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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형, 연암 박지원의 천주교 인식과 대응 양상, 대동문화연구, 110, 2020


18세기에 들어서면 노론-소론 유학자들 사이에서 유학적 경세론의 입장에서 서학을 수용했다. 특히 북학파들은 연행을 통해 자신들의 사상을 강화해 나갔다. (275) 그러나 연행으로 청에 간 지식인들은 서양의 종교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는 박지원 역시 마찬가지로, 천주교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박지원은 예수의 존재에 대한 의문과 천주교가 불교의 교리를 차용했다고 생각하는 등, 안정복 · 이헌경과 같은 맥락에서 천주교를 비판했다. (278)

박지원은 면천군수로 재직할 당시 천주교 신자들을 관리해야 하는 문재에 직면했다. 특히 박지원이 면천군수로 있던 당시는 충청도 지방에서 정사박해가 일어났기에, 이 문제는 더욱 중요했다. 과정록에 따르면, 박지원의 면천군수 부임은 정조의 의중이 작용한 결과였다. (281~282)

박지원은 형벌보다는 교화를 통해 천주교도 문제를 해결하고자 함. 이러한 박지원의 방식은 일정한 성과를 거둠 (284~285) 박지원은 천주교 문제가 심화되면 일본의 시마바라의 난과 같은 반란이 발생할 것을 우려한다. (287)

 

박지원의 후손인 박규수는 서양 문물 수용의 중요성을 역설했지만, 벽위신편평어에서 드러나듯 천주교에 비판적이었다. 여기서 박규수는 천주교의 논리적 모순과 천주교가 침략의 수단으로 쓰인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이전까지의 강력한 처벌을 전제로 한 대응책을 비판하고, 천주교의 문제점을 파악하기 위해 적극적인 천주교 서적의 수입과 번역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을 평안도 관찰사 시절에 천주교도를 처형하지 않으면서 실천하였다. 이는 박지원의 면천군수 시절 모습과 상호 참조가 된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288~2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