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을유문화전집으로 출간된 이동현 번역가 백치 워드로 옮겨 적고 있어.
맞춤법 고치고, 러시아어 이름 명칭 표준 표기 방식으로 바꾸고, 요즘 스타일로 편집해봤음.
독갤에서 하도 좋다고 해서 얼마나 좋길래 그랬는데, 열린, 문동, 지만지 비교해가면서 보니까 문체도 나름 특유의 분위기가 있고 (약간 김승옥 작가 무진기행 보는 듯), 간결하고 쉬운 문장으로 가독성 좋게 번역하신 듯.
독붕이들 미리보기로 읽어보라고 올림. 워드로 필사해서 독갤 공유하고 싶은데... 지식인에 물어보니까 저작권 문제에 걸릴 수도 있다고 해서;;;
출판사에 혹 복간할 의향이 있는지 문의해봐야겠다.
1
11월 하순, 유난히 포근한 어느 날 아침 아홉 시경에, 페테르부르크·바르샤바 철도의 한 열차는 전속력을 내어 페테르부르크로 접근하고 있었다. 공기가 축축하고 안개가 자욱한 것으로 보아, 이제야 겨우 날이 샌 모양이었다. 그러나 차창 밖으로는 오른쪽이나 왼쪽이나 열 보가 넘는 거리의 것은 아무것도 분간할 수 없었다. 승객 중에는 외국에서 돌아오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그보다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차에 오른 장사치들이 대부분인 삼등차가 더욱 붐비고 있었다. 이런 때면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지만, 승객들은 모두 지칠 대로 지쳐서 밤사이에 무거워진 눈들을 거슴츠레하게 뜬 채 추위에 몸을 움츠리고 앉아 있었다. 얼굴들은 안개빛을 닮아 하나같이 희부옇게 보인다.
이 열차의 어느 삼등차 창문 곁에, 날이 샐 무렵부터 두 사람의 승객이 무릎을 맞대고 앉아 있었다. 양쪽이 다 홀가분한 행장에 수수한 옷차림을 하고, 상당히 특징 있는 용모를 지닌 청년들이었는데, 그들은 서로 이야기라도 하고 싶은 눈치였다. 만일 이 두 사람이, 무엇 때문에 자기들이 이 시기에 특히 주목할 만한 존재인가를 서로 알게 되었다면, 그들은 반드시 자기들 두 사람을 페테르부르크·바르샤바 철도의 삼등차에 마주 앉게 한 기이한 운명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중 한 사람은 키가 작달막한 스물일곱 살가량의 청년이었는데, 곱슬곱슬한 머리털은 거의 새까맣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고, 잿빛을 띤 눈은 작으면서도 불처럼 이글거리고 있었다. 코는 낮고 펑퍼짐하며, 얼굴에는 광대뼈가 불거져 나왔고, 엷은 입술은 줄곧 사람을 깔보는 듯한 거만하고 표독스럽기까지 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은 죽은 사람과도 같은 창백한 안색이었는데, 그것이 이 청년에게 그 억세게 생긴 체격과는 어울리지도 않는 피로의 빛을 부여하고 있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불손하리만큼 거칠은 미소며 자만에 찬 날카로운 눈길과는 전혀 조화되지 않는, 고뇌에 가까운 정열적인 그 무엇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는 폭넓은 검은 빛 양피 외투를 두툼히 껴입고 있었으므로 간밤의 추위에도 그다지 떨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나 맞은편 승객은 습기찬 러시아의 초겨울 밤의 으스스한 기운을, 소름 돋힌 잔등으로 이겨내야만 했었다. 아마도 그는 이러한 추위를 전혀 예기치 못한 듯싶었다. 그는 커다란 벙거지가 달리고 품이 넉넉하며 제법 두툼한 나사제 망토를 걸치고 있었으나, 그것은 어느 먼 나라―스위스나 북부 이탈리아 등지에서 겨울 여행 때 흔히 입는 것과 똑같은 물건이었다. 하기는 아이트쿠넨(독일의 도시명역자 주)으로부터 페테르부르크까지의 긴 여정을 미리 계산에 넣을 수 없었던 것도 당연한 일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아무리 이탈리아에서 편리하고 유용한 물건이라 할지라도 러시아에서는 별로 소용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벙거지가 달린 망토의 주인공도 역시 스물여섯이나 일곱 가량의 청년이었는데, 중키보다는 약간 큰 키에 숱이 많은 담황색 머리, 움푹 패인 볼, 그리고 거의 새하얀 쐐기 모양의 턱수염을 한 줌 기르고 있었다. 커다란 하늘빛 눈은 항상 무엇인가를 응시하는 버릇이 있었고, 그 시선은 고요하면서도 우울한, 일종의 야릇한 표정을 띠고 있었다. 이러한 표정을 보면,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첫눈에 간질의 징후를 발견하는 법이다. 그렇지만 이 청년의 얼굴은 섬세한 데가 있어 퍽 인상이 좋았다. 그러나 윤기라고는 조금도 없는 안색이, 지금은 추위 때문에 엷은 자줏빛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그는 퇴색한 낡은 비단으로 만든 납작한 보따리를 손에 들고 있었다. 그 속에 그의 여행 도구 일체가 들어 있는 것 같았다. 발에는 각반이 달린 굽 높은 구두를 신고 있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모든 점이 러시아식이 아니었다.
