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을 인도했던 무형의 그 것은 과연 무엇일까?

'A'살아 생전 만들었던 영화는 '친구의 죽음을 애도하러 가는 3명의 무리'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서로 말없이 국도를 달리는 차 안, 햇빛에 의해 반사된 유리창 너머로에 바깥 풍경들은 익숙한 듯 재빠르게 사라지고,각자 무슨 상념에 빠지고 생각을 안고 가는지 알 수 없었던 영화였다.  

이러했던 영화를 만든 감독,'A'가 죽고, 그 의 대학교 친구들이 그 를 애도하러 간다.'A'는 자신의 죽음을 어쩌면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였을까?자신이 영화에서 만든 인물들의 대화나 행동들이 실제 그를 조문하러 가는 친구들에게 서 그대로 나타나 있었기 때문이다. '김' '최' '정' 이 세사람으로부터  A의 죽기 직전에 문자 메세지 ,달리는 차안 여정에서의 갖가지 에피소드들을 말미암아 잊혀졌던 A의 기억들이 하나씩 떠오른다.
각자 때를 알 수 없는 시점에서 잊혀져 버린 A를 말이다.그런 친구들의 모습을 그리워 했던 것일까?친구들과 관련된 소재를 문자 메세지를 A스럽게 보낸다.
A스럽게라,그건 다시 말하면 누구도 따라 할 수없는 개인의 고유한 색깔을 말하는 것이다. 죽어서도 'A'스럽게. 과거,세 친구와 모여서 어울렸던 그 때와 몇 시간전 교통사고를 당한 A는 안쓰럽게도 별반 다른 점이 없는 한결 같이 A스러운 A였다.
싸늘했던 '정'의 말 한 마디,사랑했던 '김'의 멸시, 끝끝내 'A'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지 못한 '최' 결국,'A'곁에는 그 누구도 없었다. A가 만든 영화속에 인물들이 살아있는 느낌을 받지 못했고,색이 덜 입혀져 있던 이유는 어쩌면, A의 친구가 아닌 우리가 비교적 쉽게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A'에게 "왜 이러한 영화를 만드셨나요?"라고 질문했다면  'A'는 필경,"실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했을 것이다. 친구에 죽음을 애도하러 가는 그 길. 분명, 그 들의 마음 속에선 죽은 A가 천국과도 같은 좋은 곳으로 가길 바라고 있겠지만, 실은, A는 살아생전 천국보다 낯선 곳에서 살고 있었다.



김:나는 기묘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하나의 공간에 두개의 세계가 겹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서로 다른 세계를 지나가듯이, 그 들은 슬로비디오처럼 서로를 지나쳐갔다. 위도나 경도가 어긋나 있는 두 개의 차원을 서로가 서로를 발견하지 못 한 채로.



---그 는 나를 알지만, 나는 그를 모른다.나는 왜, 그가 나를 어느순간 하나씩 알아가고 있는 동안 그 를 제대로 알지 못 했을까? 어쩌면,어제의 그 와 오늘의 그가 너무나도 확연하게 달라져 있어서 쉽게 '그'를 내 스스로 정의하지 못 하는 것일까? 미안하기도 하고,억울하기도 한 이 기괴한 상황을 어서 빨리 벗어날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별점: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