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갤에서 왜 뜬금없이 빌드업 얘기냐고 하겠지만 (진짜 축구에서 말하는 그 빌드업이다)


나는 빌드업의 중요성을 최근에야 깨달았다.


개인적으로 최고의 문학작품이자 소설은 돈키호테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1은 많이 아쉬운 편이었다.


다만 2를 읽은 후에야 최고의 명작이며


1은 2를 위한 빌드업이란 걸 깨달았다.


파울루 벤투호 시절 후방 빌드업 축구가 떠오르는가?


사실 우리는 빌드업에 익숙하지 않았다.


이운재 골키퍼가 저 멀리 골킥을 차면 하프라인을 넘어 상대편 진영에 대기 중이던 이동국에게 바로 연결하거나


정성룡 골키퍼가 올림픽 대표팀 시절 한때 초장거리 슛으로 기록되었던 상대팀 골망을 흔든 골킥으로 성공한 골.


우리는 예전에 차근차근 쌓아가는 빌드업에 익숙지 않았다.


빌드업? 그건 먹는 건가요?


김상식처럼 본래 수비형 미드필더임에도 킥력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센터백으로 기용하다가 대참사가 터지며 한때 못하는 수비수의 대명사가 된 것도 빌드업의 중요성을 몰랐기 때문이다. (훗날 전북 현대 모터스의 감독이 되어서 다른 의미로 대참사 같은 존재가 되셨다)


그렇다. 이 글도 어찌 보면 빌드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간 익숙지 않았던 우리에게 파울루 벤투는 후방에서 차분히 이어지는 빌드업의 중요성을 깨우치게 했다.


지금 새로 부임해 시원시원한 공격 축구를 선보이는 클린스만 호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그 빌드업의 가치를 말이다.





나는 돈키호테를 추천할 때 고민을 한다.


돈키호테는 1, 2로 나온 일종의 두 권짜리 시리즈인데


1권만 읽겠다거나 2권만 읽겠다거나 혹은 둘 다 읽기 부담스럽다거나 등등 


돈키호테라고 하면 1이냐 2냐 따지는 사람들도 있고 추천이 애매할 때가 있다.


정확하게 이 자리에서 선언하고 싶다.


돈키호테 1, 2로 출간되었지만


하나로 봐라.


돈키호테 1은 돈키호테 2와 돈키호테라는 명작을 완성하기 위한 하나의 빌드업이다.


그 빌드업이 지루할 수 있고 쓸데없이 긴 분량일 수도 있다.


하지만 파울루 벤투호가 우리에게 남긴 빌드업의 소중함과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의 가치였듯이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며 문학과 책, 한 편의 작품에 있어서도 빌드업의 가치를 논할 시점에 왔다고 본다.


공이 곧바로 공격수에게 향하지 않는다.


김승규의 골킥이 곧바로 조규성에게 날아가 여성 팬들이 환호하게 하지 않는다.


파울루 벤투호는 차분했다. 브라질이나 가나처럼 전방 압박이 강한 팀들을 만나 영혼까지 털리더라도


빌드업을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는 황의조나 손흥민,  조규성보다 김승규-김민재, 김영권, 김문환, 김진수으로 이어지는 골키퍼와 수비수들간의 호흡부터 봐야만 했다.


이처럼 돈키호테는 어떤 의미로 보자면 여유로운 느낌의 빌드업으로 완성된 소설이라고 본다.


돈키호테는 1, 2 두 개로 나뉘어졌지만


결국에는 하나다.


분량의 압박을 두려워할 필요 없다.


무시무시한 브라질 공격수들에게 연달아 골을 헌납하고도 꾸준히 후방 빌드업을 중시하던 대한민국 태극전사들을 떠올리면서라도


차분히 돈키호테 1, 2를 읽고 후에 다가올 감동을 느껴봐야 한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돈키호테는 불구가 될까 우려할 만큼 다쳐도 불굴의 의지로 뜨겁게 살아갔다.


함께 따라다니던 산초도 마찬가지다.


참고로 살짝 언급하자면 개인적으로 돈키호테 2에서 돈키호테보다 산초의 이야기가 더 뛰어나다고 본다.


산초 판사가 정말 판사처럼 활약하는 장면은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한다.


어쩌면 산초의 등장 또한 작가가 장치한 진주인공이자, 공격수가 없는 듯하나 진짜 공격수가 따로 있을 일종의 펄스나인 전술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우리는 모자란 친구처럼 보이는 산초의 2에서 활약을 보고 진정 빌드업의 중요성을 깨우치게 될 것이다.


벤투호는 절대 이운재와 김상식, 정성룡을 이용한 롱 킥 전술 유형의 뻥축구를 구사하지 않았다.


이것이 뻥축구로 유명한 뻥글랜드, 바로 영국의 대문호들과 명작들을 능가한 스페인의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의 승리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월드컵 결승에 올라온 팀 중 축구종가 잉글랜드보다 무적함대 스페인의 모습이 더 익숙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최근에는 두 팀 다 월드컵 결승에 안 보이고 있지만) 


돈키호테는 그 많은 분량을 선보이면서까지 절대 완성도의 끈을 놓지 않았다.


수많은 작품들이 편집 과정에서 삭제되거나 분량이 축소되는 경우가 있으나 돈키호테는 안정감 있는 빌드업의 길을 통해 세계에 남을 걸작으로 완성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근현대 국문학이 일본문학의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이 있는데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포르투갈인들인 파울루 벤투나 예전 전북 현대 모터스 감독이던 모라이스가 후방 빌드업을 중시하는 축구를 추구한 건


이웃 나라 스페인 출신의 세르반테스에게서 영향 받은 게 아닐까?


결론은 우리가 파울루 벤투를 벤버지라고 부르며 그가 완성한 대한민국 대표팀이 그의 조국 포르투갈을 역전승하고 호날두가 열두 번째 태극 전사로 활약하며 16강 진출의 꿈을 이룬 것 또한


한 편의 감동 실화를 이루기 위한 신의 장난과도 같은 커다란 빌드업일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돈키호테처럼 말이다.


그러니 돈키호테는 1, 2 둘 다 봐라. 두 번 봐라. 


2022 카타르 월드컵에 열광하고 파울루 벤투의 축구에 단 한 번이라도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반응한 적 있는 사람이라면


돈키호테를 읽어야 한다.


그것이 신과 인간 사이에 맺어진 언약과도 같은 약속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