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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있는 자"란 누구인가?

정복하는 자,
전리품을 취하는 자,
전쟁터에 진을 치는 자다.
인생 자체가 온통 전쟁터다.
굴종이란 어떻게 생겨났는가?

최초의 노예는 전쟁에서 패배한 뒤
굶주림과 구타로 길들여진 전사다.
그 후손은 처음부터 복종하도록
태어나고 훈련받아, 갈수록 더 유순해진다.
그렇게 모든 노예계층은 패배한 전사의 후예다.

주종제도는 옛날처럼 건재한가?

물론이다.
생존을 위한 한 치의 양보 없는 싸움에서,
나약하고 연약한 자들은 알아서
머리를 조아리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창조되었다"고 배운다고?
그것이야말로 외교적 수사일 뿐이다.

노예는 어떻게 해야
자신의 자유를 되찾을 수 있나?
한마디로 말해, 나를 정복한 자를
내가 정복하면 된다.
만일 자신이 그럴 만한 존재가
아니라고 판단되면,
그 즉시 단념하고 자기 목을 자르든가,
끝까지 굴하지 않고 싸우다 죽든가다.

그래도 자유가 허락될 수 있는 것 아닌가?
자유란 원래허락되는 것이 아니라,
빼앗아오는 것이다.


목에 칼을 들이대도 결코
목숨을 구걸하지 않는 용기,
뻣뻣하게 쳐든 머리를
절대 수그리지 않는,
거칠고 가차 없는 용기!
머뭇거리지 않고,
물러나지 않는 용기!

일체의 타고남, 신분, 노예규칙,
옳고 그름, 선과 악을 고고한 경멸의
눈빛으로 내려다보는 용기!
극복하지 않으면 파멸하리라
내심 작정한 용기!


그런 용기가 지금 이 세상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런 용기야말로 적자생존,
최강이 살아남는 과정에서
능동적으로 작용하는 요소다.

자유롭고자 하는 자는 누구든 자신의 힘을 보여줘야만
한다. 현세적 위대함의 본질은 지금도 불변(不變)이다.
누구든 스스로를 높이는 자는 높아질 것이요.
자신을 낮추는 자는 마땅히 남의 발아래 짓밟힐 것이다.
목숨 거는 일을 두려워하는 자는 그 무엇에서도
승리할 수 없다.


자연 그대로의 조건에서, 비천한 자를 위한 피난처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약한 자를 위한 희망, 지친 자를 위한
휴식처, 패배한 자를 위한 관용은 없다.
자연은 연약한 존재를 혐오한다.
모든 생명체, 모든 인간은 군림하든지
복종하든지 둘 중 하나다. 이것은 궁극의 결론이다.


나폴레옹은 이렇게 훈시했다. “너희가 명성을 얻으려거든
적의 모가지를 짓밟아야 한다. 위대한 인간은 성공을 통해
만들어진다." 이 세상에서 인간이 다해야 할 의무는
오로지 성공하는 것이다. 자기 앞가림을 하고 적을
물리치는 것, 경쟁상대를 앞지르는 것.
정복하지 못하는 자는 정복당한다.
남을 무자비하게 짓밟지 못하는 자는 남에 의해
짓밟힐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팔이 휘두르는 힘만큼
자기 빵을 찾아 먹고, 노예는 자신의 이마에
흐르는 땀만큼 주인을 위한 빵을 생산한다.


쇼펜하우어, 니체 읽고 광명찾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