남자는 모든 것이 끝났다고 믿었다 자신을 집어삼킨 진흙 구덩이도 부러진 척추도 갈증도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라고 믿었다
지금, 여기, 진흙 구덩이가 있고 진흙을 두 손으로 움켜쥔 남자가 쓰러져 있다면 그것은 쥐들이 꾸며낸 이야기, 밤새도록 갉아대는 소리, 다락방의 거짓일 뿐이다, 라고 그는 믿었다
길가에 물새알이 떨어져 있을 것을 보았습니다
통찰해봅시다
강 건너의 어미 새가 구슬프게 울고 있는데요
통찰해봅시다
이 밤이 지나면 어미 새의 슬픔은 누구의 것입니까
통찰해봅시다
오로지ㅡ불과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오로지ㅡ불과하다는 처음에 도달하기 위해
당신은 당신과 잠을 잔 적이 있습니까
당신은 당신이 대문을 두드릴 때 누구와 잠들어 있었습니까
저는 악마가 심판대에 오르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악마는 심판을 받지 않아요 그가 이 지상에 집을 짓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악마는 집을 짓지 않습니다, 이 칠흑 같은 밤에......우리가 어떻게 내려갑니까
그러면 선생은 누구의 영혼입니까 우리는 부정한 말을 계속해서 지껄일 수 있고 어둠 속에서 밤새도록 음탕한 노래를 부를 수도 있으며 웃으면서 파괴되는 얼굴로 사창가의 여인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입히고 또 물어뜯긴 채 당장에라도 쫓겨날 수 있습니다 선생은 누구의 회한입니까 용서를 원한다면 다가가서 용서를 구하세요 큰 의미는 없습니다, 발밑의 사자가......선생에게 자고 가라고 합디다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가던 한 남자가 깊은 진흙덩이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을 때에는
십이월의 얼어붙은 달이 구덩이 속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을 때였다
마른 진흙을 얼룩 강아지처럼 뒤집어쓰고 있던 남자는, 격렬한 통증도 부릅뜬 눈에서 번갯불이 일지도 않았으며, 끝없이 이어지는 질문과 대답으로 가득했던 진흙 구덩이 역시 잠자는 우물처럼 고요하기만 했다
아... 진짜 잘 쓰는 거였구나
나 혼자만으로는 나를 구할 수 없다는 그 말,
어쩌면 헤겔의 정신현상학의 "불행한 의식"을 대입할 수 있는 그 말을
이렇게나 잘 표현할 줄은 몰랐다
능력만큼은 인정해야겠네...
불안의 책 같은 책 좀 더 읽고 싶은데 뭐 좀 없을까..
말테의 수기??
시 제목 작가 혹시 누구야?
Cul de sac - 황병승
누가 쓴건지는 말해놓고 가라 좀
병승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