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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자살이다. 인생이 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 문제에 답하는 것이다.”
<시지프 신화, 카뮈, 민음사>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자살이다. 인생이 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 문제에 답하는 것이다.” 라는 말로 이 책은 시작된다. 이 책에선 형이상학이나, 논리학, 인식론 등의 문제가 아닌 오로지 인생의 문제를 다루겠다고 말머리에 밝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어떤 이론도 결국 그 사람의 삶, 행동이나, 그 이론의 실천에 의해 평가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서문에서 카뮈는 자신은 엄밀히 이야기해서 부조리의 철학이 아닌 ‘부조리의 감성’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는 것을 명확히 밝히는 바, 철학이 다루어야 할 문제, 즉 자살을 일련된 이론이나 체계적인 지식이 아닌 ‘부조리 그 자체’를 통해 풀어나가겠다는 뜻이다. 따라서 부조리와 자살이 이 책의 핵심 주제가 될 것이다.
사람은 왜 자살을 하는가? 수많은 이유가 있지만 결국 자살은 삶을 감당 할 수 없다는, 삶을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다는 고백이다. “환상과 빛을 박탈당한 세계에서 인간은 자신을 이방인으로 느낀다.” 이때의 감정은 세상과 ‘나’가 절연(絶聯), 분리 되어있다는 ‘부조리’함이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 자살을 생각하므로 이는 달리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부조리 때문에 자살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조리에 대한 결론으로 자살이 타당한가?
부조리의 첫 징후는 일상생활의 흐름 속에서 불현듯 “왜?”라는 의문이 솟아나고 권태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 권태는 우리에게 스쳐 지나간 것들에 대해 의식함을 부여한다. 이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면 나타나는 것이 ‘낯섦’이다. 세계가 두껍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 기저와 간극에 비인간적인 것들이 도사리고 있는지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선 사르트르의 ‘구토’를 읽어보면 도움이 될 듯하다.) 이 부조리에 대해 카뮈는 어떠한 통일적인 이론을 내놓기를 거부하며, “내 속의 이 마음, 나는 이 마음을 느낄 수 있으며 이것이 존재한다고 판단한다. 이 세계, 나는 이 세계를 만질 수 있으며 이것 역시 존재한다고 판단한다. 나의 모든 지식은 여기서 멈춘다. 그 밖의 것은 만들어낸 것이다.” 라고 말한다.
부조리는 그 특성상 인간과 세계, 나와 타자, 나와 자신 이 양자가 함께 있는 가운데 있을 뿐이다. 인간을 벗어나도 부조리는 없고, 세계를 벗어나도 부조리는 없다. 이 부조리를 없애는 것은 인간 이성을 초월하는 것이고, 초월자를 요구하는 것이며, 인간이나 세계를 벗어나는 것이다. 이 곳에서는 희망도 구원도 없다. 카뮈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부조리의 회피나, 부정이 아닌 ‘부조리와 함께 더불어 살 수 있는가.’ 이다. 자살은 부조리의 폐기일 뿐, 올바른 대답이 아니다. 산다는 것은 결국 부조리를 살려 놓는 것이다.
이 부조리란 사막 속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태도는 반항이다. “반항은 인간과 그 자신의 어둠의 끊임없는 대면이다. 반항은 어떤 불가능한 투명(透明)에의 요구다. 반항은 매 순간 세계를 재고할 대상으로 삼는다. 위험이 인간에게 반항해야 할 유일무이한 기회를 제공하듯이, 형이상학적 반항은 경험 전반에 의식을 펼쳐 놓는다. 반항은 인간이 자신에게 끊임없이 현존함을 뜻한다. 반항은 동경이 아니다. 반항에는 희망이 없다. 그 반항은 깔아뭉개려 드는 운명에 대한 확인이나 그에 따르기 마련인 체념을 거부하는 확인일 뿐이다. …이 반항은 삶에 가치를 부여한다.” 자신이 이 사막에 대해 스스로가 이방인임을 느낌으로써, 반항함으로써 그는 해방되고 자유로워질 수 있다. 불모지는 그 어떤 것도 세워 올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더욱 불모일수록, 더욱 백지일수록 그렇다.
또한 카뮈는 한 인간의 모럴과 가치의 척도는 그가 축적할 수 있었던 경험의 양과 다양성에 비추어 볼 때 비로소 그 의미를 갖는다고 말한다. 부조리의 인간은 가장 많이 사는 인간이다. “자신의 삶, 반항, 자유를 느낀다는 것, 그것을 최대한 많이 느낀다는 것, 그것이 바로 사는 것이며 최대한 많이 사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 책의 제목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시지프 신화 속 주인공 시지프(시지프스)은 신들이 내린 형벌로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끊임없이 굴려 올려야만 했다. 그런데 이 바위를 산꼭대기에 올려놓으면 바위의 무게 때문에 다시 굴러 떨어졌고, 시지프는 그 바위를 다시 굴려 올리는 무용하고 끊임없는 노동을 해야만 했다. 이에 카뮈는 “시지프가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바로 저 산꼭대기에서 되돌아 내려올 때, 그 잠시의 휴지의 순간이다. 그토록 돌덩이에 바싹 닿은 채로 고통스러워하는 얼굴은 이미 돌 그 자체다! 나는 이 사람이 무겁지만 한결같은 걸음걸이로, 아무리 해도 끝장 볼 수 없을 고뇌를 향해 다시 걸어 내려오는 것을 본다. 마치 호흡과도 같은 이 시간, 또한 불행처럼 어김없이 되찾아오는 이 시간은 바로 의식의 시간이다. 그가 산꼭대기를 떠나 제신의 소굴을 향해 조금씩 더 깊숙이 내려가는 그 순간순간 시지프는 자신의 운명보다 우월하다. 그는 그의 바위보다 강하다.” 라고 말한다. 그는 그 끔찍한 삶에, 신의 형벌에, 그 무의미함과 불모성에, 그 모든 부조리에 끊임없이 반항함으로써 그것들에 대해 승리를 취하고 스스로 자신의 운명에 주인이 된다. 개인적은 운명은 있어도 인간을 능가하는 운명이란 없는 것이다.
책을 독해하기가 쉽지 않아서, 내 머리통을 깨부수고 이 책의 글자들을 내 머리통 속에 집어넣고 싶었다. 그만큼 쉽지 않은 책이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사상, 그의 발자취, 그의 역사를 좇아가고 이해하는 것은 원래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느낀 두통은 오히려 기분 좋게 참을 수 있는 성장통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에 담긴 모든 내용을 내 것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여기에 적힌 내용은 오로지 나의 시선과 한계에서 적힌 것이므로, 실제로 이 책을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요약적으로 잘 쓴 거 같음
감사... 합니다...
배경 넣으니까 길이가 긴 데도 잘 읽힌다. 좋은글 굳굳 - dc App
샤르트르 구토도 난 너무 어려웠음... - dc App
배경이 마음에 들어 다행이네요... 감사합니다...!
조만간 구토도 한번 올려보겠습니다...
잘 간추리신 것 같음... 근데 난 철학적 자살 관련한 부분이 제일 좋았는데 그 부분이 읎넹...
그 부분은 아예 따로 정리해 놓는 게 좋을 거 같더라고요
해당 댓글은 삭제되었습니다.
저도 어려웠지만 꾹 참고 읽었습니당... ㅎ
야생의 동물들은 매순간이 생사의 갈림길이죠 매사가 사투입니다 인간은 매사가 사투가 아니기에 자살을 생각하는 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