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시인은 발명가라기보다는 발견자라는 것입니다."

- 알레프에 수록된 단편 '아베로에스의 탐색' 中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단편들을 읽을 때마다 당혹스러움이 내 머리 속으로 밀려 들어온다. 비루한 내 지식으로는 알 수 없는 수많은 학자들과 이들의 저작들이 작품에 산재해 있는게 그 이유가 되기도 하지만 결정적으로는 보르헤스의 소설들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지레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형이상학적이고 난해한 내용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 보르헤스의 이야기를 접했을 때는 적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독해해 내는데 애로사항이 꽃핀 나머지 적힌 활자를 훑어 보는데만 주안점을 뒀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직접 읽을 때만 하더라도 종잡을 수 없고, 불친절해 보이기만 하는 문장들을 곱씹어 보기 시작하면 법열에 젖은 것과 같이 머리 속에서 생각들이 피어나고는 한다. 이번에 보르헤스의 단편집 '알레프 (El Aleph)' 를 읽으면서 나를 사로잡은 한 마디가 바로 위에 내가 인용한 문장이다.


상기한 문장만 본다면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의문이 들 수도 있을 것 같아 간단하게 전후 상황을 설명하고자 한다. 해당 인용문은 알레프에 수록된 단편 중 '아베로에스의 탐색 (La Busca de Averroes)' 라는 단편에서 나오는 말이다. 본작의 주인공인 아베로에스는 이슬람 제국 치하에 있던 스페인 코르도바 태생의 아랍인 이슬람 율법가인데 아리스토텔레스 연구로도 이름을 날렸던 사람이다. 작중 아베로에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을 연구하면서 튀어나온 '비극' 과 '희극' 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애를 먹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코란 학자인 파라치의 저녁 식사에 초대를 받아 동료 학자들과 담소를 나누었다. 그러던 와중 손님 중에 압달말리크라는 자가 아랍권 시를 평론하는데, 오래된 은유들은 쇄신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며 그 예시로 아랍권에서 대가로 취급받는 주하이르가 운명을 눈 먼 낙타에 비유하며 읊었던 시를 들어 그 시는 5세기에 걸쳐 사람들의 감탄을 받으면서 이제는 아무런 가치도 없어졌다며 투덜댄다. 그러자 아베로에스는 두가지 논거를 들어 압둘말리크에 반박한다. 첫째로는 시라는 게 독자로 하여금 시시각각 놀라움만 선사하는 것만 목적으로 삼는다면 시가 다루는 시간은 백년 단위로 측정되는 게 아니라 날과 시간, 초 단위로 측정되어야 할 거라며 시가 독자의 시간에 꼭 알맞아야 한다는 의견에 반론한다. 그리고 그 두번째 논거로 든 것이 바로 위에서도 인용된 내용인데 바로 유명한 시인이란 발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발견해내는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그리고 아베로에스는 다음과 같이 견해를 덧붙였다. "오직 한 사람만이 고안해 낼 수있는 심상은 그 누구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심상입니다. 지구상에는 무한히 많은 것들이 존재합니다. 그것들 중의 무엇인가는 다른 것들 중의 무엇인가와 비교될 수 있습니다. 별을 잎사귀에 비교하는 것은 별을 물고기나 새에 비교하는 것만큼 자의적인 것입니다."


이 대사를 통해 보르헤스는 문학가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은 만물에 깃든 미학적인 특징들을 포착해내어 은유해 낼 수 있는 능력이라는 점을 역설한다. 처음에 이 문장을 읽었을 때만 해도 별다른 감상이 들지 않았지만 곱씹어 보니 내가 사랑하는 다른 문학가들도 이런 방식으로 작품을 완성해냈다는 생각이 들어 저 한 문장에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령 예를 들어보면 20세기 최고의 문학가 중 하나로 꼽히는 프란츠 카프카는 프라하의 노동 보험 공단에서 법률고문으로 일하면서 산업재해를 당하면서 부양능력을 상실한 노동자들을 많이 접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경제적으로 무능해진 인간군상을 삭막하고 몽환적인 방식으로 '변신' 이라는 걸작을 만들어냈다. 또한 법학을 공부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체감하게 된 관료주의의 폐단을 바탕으로 '소송' 을 집필한 적도 있다.


꼭 다른 문인을 예시로 들며 돌아갈 필요없이 알레프의 저자인 보르헤스만 하더라도 이 대사의 좋은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다. 보르헤스는 자신이 접했던 저작들과 예술 작품들을 패러디하여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냈던 사람이기도 하고, 본인이 겪었던 기이한 경험들도 개성넘치는 방식으로 그려내어 독자들을 신선한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작가이다. 아베로에스의 탐색과 같은 단편집에 수록된 '아스테리온의 집' 은 미궁에 갖혀 우수에 젖어 밖을 바라보고 있는 미노타우르스를 묘사한 조지 프레데릭 와츠의 그림 '미노타우르스 (The Minotaur)' 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고, 작가의 또다른 단편집인 픽션들에 수록된 '남부' 의 경우에는 1938년 머리를 크게 다치며 사경을 해맸던 작가 본인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모티브를 얻어서 집필한 호접지몽의 원조격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이만큼 창작의 과정을 잘 드러낸 문장이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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