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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4chan을 자주 둘러보던 시절 봤던 괴상한 표지들이 간혹 있었다. 힙스터라는 것이 패션마냥 일종의 동적인 딜레마(누구나 좋아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것은 곧 누구나 좋아하는 것이 된다)를 가지고 있기에 발생하는 현상이겠거니 싶지만, 덕분에 뭔가 자주 보이는 이 특이한 표지들은 '진심으로 이걸 좋아하는 놈들이 있음???' 하는 식의 글과 함께 올라오곤 했었다. /mu/에서는 신세이 카맛떼쨩의 <つまんね> 앨범을 그런 식으로 봤고, /v/에서는 <언더테일>(와!!!!!)를 그런 식으로 봤었다. 아마 비슷하게 /lit/에서 이 표지를 봤었는데 (<Eeeee Eee Eeee>라는 괴상한 원제와 함께), 이 경우에는 워낙 평이 4chan 밖에서도 극과 극으로 갈리는 듯하여 다른 예시들에 비해 읽어보는 데에 시간이 상당히 걸린 셈이다.
그리고 왜 그렇게 평이 갈리는지를 얼마 읽지 않아서 빠르게 이해할 수 있었다. 뉴욕의 무라카미 하루키라고 불린다는 평이 왜 붙는지도 이해할 수 있지만, 아마 하루키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비슷하게 싫어할 만한 글이라는 점에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좋아하는 사람도 그럴까?)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하루키 비판에서 자주 언급되는 '유명인사의 이름들이 그저 무의미한 고유명사로 남발되는' 그런 부분일 테다. "줌파 라히리", "살만 루슈디" 등의 이름들이 마구마구 쏟아지며 후자 같은 경우에는 등장했다고 치지만 그나마도 왜 등장했는지는 알 수 없다. 곰, 돌고래, 엘크 등이 뜬금없이 나왔다가 사라지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사용되었으니 그렇겠지만.
또한 왜 당시에 미국과 유럽의 젊은이들이 이를 좋아했는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 좋은 뜻으로 이해한 것은 아니다. <Eeeee>의 핵심 정서는 뭐랄까, 약에 취해서 뭘 해야 할지 모르고 멍하니 앉아 세상의 잔혹함과 자본주의의 구조적 폭력을 욕하고만 있느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우울하게만 있는 리버럴 대학생들을 연상시키는 감이 있다. 엘렌이 특히 그런 느낌이 강한데, 어째서 사람들이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하고 멍하니 있다가 이따금 날카로운 '폭로'의 말을 던지는 순간마다 이 리버럴의 중2병을 보는 것만 같아서 참 부끄러웠다. 기실 중2병이라는 것은 저 서구에도 전혀 다른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내게는 남들이 볼 수 없는 것이 보인다는 것 대신, 내가 보는 색을 남이 똑같이 보고 있다고 어떻게 보장할 수 있냐고 하는 식으로.
다만 <Eeeee>가 정말 싫었다고 하는 건 또 아니기는 하다. 드라마에도 욕하며 보는 드라마가 있듯이, 사실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 다음으로 싫어하는 것과 가까이 지내고 싶어하는 걸지도 모른다. 뭔가 있어 보이는 느낌이라는 것이 참 무가치하다고 욕하면서도 또 그런 느낌에 홀리는 것일까? 내 생각이지만,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이 소설도 좋아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그게 무슨 내용인데, 라고 물어보면, 그냥 한 번 읽어봐, 하고 떠넘기며, 억지스러운 질문을 받아주는 관대한 사람이라도 된듯이. 그게 참 기분 나쁜 과시욕이면서도 어쩔 수가 없는 반응이기도 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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