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명의 고교 문예부 학생들이 릴레이 소설을 써서 신인상에 도전하는 이야기입니다.
가에데, 기미코, 하루노 3명의 여학생이 소설을 쓰고 다이조라는 남학생이 편집자 역할을 맡습니다. 개인적으로 팀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이 다이조가 아니었나 합니다.
"편집자는 작품의 첫 번째 독자야. 작품을 읽고나서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지적하고, 정확하게 수정을 지시하지. 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말이야. 편집자는 작가의 재능을 최대한으로 끌어내는 역할을 해. 작가와 편집자는 이인삼각으로 달리는거지."
다이조를 보고 있자면 얘가 정말로 고등학생이 맞나 싶을 정도로 정교한 피드백을 줍니다. 다이조라는 캐릭터를 내세워서 그간 편집자와 일해온 작가의 경험치를 녹여낸 것에 가까운게 아닌가 합니다.
저도 편집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데 이견이 없습니다. 가끔 독갤에 POD 방식으로 출판한 작품들을 읽어볼 때마다 '이 사람에게 편집자가 붙어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들곤 했거든요. 좋은 소재를 사용하고도 지나치게 성급하고 조급하게 이야기를 해치워버리는 난폭한 글을 보여주는 사례가 너무 많았어요.
가장 먼저 성장을 보여주는 인물은 '하루노'입니다. 그녀는 좋은 땅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해바라기와도 같습니다. 명백히 문학적 재능을 타고났고 다이조의 코칭을 찰떡같이 소화해내면서 집필을 다듬어나가죠.
1. 부정 ㅡ> 말도 안돼!
2. 분노 ㅡ> 열 받아!
3. 협상 ㅡ> 좀 기다려!
4. 우울 ㅡ> 못 해 먹겠어.
5. 수용 ㅡ> 어쩔 수 없지.
6. 재기 ㅡ> 힘을 내자!
하루노가 글을 수정했던 단어들입니다. 진지한 성격의 소설을 쓰다보면 무뚝뚝한 글이 나오기 십상이죠. 쉬운 말을 쓰면 괜히 유치해보이고 폼이 안날 것 같기도한데 의외로 수정하는 편이 더 말의 맛이 살고 한층 생동감을 불어넣어주었습니다.
이후에는 기미코가 바톤을 넘겨받습니다. 황금연휴를 온통 소설 집필에 대한 고민으로 날려먹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하루노와 달리 재능을 타고나지 않았습니다.
'나는'이라고 할까 '내가'라고 할까, '는'이 좋을지 '가'가 좋을지 이런 고민으로 손이 멎고 마는 기미코입니다. 한 자도 쓰지 못하고 좌절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있노라면 안타까우면서 동시에 응원하게 되는 마음이 생깁니다.
실제로도 가장 많은 지적을 받으며 집필 시간보다 글을 수정하는 시간이 더 많은 기미코입니다. 일거수 일투족을 지적당하며 의욕을 잃기도 했지만 절대 자존심을 부리지 않고 모르는 건 빨리 물어보고 틀린건 빨리 고칩니다. 어찌보면 당연하면서도 대단한 일입니다. 줄곧 축구부에서 활동하다가 문예부로 넘어온 그녀였기에 하루노와 카에데보다 글을 쓰는 일이 서투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건 누구라도 쉽지 않을겁니다.
"지금 말한건 기술적인 얘기잖아. 기술은 십중팔구 향샹되니까 초조할 필요 없어. 그것보다 너에게 필요한 건 이야기의 핵심을 만드는거야. 처음에는 그걸로 충분하니까 그 다음은 나중으로 넘겨."
기미코에게서 성장을 볼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글쎄요. 손으로 잡아주는 상태에서 자전거를 배우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끝까지 손은 놓지도 않고 자전거를 가르쳐주죠. 그런데 다이조는 기미코에게 '고맙다'라고 말합니다. 오히려 도움을 받고 있는 기미코가 해야할 말이 아닌가 싶지만 소설을 끝까지 읽어나가면 저절로 수긍이 되는 장면입니다.
마지막 순서인 카에데는 3인방 중에서 가장 독서를 많이 하는 인물입니다. 문학적 소양은 충분하지만 문장을 사용하는 등의 기술적인 부분에서 많은 지적을 받죠. 다이조는 이상하리만큼 카에데에게 엄격합니다. 하루노와 기미코에게는 직접적으로 조언과 도움을 주었지만 카에데에게는 스스로 생각하여 책에서 해답을 찾도록 유도합니다. 패밀리레스토랑에서 그녀와 문답을 나누며 4시간이나 죽치고 앉아있었다는 묘사를 미루어보면 아마도 다이조는 카에데에게 가장 기대를 걸고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네요.
