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교토에 와있습니다. 산책 다녀오는 길에 노상에서 이쁜 엽서 하나를 구매했는데 거기에 편지를 적어 당신께 보냅니다. 어제는 금각사에 다녀왔는데, 호수에 비친 황금빛 자태에 매혹되어 한동안 아무 생각 없이 바라만 보았습니다. 하지만, 잔잔한 호수를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돌팔매질의 강렬한 충동이 일었습니다. 관리인 몰래 돌을 던졌고 호수의 표면을 튀기던 돌의 궤적에 따라 완전한 금각의 모습은 흐트러져 형상을 알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오늘은 아침에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와중에 우산 하나 받쳐들고 교토 근교를 한가하게 거닐었습니다. 교토 근교는 꽃들이 각자 분홍색, 빨간색, 노란색, 하얀색 갖은 화려한 광채로 자신들이 고유한 존재임을 외치고, 풀잎들은 푸르딩딩하게 빛나며 자신들이 되돌아왔노라 우리에게 인사를 건넵니다. 새로운 생명이 태동하는 계절이 다가왔음을 환하게 알리는 이때, 비를 맞아 모든 생명의 즐거움과 아름다움이 우울함과 슬픔에 잠겨 고개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고개 숙인 식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세계 앞을 머뭇거리며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당신이 떠오릅니다. 당신은 언젠가 쑥스러운 듯이 자그마한 목소리로 제게 말했지요. 당신의 집안의 가세가 크게 기울었다는 것, 그리고 돈이 없어 고민이라는 것을요. 그리고 당신은 시류를 타서 크게 부자가 된 부동산 투자자들과 코인 트레이더, 주식 투자자 얘기를, 죄인이 교도관의 귀를 피해 속삭이듯 내게 속삭였습니다. 자신이 그 기회를 놓친 것이 무슨 죄라도 되는 것 마냥 말이죠.
가난을 감옥 삼아 평생 그 안에 갇혀있는 죄수처럼 쭈그리고 앉아 휘둥그레진 눈으로 세상을 단지 힐끗거리며 쳐다보기만 하는 당신을 보면, 나는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 속에 등장하는 미조구치라는 주인공이 떠오릅니다. 그는 말더듬 증세로 세계와 소통이 원활하지 못해 당신처럼 씻어 없앨 수 없는 열등감, 자신의 콤플렉스에 따라 세계가 구축되어 버린 불행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 열등감을 통해 남에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점을 유일한 긍지로 삼지만, 사실 타의에 의해 자신의 운명이 결정되어버린 셈이지요.
<금각사>는 인간의 존재와 아름다움의 관계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그에게 인간의 존재와 아름다움을 가르쳐준 것은 아버지입니다. 아버지의 손은 금각을 가르켜 아름다움을 일깨워주고, 불륜을 바라보는 눈을 가리며 세상의 추함을 알려주기도 합니다. 미조구치에게 아버지란 존재는 미와 추를 판단해주는 기준이였지만, 한 자리에 몇백년 동안 불타지도 않고 꿋꿋이 서있는 금각과 대비하여 한없이 미약하고 쉽게 스러지는 존재입니다. 아버지는 한시적인 존재의 아름답지 못함을 몸소 드러내지요.
아버지의 죽음 이후, 미조구치의 영원불변한 금각에 대한 집착은 더욱 심해지는 한편, 인간은 세계의 모든 존재들과 상호작용하며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영원하지 못한 존재의 불안을 안고 영원불변한 금각의 아름다움을 상기시키면서 다른 미지의 세계로, 그동안 자신의 추함을 입증하는 역할에 지나지 않던 타인의 세계로 나아가려 합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타인의 세계로 진입하려할 때마다, 진정한 인생으로 나아가려할 때마다, 현재의 순간을 영원한 것처럼 누리려는 그 순간마다, 쉽게 변질되는 인간의 존재와 아름다움 앞에, 인간의 존재 앞에 영원불변한 금각이 눈 앞에 아른거려 번번이 실패하고 맙니다. 유한한 존재에게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 그것이 과연 가당한 일이냐는 듯한 무언의 질책과 함께 말이죠.
한때는 최고로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여자가 어느 날 세상에서 가장 추한 존재로 전락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그 여자가 변한 까닭일까요? 아니면 내가 변한 까닭일까요? 변하는 것은 인간의 당연한 속성입니다. 하지만, 변하지 않고 영원히 존재하는 것, 그것은 인간이 이룰 수 없는 미망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변화합니다.
그는 한시적 존재와 대비되는 영원불변의 금각이 미망이란 사실을 깨닫습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상을 만나면 조상을 죽이고,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친족을 만나면 친족을 죽여서 비로소 해탈을 얻노라. 아무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투탈자재(깨달아 자기로 존재)해지리라.”
그는 일평생 자기를 막아온 말더듬 없이 이 경구를 물 흐르듯이 내뱉습니다. 그리고 결심합니다.
'금각을 불태워야 한다.'