머리털이 새까만 양피 외투의 사내는, 상대방의 이러한 모든 점을 샅샅이 관찰했다(반은 심심풀이를 겸해서였지만). 이윽고 그는, 이웃 사람이 곤경에 빠진 것을 보고 고소해 하는 속인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무례하고도 염치없는 조소를 띄우면서 무뚝뚝한 어조로 말을 건넸다.
“춥소?”
그리고는 어깨를 흠칫해 보였다.
“네, 대단하군요.” 상대방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선뜻 대답했다. “그래도 푸근하다는 날이 이 지경이니 정말 날씨가 추웠다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나는 러시아가 이렇게까지 춥다는 건 미처 생각지도 못했어요. 러시아의 추위를 잊어버렸었지요.”
“외국에서 돌아오는 길인가 보군?”
“네, 스위스에서.”
“뭐라구! 그런데도 당신은 이런 꼴로!……”
이렇게 소리치더니 검정 머리는 깔깔거리며 웃어댔다.
이런 식으로 대화는 시작되었다. 스위스식 망토를 입은 담황색 머리의 청년이 상대방인 검정 머리의 물음에 대답하는 태도는 놀라울 만큼 솔직한 것이어서, 상대방의 질문이 지나치게 엉뚱하고 무뚝뚝하며, 다만 심심풀이로 던져지고 있다는 것을 전혀 알아채지 못하는 눈치였다. 이것저것 질문에 대답하면서 그는 다음과 같은 얘기를 들려주었다. 사실 그는 오랫동안, 사 년 이상이나 러시아를 떠나있었다는 것이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 그동안 외국에 머물러 있었는데, 그것은 일종의 신경 계통 질환으로, 갑자기 몸을 떨며 경련을 일으키곤 하는, 말하자면 간질이나 무도병과 유사한 병이었다고 한다.
검정 머리는 상대방의 얘기를 들으며 몇 번이나 히죽히죽 웃었으나, 특히 자기가 “어떻소, 다 나았소?”라고 묻자, “웬걸요, 아직 완전치는 못합니다.”하고 담황색 머리가 대답했을 때는 마구 소리를 내어 웃어댔다.
“흥! 공연히 돈만 뿌리고 온 모양이군. 우리 생각엔 러시아에서 돈을 쓰는 편이 오히려 효과가 있을 것 같은데.” 하고 검정 머리는 빈정거리듯 말했다.
“암, 그렇구 말구요.” 마흔 살쯤 되어 보이는 허름한 옷차림의 사내가 옆에 앉아 있다가 얼른 그의 말을 받았다. 기껏해야 관청의 서기 자리에 매달려 있는 말단 관리로 밖엔 안 보이는 사내였는데, 억센 체격에 붉은 코, 얼굴에는 마마 자국까지 보인다. “옳은 말씀이에요. 공연히 우리 러시아의 돈만 그쪽 사람들한테 죄다 뺏기고 있지요!”
“아니, 적어도 나의 경우에 있어서만은 그렇게 단정할 수는 없을 겁니다.” 하고 스위스에서 온 환자는 상대방을 타이르는 듯한 조용한 어조로 대꾸했다. “나도 물론 다른 사람들의 경우까지 일일이 다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 당신들과 논쟁할 수는 없습니다만, 나의 주치의로 말하면 넉넉지 못한 처지에서 이 년 동안이나 자비로 나를 맡아 주고 있었을뿐더러, 이번에 내가 귀국하는 여비까지 대주었으니까요.”
“그럼 뭐요, 아무도 뒤를 대줄 사람이 없었단 말이로군?” 검정 머리가 물었다.
“네, 전에 내 뒤를 대주고 있던 파블리셰프 씨가 이 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그 후 먼 친척뻘이 되는 예판친 장군 부인한테 편지를 보냈는데 회답이 없더군요. 그래서 이렇게 돌아오는 길입니다.”
“돌아오는 길이라니, 그래 어디로 돌아간다는 거요?”
“말하자면 어디 유숙할 예정이냔 말씀이군요?…… 글쎄요, 아직 모르겠습니다…… 그저, 뭐랄까…….”
“그럼 아직 정한 곳이 없단 말이요?”
그의 말을 듣고 있던 두 사람은 또 한 번 소리를 내어 웃었다.
