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나름 공들여 썼는데 묻혀버려서 아쉬운 마음에 재업 ㅋㅋ)
독붕이들도 느끼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소설이 근대에 발명된 매체라는 걸 의아해 함. 내 개인적으로 가장 바보같은 비아냥이 '성경은 소설이죠'임. 소설은 16세기에 나왔으니까.
아마 막연히 활자로 이루어진 단순함과 매체를 접하기 위해선 연극이나 영화에 비해 적극적인 상상력을 발휘해야하는 불편함 때문에 그런 오해가 빚어지는 듯.
그런데 엄연히 소설은 구텐베르크 활자 혁명 이후에 장서 가격이 떨어지면서 생긴 나름 기술의 진보에 발맞춘 신매체임. 그 이전의 대중들에게 익숙한 서사 매체는 연극과 서사시였지.
이처럼 막연히 소설을 단지 문자 기록과 동일시하면서 생긴 오해는 소설이라는 매체가 불러온 급진적인 혁명을 가리우는 것 같음.
소설이 가져온 가장 급진적인 혁명은 개인적으로 두가지라고 생각하는데 하나는 문어체의 탄생이고 하나는 개인의 탄생이라고 생각함. 오늘은 개인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하니 문어체의 탄생은 담에 기회가 되면 이야기 하겠음
실상 따져보면 지금까지도 소설처럼 창작자와 감상자가 일 대 일로 관계를 맺는 매체는 찾아보기 힘듦. 영화와 연극, 음악은 모두 집단적인 관람 경험을 공유하기 때문이지.
게다가 관람 시간 또한 상연자의 몫에 달려있음. 물론 넷플릭스와 같이 ott가 발전한 지금은 영상재생 속도도 각자가 결정한다고 하지만 어쨌든 상영 시간이라는게 엄연히 존재함.
근데 소설은 그렇지 않음 평균적인 독서 시간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음. 누군가는 200페이지의 책을 세시간만에 읽는가 하면 누군가는 한달이 걸리기도 함. 시간성을 초월한 유일한 매체라고 할 수 있음.
이같이 소설과 개인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존재임. 이런걸 보면 참 특이한 매체가 아닐 수 없음. 개인의 탄생이 가장 큰 빚을 진 종교개혁도 성경이 사제의 목소리만을 통해 접하는 음성 매체가 아닌 비로소 활자 매체가 되었던 사건이라고 할 수 있지.
그러니 우리 독붕이들도 오늘만큼은 소설이라는 매체를 의식하면서 즐거운 독서를 이어나가보면 어떨까?
오 좋은글이네.. 인사이트를 불러 일으키는 이런글 개추
ㅋㅋㅋ 읽어줘서 ㄱㅅㄱㅅ
근대와 개인이라...오늘은 그걸 생각해보면서 읽어보겠사와요
오늘도 즐거운 독서하길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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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소설은 내용이 아닌 형식임. 너가 말한 그리스 신화 등의 것은 서사시임. 서사시라는 것은 서사 시인들, 쉽게 말해 음유시인들이 광장에서 노래하고 공연하는 구술 문학이지. 소설 즉 로만과 노벨은 구텐베르트 활자 혁명 이후에 탄생한 근대 매체임.
그래서 활자 혁명 이전의 문자 기록들은 대개 낭송을 위한, 또는 공연을 위한 서브 텍스트에 불과했음. 그런데 서적 보급이 확대 되고 나서야 책이 비로소 그 자체로서 온전하게 됐지.
내용 상으로도 쉽게 구분됨. 돈키호테가 근대소설의 효시인 것은 개인과 세계의 분열을 다루었기 때문임. 그 이전까지는 인물이 세계의 일부였음. 요즘 식으로 얘기하자면, 세계관에 부합하지 않는 캐릭터는 존재하지 않았음.
성경 얘기부터 앞에 잘읽었는데 그래서 결론이 뭐지 싶은 마무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