이 다짐을 한 순간부터 미조구치의 콤플렉스와 그로 인한 강박 역시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시종일관 자신을 괴롭히던 금각으로 대표되는 미적 강박이 눈 녹듯 사라집니다. 그리고 존재의 유한함에 대한 고뇌와 자신의 관념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금각에 대한 인식, 미적 관조 너머 세계에 한 발 다가가기 위해 금각을 태우는 행동으로 나아갑니다. 살기 위해서요. 인간에 관한 최고의 아름다움은 영원한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순간을 영원한 것처럼 사는 것이라고. 미조구치의 세계는 바뀌었습니다.
<금각사>의 금각이란 무슨 의미일까요?
금각은 인간이란 존재의 콤플렉스이자, 인간 개체의 개인적 상황에 대한 콤플렉스를 끊임없이 표상하는 상징입니다. 인간 존재라는 측면에서 보면 인간의 유일한 콤플렉스는 인간은 영원히 살 수 없고 언제 세계 속에 존재했었냐는 듯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점이고, 미조구치의 세계는 자신이 사랑하는 아버지와 벗을 떠나보내고 홀로 남아 괴로워하는 필멸하는 인간 일반의 문제와 더불어 자신의 세계, 즉 선천적 장애로 인해 세계와 소통할 수 없다는 콤플렉스와 더불어 자기 자신이 아닌 타인으로부터 형성된 미적 관념에 따라 생성된 세계가 자신의 완전한 자유를 옭아매는 미망이였던 것입니다.
미조구치에게 금각은 더 이상 아름다운 존재가 아닙니다. 금각은 목소리를 자물쇠로, 손을 수갑으로, 발을 족쇄로 옭아매고 머리에 칼을 씌우곤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영원한 장애’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장애를 집어던진 순간 완전한 자유를 맞이하며, 그토록 멀리 느껴졌던 삶이 다가옵니다.
다시 당신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부를 쌓는 것이 당신 스스로 인생의 목적으로 정한 것이라면, 희뿌연 화면을 밤낮없이 하루종일 들여다보며 주식호가창과 코인차트를 보며 트레이딩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겁니다. 하지만, 당신은 돈 얘기를 할 때와는 달리 또 다시 자신이 이런 것에 관심을 가지는게 잘못되기라도 했다는 태도를 견지하면서도, 수줍게 문학과 철학을 그리고 윤리와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얘기할 때 당신에게서는 보기 드문 활력이 돌던 그때를 기억합니다. 저는 그 순간 확신했습니다. 당신도 과거에 함몰되어 영원히 지옥 속에 갇혀버리는 것이 아니라 미조구치처럼 살기를 원한다고요.
당신은 가난이란 콤플렉스를 맞아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어엿한 직장도 있고 검소한 생활로 남들은 쉽게 모으기 어려워하는 재산도 모았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기울었던 집안은 이제 살만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왜 아직도 세계로 향하는 문을 잠그고 있으신가요? 당신은 왜 아직도 그 자리에 머물고 계신가요? 당신은 왜 세계로 나아가려는 노력을 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당신보다 완전해 보이는 것들에 좌우되어 아직도 당신 스스로 그것들과 비교하며 상대적으로 못한 자신을 평가절하하고 부당하게 학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당신은 왜 가난이란 가상의 상대로 왜 아직도 자신을 구속하시나요? 당신은 도대체 무엇을 두려워하시나요? 당신을 지배하고 있는 관념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금각은 영원불변한 존재로 당신의 앞길을 막고 서 있는 가난인 것인가요? 아니면, 끝없는 콤플렉스와 변질된 집착인 것인가요?
이제는 무너뜨리십시오. 사회가 당신에게 씌우는 허상을. 무너뜨리십시오. 세계가 당신을 재단하는 모든 간섭을. 무너뜨리십시오. 스스로 족쇄를 채우는 당신의 집착과 그에 대한 인식을.
행동하십시오. 그리고 뛰어넘으십시오. 당신만의 금각을.
그리고 즐기십시오. 금각을 넘어 맞이한 완전한 자유를.
아까 말씀드렸지요. 비 맞는 꽃들에 대해서요. 그것들은 자신들이 머금고 있을 수 있는 빗방울을 한껏 머금고 있습니다. 꽃들이 지금은 홀딱 몸이 젖어 세상에서 존재를 다 한 것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지만, 그들은 모두 지금은 장애처럼 보이는 비를 맞아 자신의 양분으로 삼는다는 사실을 당신께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그들은 비가 개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전보다 더 싱그러운 빛을 띄며 활짝 피어날 겁니다. 자신이 처한 극한 상황을 당당하게 극복하는 것이지요.
저는 이 위대한 극복이 세계에서 존재할 수 있는 아름다움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아름다움도 만개하기 직전에 이르렀습니다. 만개하느냐 그저 저버리느냐는 당신의 의지에, 그리고 당신의 생각에 달려 있습니다. 저는 이미 당신은 충분히 만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꽃봉오리가 활짝 필 수 있게 하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스스로뿐입니다.
허상을 집어던진 당신의 얼굴에서 위대한 아름다움이 활짝 피어나길 바라며.
추신) 활짝 핀 꽃들과 전통건축물이 어우러진 이곳 교토는 봄철 여행지로 제격인 듯 합니다. 분명 당신도 좋아할 것 같은데, 내년엔 꼭 같이 방문합시다.
