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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추첨으로 받은 책의 감상문입니다
익숙한 단편에 질리던 참이었다.
도서관을 탐색하다보면 어디서 본 것 같듯한, 대략 요약하자면 여성, 가족, 지루함으로 가득찬 단편집들. 같은 주제야 표절만 아니라면 몇번이든 차용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을 풀어가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소설가 제각각마다 주제를 서술하는 방법은 달라도 어디선가 한계가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었다. 어찌보면 당연한 현상일 것이다. 토마토 소스와 파스타면을 준다면 백이면 백이 토마토 파스타를 내올 것이기 때문에. 간혹 독특한 요리법을 사용해 전에 없던 음식을 내올 사람도 있으나, 그런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우리가 단편에서 기대하는 것은 신선함이다. 특히나 신인작가의 단편에서 기대하는 점은 새로움과 독창성이다. 고승민 작가의 중상모략 단편집은 그러한 점에서 칭찬해줄만 하다. 새로운 주제를 바탕으로 두려움없이 글을 써내려갔다. 작가는 중상모략이라고 이 작품집을 소개한다. 중상/모략. 근거없는 말로 남을 헐뜯고 사실을 비틀기. 전체적으로 미스터리함이 풍기는 단편들의 총체다. 아마도 이 책의 컨셉은 그러한 듯 하다, 완성도는 다소 아쉽지만.
첫 작품 <세답족백>은 자신을 닮은 허상에게 이름을 붙이는 남자의 이야기다. 드라이브 중인 사나는 아내와 헤어진 늙은 남성이다. 그는 조수석에서 사람인지 모를 허상을 본 후 그것과 대화하고, 허상이 여성의 모습을 띄자 그것에게 마침내 라라라고 명칭한다. 군더더기없이 명확한 단편이다. 딱히 흠을 잡을 부분도 없고, 무난하지만 굳이 따진다면 흥미있게 하는 글에 속할 것이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모든 글은 이래야한다고 생각한다. 비슷해서는 안 된다. 환상을 소재로 삼았다면 오, 같은 가벼운 탄식이 나올 만큼은 되어야 한다. 괜찮은 글이었다.
다음 작품인 <이지 라이더 죽다>도 마찬가지로 높은 수준의 완성도를 보여준다. 아버지인 회장에 이어 암전을 이어받게된 딸 영은 담담하게 그것을 받아들인다. 휘와 위같은 여러 등장인물이 암전을 둘러싸고 교차하지만 전개는 혼란스럽지않다. 그들이 가족이듯이 각자의 이야기가 어루어져 끝에는 영의 계승으로 마무리지었다. 다만 의문이 드는 이야기긴 하다. 등장인물이 암전을 앓을 때면 쿵, 하는 줄바꿈과 함께 이야기가 넘어간다. 언젠가 독자를 혼란스럽게하는 미스터리는 나쁜 미스터리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왜 영이 암전을 이어받아야 했는가? 왜 하필? 단편이라는 이야기의 특성상 영의 서사는 얕고, 독자는 이유에 공감할 수 없다. 그래도 분석없이 감성적으로 읽는다면 괜찮은 흐름을 가진 단편이다.
하지만 이 뒤의 작품들은 다르다. 용두사미라 했나. 완성되었지만 말그대로 완결되었을 뿐이지 수준낮은 글들의 연속이다. <춤추는 벽>, 미스터리한 현상 없이 현실에 충실한 이야기다. 회상이 주가 되는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별로다.
<Camera obscura>, 중상모략에서 유일한 sf소설이다. 카메라 옵스큐라의 전개 크게 세가지로 나뉜다. 첫째, 몸을 빌려주는 주인공이 약속을 지키지않은 대여자에게 화내기. 둘째, 옛 친구와 함께한 어린 시절에 대한 회상. 셋째, 마약문제를 해결해줄 힘있는 사람들과 식사하기. 식사를 하다 그들의 태도에 화가 난 주인공은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린다. 기껏 45페이지 밖에 안되는 소설인데 세가지의 주제가 흘러지나간다. 이런 글에 독자는 몰입하지 못한다.
<백개의 눈을 가진 거인은 오이디푸스가 되지도 못하는 주제에 예수의 꿈을 꾸었다>, <알츠하이머 캥거루>, 선자는 완벽히 쓰레기고 알츠하이머 캥거루는 읽을만하다. 악마와 거래해 성공을 거둔 사장은 결국 업보를 치를 거라는 암시를 준다. 다만 사장의 결과를 예지하는 서술은 갑작스럽다. 이건 사람에 따라 다를지 모르겠다. 넌 쥐냐? 나도 쥐다. <백개의 눈 어쩌구>라는 독보적으로 질이 낮은 작품 다음에 오는 글이라 적어도 내게는 객관적인 평가는 어려울 듯 하다.
도서관에 진열된 문장만 좋은 불쏘시개들과 비교하자면 스타일이 전혀 다르고, 그래서 후한 평가를 드리고싶다. 전체적으로 평하자면 가능성이 보이는 글이다. 현재로서는 장편소설로 발달할 능력은 없는 것 같지만, 필력을 갈고 닦아서 멋드러진 소설책을 써줬으면 좋겠다. 스타일은 멋지다. 다만 아직은 글을 다룸에 있어 미숙하다. 처음부터 뻔한 이야기를 쓰는 놈들과는 이 단편집이 백배는 나은 것이다. 열심히 정진해서 서가에서 당신의 책을 볼 수 있길 바라겠다. 고승민 작가의 발전을 기원한다.
이런 작가와 작품이 더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 읽지도 않고 부크크에 출간하면 삼류 저질이라고 비하하는 다른 글밥 먹는 사람들은 반성하길 바란다.
드디어 감상문이 올라왔구만기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