“그리고 그 보따리 속에 당신의 전 재산이 들어 있는 것 같은데?” 검정 머리가 다시 물었다.
“틀림없이 그럴 겁니다. 내 목을 걸고 장담할 수 있어요.” 하고 더없이 흥겨운 얼굴로 붉은 코의 관리가 말을 받았다. “수화물차에 따로 맡길 만한 짐도 없을 성싶으니까요. 하긴 가난은 죄가 아니란 말도 있긴 합니다만, 그래도 역시 남의 눈에 띄는 걸 어떡합니까.”
사실 이것 역시 그렇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담황색 머리의 청년이 즉석에서, 굉장히 성급한 어조로 그것을 고백한 것이다.
“그렇지만 당신의 그 보따리는 상당히 의미 있는 것 같은데요.” 하고 관리는 실컷 웃고 나서 다시 계속했다. (재미있는 것은, 보따리의 주인도 두 사람을 보고 있다가 마침내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는데, 그것이 또한 상대방의 흥을 더욱 북돋아 준 것이다.) “물론 그 속에 나폴레옹 금화라든가, 프리드리히 금화라든가, 아니면 네덜란드의 아라프화라든가 하는 금화 뭉치가 들어있지 않다는 건 단언할 수 있습니다. 그건 당신의 그 외국식 구두에 달린 각반만 봐도 대번에 알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그 보따리에다 말입니다, 예판친 장군 부인과 같은 당신의 친척을 관련시켜서 생각해 보면 약간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 같군요. 물론 이것은 당신이 무슨 착각을 일으키고 있지 않은 경우, 즉 예판친 장군 부인이 정말 당신의 친척인 경우에 한해서 하는 말입니다만…… 사실 그런 일은 흔히 있을 수 있으니까요…… 말하자면 상상의 과잉에서 오는 착각이라고나 할까…….”
알라딘 중고에 2개가 있는 밤에 보았는데 다음날 다시 들어가보니 누군가 채 가버렸다 틀림없이 독갤러 소행일 듯 난 열린과 문동것을 가지고 있으니 필요가 없는데 한 번 비교해볼려고 하던 참이었다 윗글로만 보았을 대 이동현번역본은 김희숙본과 비슷하다 다만 김희숙본이 더 디테일하다. 정확성 및 충실성 문제는 전문가가 아니라 논할 문제가 아니지만 최근에 출판된 김희숙본이 더 오역이 없고 충실한 번역으로 판단된다
새벽에 3100원 짜리는 내가 샀어. ㅎㅎ;;; 나도 김희숙 번역이 이동현 번역 많이 참고했다고 생각해. 정확성은 나도 전문가가 아니라 논할 수 없지만, 김희숙 1회독 했을 때 한문장의 호흡이 너무 길고, 어휘도 비교적 어렵게 사용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동현 번역은 문장을 쉼표로 짧막하게 끊어주고, 단어도 비교적 쉬운 걸로 골라 번역해서인지 가독성이 좋아!
나중에 이동현 번역 갖고 싶으면 배송비만 내면 올해 말에 양도할께. 나는 헌책을 싫어해서 올해 안에 워드 필사 완료하고, 프린트로 출력해서 읽을거임. 필사완료하면 독갤에 헌책 양도글 올리겠음.
아!~~ 독갤에 망나니들만 있는 줄 알았더니 인성이 풍부한 독갤러도 있군요 매우 훌륭한 생각입니다. 남을 배려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가까운 데 사시면 뵙고 싶습니만 난 저 멀리 남쪽 끝에 살고 있어서
ㅎㅎ 다양한 인간군상이 있는 독갤이라 재밌던데요? 은근 알료샤같은 선한 사람들도 꽤 있더라고요. 아무튼 워드 필사 완료하고 나중에 책나눔 올릴테니, 참여해주시면 닉옆 아이피 기억했다가 우선으로 드릴께요.
걸려넘어지면 걸릴걸?
그래서 독갤에 워드 파일 공유는 못할것 같고 을유문화사 전화해서 복간 문의 얘기했어.
을유에서 뭐라하던가요?
백치 세계문학전집 번역 중이냐고 제가 물어보고, 확인해봐야된다고 얘기하길래 이동현 역자 번역 훌륭하다고 다른 번역가께서 번역 중인게 아니라면 복간 고려해달라고 얘기드렸어요. 출판사에서 번역자 이름 되물어봐서 얘기드리고(받아적었는 듯) 내부 논의해보겠다는 얘기만 듣고 전화 끊었어요.
문동판에 비해서도 대화체가 너무 억양이 풍부한 듯. 특히 레베제프와 로고진 대화는 무슨 악마 새끼들 보는 거 같음.
문동이랑 일일이 대조해가면서 필사중인데 대화는 문동 번역가가 많이 참고해서 번역한것처럼 다른 출판사 번역본들에 비해 유사한 점이 많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