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해도 학생들은 철학이 개설된 강의실에 발을 들여놓기를 주저한다. 불투명한 현대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재학 시절부터 장래를 설계하는 모범 학생일수록 '철학은 무익하고 괴짜 교수만 있을 뿐'이라는 상식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철학이 무슨 도움이 되나요?"
새 학기 첫 수업에서 어김없이 학생들이 던지는 이 악의 없는 질문은 교수의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왜냐하면 질문의 내용은 철학의 유래나 주제, 방법도 아닌 '자신의 생활 속에서 무슨 목적에 어떤 수단이 될 것인가'를 묻는 것이기 때문이다.
철학은 진실과 거짓,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 등 다른 학문이 전제하는 가치나 그 논의를 뒷받침하는 논리가 정말로 신뢰할 수 있는 것인지를 다룬다. 이를 일상생활로 끌어와보자. 철학은 평범한 우리가 획득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획득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자문해보는 것이지 획득 방법을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 철학의 문제는 학생의 질문과는 다른 차원에서 설정되어 있다. 그래서 철학은 상식에 기초한 일상생활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에 불안과 혼란을 야기하는 위험사상으로 꺼릴 정도다.
철학의 조상으로 불리는 소크라테스는 사물의 진리를 알고 있을 사람들을 논파하여 '무지의 지'로 이끈 탓에 청년들을 현혹했다는 죄로 사형에 처해졌다.
그러니까 교수는 고작 '자네가 의문을 갖는 것에 스스로 납득할 만한 방법으로 답하기 위해 말의 의미나 사용법을 재정립하는 것이다'같이 적당히 답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학생은 쓴웃음을 지으며 침묵하게 된다. 교수는 교수대로 '또 괴짜라는 말을 듣겠군'하고 혼잣말을 하게 된다.
옆에서 보면 정말 우스꽝스러운 광경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그중에는 연타를 날리는 몰인정한 학생도 있다.
"그럼 학점을 받으려면 어떻게 공부해야 좋을까요?"
일단 도서관에 가서 '철학 입문'이나 '철학 개설'이란 제목의 책을 빌려 각각의 학설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이 보통일 텐데 이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다.
이른바 대부분의 철학 교과서는 시대나 지역 혹은 테마별로 내용을 분류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 너무나 광범위해서 독자는 자신이 흥미를 가질 만한 대상을 쉽게 발견할 수 없다.
게다가 '지혜를 사랑한다'라는 의미의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필로소피는 단어 자체에 철학은 '일정한 원리로 특정 대상을 분석하고 설명하는 학과'라는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뜻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그 안에 형이상학과 논리학, 윤리학과 미학 등의 구분이 있음에 초보자는 당황하고 혼란을 느끼게 된다. 더구나 철학자에 따라 사상과 방법적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경험론'이니 '관념론'이니 또는 '실존주의'나 '삶의 철학' '분석철학' '실용주의' 같은 명칭이 등장하면 머릿속은 패닉 상태에 빠진다.
원래 아무리 간략하게 되어 있어도 전문용어로 쓰인 이론을 읽고 혼자 힘으로 구체적인 예를 적용하고 타당성을 생각하는 작업은 처음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만만치 않는 일이다. 대개 이론은 미리 이해한 상태에서 특정한 관점에 해설을 부가하며 제시하는 순서로 배울 때 이해하기가 쉽다. 그런데 동서고금의 이론을 인류의 지적 유산으로 열거하는 철학 교과서로는 좀처럼 잘되지 않는다. 마치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지식을 확인하려는 사전처럼 되고 만다. 그래서 철학은 배우기 어렵다.
웬만한 각오와 근성이 없는 한 책상 위에 책을 쌓아둔 상태로 끝나버린다. 그러나 모든 것은 생각하기에 달렸다.
상식적으로 보면, 대학 교실과 같이 안전한 공간에서 무익한 위험사상을 설명하는 괴짜의 모습을 관찰할 기회는 흔한 것이 아니다. 이를테면 그곳은 상식에서 해방된 지적 무법지대다.
현재의 자신과 세상에 만족한다면 철학에 흥미를 갖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불안과 불만을 가지고 있다면 교실 모습을 살짝 엿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일 수 있다. 철학에는 지금 그대로는 도달할 수 없는 또 다른 미래에 대한 힌트가 들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철학자 만큼은 아니지만 역사를 개척해온 주체는 눈앞의 이익에 집착하지 않고 비상식적인 이상과 신념을 관철한 괴짜들이다.
오오하시 모토이「대학생이 알아야 할 리얼 철학」 중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철학에 깊이 빠져들지 않을 수 있었던 ㅏ자기 삶에 감사했었지 그만큼 위험하고 경멸스러운 어떤 것이었다는 것
책벌레가 되는 것과 전문적인 철학이론에 빠져드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았음
아페이론과 페라스, 포이운을 알기 전에는 에브리데이가 드림이었다 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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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기 봤는데...이게 비철학자를 위한거라고?
실제로 프랑스 철학 교욱과정을 생각해보면 의외로 입문용이 맞을수도
상식에서 해방된 지적 무법지대 ㄷㄷ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