소설 후반부에는 현직 소설가 '바다사자' 씨가 등장하면서 문예부원들은 한층 더 심도 깊은 조언을 받게 됩니다. 작법의 기술적인 이야기가 대부분이었지만 고교생의 눈높이에 맞춰 어렵지 않게 설명해주는 부분이 좋았습니다.
너무나도 멋진 어른으로 등장했기에 '실제로도 소설가들은 이럴까?' 하는 호기심도 생겼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자 바다사자씨의 가장 멋진 모습이라고 생각되는 장면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
"뭐가 실패냐하는 문제인데, 기미코한테 물어볼게. 축구에서는 시합에서 지는걸 실패하고 하지?"
"패배는 분명히 실패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그 전에 전략이나 컨디션 조절에 실패할 때도 있어요."
"그럼 성공이란 승리를 말하는건가?"
"네"하고 나는 대답했다.
"실패를 반성하고 연습을 되풀이하면 성공할 수 있다. 스포츠는 그런 면에서 간단명료해서 좋아. 그러 소설은 어떨까? 소설에서 말하는 실패란 뭘까?'
"엉망으로 쓰는 거?"
"틀렸어."하고 아저씨가 대답했다. 미소가 부드러웠다.
"엉망징창인 원고나 심한 지적은 좋은 소설을 향해 전진하는 거다. 성공을 향하고 있는 거지. 다이조, 뭐가 실패한 소설이지?"
"성공을 향해 나아가지 않는 거니까, 포기하는건가요?"
"맞다. 포기하는 것. 포기하는 그 시점에서 바로 실패다. 다들 맘대로 포기하면서 자멸해 버리지. 반대로 말하면 아무리 막막해도 포기하지 않으면 실패란 없어. 내가 좋아하는 여류 작가가 이런 말을 했어. '꿈이 너를 버리지 않았다. 그저 네가 꿈을 버릴 뿐이다.'"
"적은 바로 자신이라는 말이네요?"
"포기하지 않으면 자기 자신은 아군이다. 적은 어디에도 없다."
"적이라고 하면, 죽이고 싶을 만큼 얄미운 편집자가 있다고 하셨잖아요?"
"언제 그런 말을 했지?"
아저씨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다이조와 둘만 남았을 때 그런 얘기를 했나보다.
"작품은 더 잘 만들려고 작가와 편집자의 혼이 부딪치지. 어깨가 부딪치기만 해도 옥신각신하는 법인데 혼이 부딪치면 뭐 말 다했지. 편집자는 작가의 귀에 거슬리는 말도 해야만 하지. 그래도 '여기 이 부분은 통째로 없애야겠어요.' 라는 말을 들으면 역시 버럭 하는 법이거든. 심혈을 기울여 쓴 원고라고."
아저씨는 몸을 뒤로 젖히면서 호탕하게 웃었다.
"열을 받는 것도 자기 안에 있는 적 때문이지. 소설 집필에 적은 필요 없어. 편집자는 작품을 더 좋게 만들어 주는 최고의 파트너니까. 다들 다이조한테 고마워해야 해."
이번에는 다이조가 쓴웃음을 지었다.
"보통 아군은 자기 한 명이다. 소설은 혼자 쓰는 작업이니까. 프로가 되기 전까지는 편집자도 없잖아. 그런 면에서 너희는 아군이 여럿 있어. 부럽구나."
***
무언가 좋은 것을 보게 되면 남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제 기분이 딱 그렇습니다. 소설을 좋아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작품을 권하고 싶어요.
부끄럽지만 저도 소설을 혼자 써본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이 소설이 와닿았는지도 몰라요.
여러분은 어떠실까요? 소설을 쓰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힌 적이 있나요? 만약 그렇다면 역자 후기는 반드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나와 같은 사람이 쓴 후기라고 확신했습니다. 이제껏 독서가 대화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이 후기를 읽으면서는 같은 기호를 가진 사람과 영혼의 대화를 하는 기분이 들었거든요.
뭔가 후련하군요. 하고 싶은 말을 속 시원히 다 말한 느낌입니다. 제가 느꼈던 행복감을 여러분도 느낄 수 있다면 더 바랄게 없겠습니다.
끝.
글을 보니 다이조의 성장이 궁금하네요 나중에 읽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