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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호러론>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던 강의를 책으로 옮긴 것이라고 한다. 상당히 흥미로운 내용이라 강의로 들어봤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사실 바르트의 수업도 그렇고 학교에서도 인기가 많던 수업들도 그렇고 실제로는 단순히 같은 학교와 같은 시대에 있다는 것만으로 이를 듣기는 쉽지 않았을 테다. (그런 점에서 뉴턴의 광학 강의나 비트겐슈타인의 수학 강의는 참 듣기 편했을 테다......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만 제외한다면)
내용 자체는 호러라는 장르 자체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어떻게 사회가 호러를 피난처로 삼는지에 대한 사회 비평에 가깝다. "호러"를 "테러"와 대립되는 개념으로 정의하며, 외부로부터 오는 위협에 해당되는 테러와는 달리 호러는 사회 내부에서부터 기인하는 위협이라고 두고, 어떻게 사회가 그 내부에 잉태하고 있는 위험과 그로 인한 붕괴를 철저하게 은폐하려 하는지, 그 과정에서 어떻게 호러 매체가 이를 폭로하거나 수용하려 노력하는지를 설명한다. 물론 사회 내부로부터의 위험이란 당연히 체제의 파국에 가깝다. (참고자료 중 하나로 네그리의 <제국>을 인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체제 내에서는 도저히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고, 추리소설이 어떤 단일한 이성에 의해 문제에 대한 명백한 답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낙관적인 전제를 근간으로 하는 데에 비해 거기에서 이행된 호러소설 붐은 문제에 대한 해결불가능성을 기본 전제로 두고 있다.
문화 비평이 늘 그렇듯 <호러>에서 제시하는 설명이 모든 것을 포섭하지는 못한다. (대중문화의 폭발적 발산 이후, 대부분의 문화 비평은 이 무의미의 세상 속에서 어떻게든 의미를 찾아 묶어내보려는 시도로 딱 절반의 성공을 거둔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6070 호러 붐이 과연 베트남 전쟁의 영향을 받아 기성 제도에 반발심을 느끼면서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서 터져나온 발산인지, 일본의 30년대 에로/그로/넌센스 흐름이 내부로부터의 붕괴를 드러냄으로서 바흐찐의 그로테스크한 카니발로 사회를 바꿔보려는 시도였는지, 그리고 현대(라고는 하지만 90, 00년대 정도에 국한되지만) 일본의 호러붐이 역사의 종언 앞에서 터져나온 "새로운 전쟁" 911을 받아들이는 태도와 연관되어 있는지, 대답하기는 참 애매한 문제다. 참거짓을 따지기보다는 이것이 적법한 틀인지를 먼저 따져야 하는 문제이기에 더 그럴 테다. (빨갛기도 하고)
사실 이러한 문제는 꼭 마르크스적인 지적만은 아니기는 하다. 내부의 문제로부터 눈을 돌리기 위한 타자의 악마화는 역사 속에서 너무나도 익숙하게 반복되는 주제이며, 꼭 <오리엔탈리즘>, <야만인을 기다리며>와 같은 탈식민주의적인 책들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프랑켄슈타인>의 이야기와 집필 배경으로부터 이를 반추할 수 있다. (책에서 언급하는) '<시귀>에 대한 미야베 미유키의 평'에서도 어떻게 미국적인 이야기에서와는 달리 <시귀>에서는 그 강박적일 정도로 뚜렷한 선악의 구분에 대한 믿음이 존재하지 않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유약함이 일본인으로서 자랑스럽다고 하는 걸 볼 수 있다. 이따금, 소련 붕괴 이전의 미국적 삶이란 어떤 것이었을까를 생각해보곤 한다.
비트겐 강의는 개강할 때는 항상 꽉꽉 차 있어서 듣기 힘들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