오랜 콤플렉스로 괴로워하는 당신에게
당신의 오랜 벗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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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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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개최해주신 덕분에 제 자신의 심연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잘 읽었습니다. 닉을 보니 평소에 하고 싶었던 말씀을 금각사에 녹여내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불변하지 않는 절대적 아름다움, 실재(이상향)이 금각사가 아닐까요? 그에 비해, 주식, 코인을 통한 돈벌기 / 사회 눈치보기 는 금각에 비해 너무 초라해보이는 것 같습니다. 미조구치의 금각과 현대인들의 허상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게 아닐까요?
<금각사>는 ‘금각사 소실’이라는 실제 소재에 불교적 관점을 훌륭하게 덧입힌 작품입니다. 제 닉네임을 불교적 관점에서 보자면 대단히 불경스러운 닉네임입니다. 자아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괴로움을 낳는 무명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불교에서 괴로움은 자아의 존재의 긍정을 비롯해, 어떤 감각에 따른 쾌락, 형상, 사고 등등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되는 것도 마찬가지로 사회가 강요하거나 남들이 무분별하고 강하게 추종하는 어떤 기준이나 가치 등의 사회적 압박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 점에서는 궤를 같이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아주 정당한 지적을 하신 거 같습니다.
그리고 사회의 변화에 따라 개인의 괴로움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요즘 사회적으로 대중들에게 가장 뜨거운 담론은 경제적 자유, 자수성가 등의 경제적 신화에 대한 담론입니다. 새이노의 가르침, 역햏자들 같은 경제적 자유를 위한 마인드 세팅이나 실제적으로 경제적 자유를 얻을 수 있는 수단적 방법을 제시하는 주식, 코인, 경매 등등의 책들이 불티나게 팔리는 것으로 어느정도 이 담론의 화제성이 입증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새로운 담론은 자산의 많음과 적음을 기준으로 승자와 패자가 명백히 갈리게 되고, 이것은 패자들에게 많은 열패감을 주고 있습니다. 특히 저금리 기조의 유지와 더불어 코로나발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자산가격은 급등했고, 독갤의 주요 이용층인 사회진출을 앞둔 학생계층이나 사회초년생들에게는 넉넉한 자산을 가진 집안에서 태어나지 못한 이상에야 생존과 직결되고 열패감을 안기는 주요한 사회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자산시장에 진입하기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이니까요. 이것은 가정과 출산이란 인간의 기본적 과제를 포기하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돈은 일반적으로 속하다는 인식이 있지만, 요즘과 같이 인간의 삶과 직결되어 있는 상황에서 영원불멸한 삶과 그 아름다움의 가능성과 싸우는 인간의 고뇌에 비해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는 인간의 고뇌 중 무엇이 더 무거운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돈을 벌고자 하는 욕구가 사실은 생존을 위한 욕구이자, 번식을 위한 욕구이겠다는 생각일 수 있겠단 생각이 들면서부터요. 영원과 돈 이 두 문제는, 삶을 무겁게 억누른다는 점에선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긴 하지만 분명한 차이를 인정하지 않을 순 없을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영원불멸한 삶과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고뇌가 단지 행복의 수단적 성격을 가진 돈을 어떻게 하면 더 많이 얻을 수 있을까 하는 고뇌의 무게보단 무거웠으면 좋겠습니다.
영원불멸을 꿈꾸는 것이 전통적으로 다루어진 신화였다면, 새로운 시대에는 경제적인 자유를 얻는 것이 새로운 신화로 자리매김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제가 경계하는 것은 수단으로서 돈이라는 물질의 절대화입니다. 행복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성격인 돈의 역할을 벗어나 다른 고귀한 가치들을 무시하는 세태(이것이야말로 진정 속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와 결합되어 새로운 신화가 되고 그로 인해 가치가 없다고 생각되는 것들은 모조리 무시되는 그런 사회말입니다.
돈이 모든 것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고, 집착으로 변질돼 눈멀어 다른 것을 보지 못하는 것, 삶의 다양한 즐거움과 행복, 그리고 가치들이 새로운 신화에 의해 그리고 그것에 대한 집착에 의해 희생된다면, 그 집착은 <금각사>에서 다루는 영원불멸한 삶과 그 존재에서 비롯되는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이 대상을 달리했을 뿐 본질은 인간을 짓누르고 괴롭게 하는 원인이 된다는 점에서 그 본질은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행복의 시작점이다라는 생각을 전달하려 했습니다. 다른분들께서도 이 편지를 읽고 조금이라도 마음이 움직이셨다면 이 경제적 문제는 꽤나 보편적 문제로 많은 분들이 이미 이로 인한 괴로움을 느끼고 계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분들에게 조그만한 위안이 되면 좋겠습니다. 여태껏 독갤에 감상을 남기면서 글의 아쉬운점에 대한 피드백이 항상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덕분에 오늘 소원을 이루네요 좋은 피드백 감사드립니다.
와 좋다.. 재밌게 잘 읽었어
와아 금각사를 불태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