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은 주인공 지능이 퇴화하면서 가족들도 맛이 가는 기분이고 선고는 급발진 제로백보는듯하고 시골의사는 이해가 안됨. 팬들 말로는 "그게 부조리라는거죠." 라는데 내가 보기에는 그냥 논리의 비약밖에 안되는거같음. 독갤에서 추천한 실존주의자들은 어째 하나같이 광인짓을 하는걸 본질의 탐구라고 포장하는 느낌임. (중범죄자 출신 도박중독,진짜 광인, 햇볕 쨍쨍, 생각하는 갈대)
댓글 20
원래 농담은 말로 설명하면 재미없음
익명(jafo0104)2023-04-27 01:31
답글
과연 독일 문학.
NRA(110.46)2023-04-27 01:32
답글
진지하게 답변하자면 카프카는 단순히 실존주의 이런 말로 치환할 수 없는 작가임. 비유와 알레고리가 가득하기 때문에. 변신은 그나마 직관적으로 이해가능하지만, 선고나 시골의사는 비유로 해석해야 함. 이러한 의미의 다의성은 일반적인 독자에겐 난해함으로 다가오지만, 이러한 다의성 때문에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음. 대표적으로 법 앞에서 는 누군가는 억압과 폭력의 역사를 읽어내고, 누구는 메시아주의를 읽어내며, 누군가에게는 텍스트의 불가해성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거임
익명(jafo0104)2023-04-27 01:35
답글
실존주의 자체가 샤르트르 제외하면 편의상 사용되는 표현이고 단어 하나로 작가 표현 가능한 작가가 몇 안된다는 점에서 그리 와닿지는 않음. 내 입장에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작품은 처음부터 미완의 작품이거나 작가가 철저하게 무의미를 의도(고도를 찾아서처럼)한 경우밖에 없다고 봄. 그런 의미에서 난 카프카 작품에 큰 의미 부여가 힘들다고 봄.
NRA(110.46)2023-04-27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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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예로 들자면, 예수의 비유는 다양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음. 이는 직설적인 언어로는 결코 표현할 수 없는 다양함을 표현하기 위한 것임. 카프카 역시 마찬가지임. 카프카의 일견 역설적이고 무의미해보이는 글들은 실상 비유적인 표현으로 직설적인 방식으론 담아낼 수 없는 다양한 표상들을 담아낸 것이라 할 수 있음. 이는 비슷한 실존주의 문학으로 묶이는 이방인이나, 구토, 타인은 지옥이다 류의 작품과 완전히 다른 영역임. 실존주의 문학은 개인의 강렬한 감정, 삶, 육체, 법칙이나 규칙, 공동체 따위로 환원할 수 없는 배제된 개인이라는 내용을 다뤘다면, 카프카는 그냥 저 작가들이랑 시기가 비슷했을 뿐, 완전히 다른 문학을 한 거임. 그게 카뮈와 사르트르랑은 달리, 카프카는 벤야민이나 들뢰즈, 아감벤 같은 철학자
익명(jafo0104)2023-04-27 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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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에게 끊임없이 인용되는 거임. 물론 에수의 역설적 비유 같은 게 그냥 궤변에 불과한 내용 없는 공허한 소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카프카가 예수랑 비교하기에는 그 비유의 질이나 내용이 너무 떨어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음. 그건 개인의 감상이니까. 다만 후대의 작가들이나 철학자들이 카프카를 좋아하는 이유가 이러한 것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됨
익명(jafo0104)2023-04-27 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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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나도 성경으로 답하겠음. 예수의 비유는 나중에 작성되었다고 추측되는 복음서일수록 모호하거나 모순된 비유를 사용하는데 특히 그리스인을 대상으로 삼은 요한복음서는 공관복음서와 상당히 이질적인 구성으로 이루어져있음. 이는 좋든싫든 공동체나 작성자의 주관이 삽입되어있다고 있다고 보는게 타당함. 그렇다면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작품의 해석이 다양하게 갈리는 것
NRA(110.46)2023-04-27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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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저자의 의도인가? 독붕이는 이 소설이 코미디라고 말했는데 이렇게 복잡하고 난해하게 서술된 것이 독일어 화자의 의도라면 내가 잘못 이해한거겠지만 해석이 제각기 갈리고 그 중 어느 무엇으로도 단번에 설명이 어려웠다면 최소한 그게 작가의 의도라고 생각하지는 않음. 물론 내가 비유를 이해 못했을수도 있지만 연구자나 비평가가 개인 주관을 복음서처럼 투영할 가능성
NRA(110.46)2023-04-27 02:07
답글
이 높다는게 내 생각임
NRA(110.46)2023-04-27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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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가 시기만 달랐을 뿐 실존계열 작가와 다를 뿐이라고 생각 안듦 - dc App
지나가는문과(laumak94)2023-04-27 02:09
답글
나머지 글은 동의함 - dc App
지나가는문과(laumak94)2023-04-27 02:09
답글
예수의 비유가 다의성을 지닌다는 게 저자의 의도에 쉽게 영향을 받고, 그런 점이 카프카에게서도 보이는데 이것이 카프카의 단점이라고 생각한다면 뭐 인정함. 문학에 대한 개인의 관점은 옳다 그르다의 영역이 아니니까. 나는 왜 카프카가 많은 사랑을 받는지를 설명한 거고, 이러한 다의성이 다양한 철학자에게 매력적으로 보인다고 말한 거임. 만약 이걸 보고 철학자들은 카프카를 칭찬한 게 아니라, 그저 자신의 철학적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 카프카를 이용한 거다 라고 주장하면 그것도 어느 정도 맞다고 생각함.
익명(jafo0104)2023-04-27 02:18
답글
연구자나 비평가가 개인의 주관을 투영할 가능성이 높다 >>> 실제로 카프카에 대한 비평은 그런 경향이 매우 강함. 이것을 매력으로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반대로 이걸 포모식 말장난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 실제로 포모 철학자들이 카프카를 그런 식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익명(jafo0104)2023-04-27 02:22
답글
물론 포모 철학자 외에도 카프카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음. 쿤데라의 경우에는 카프카를 톨스토이나 프루스트와는 완전히 대비되는, 실존의 풍부한 면이 질서에 강제로 편입되어버린 비참함을 다뤘다고 좋아하는 케이스도 있으니까. 하지만 이 역시도 카프카에 대한 완전한 해석이라고 할 수도 없으며, 그런 측면이 있다 정도로 밖에 볼 수 없음. 적어도 도스토옙스키나 하루키 같은 독갤에서 좋아하는 직관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작가랑은 다른 케이스라고 할 수 있음.
익명(jafo0104)2023-04-27 02:28
답글
ㄴㄴㄴㄴ오히려 실존주의자들이 카프카를 과도하게 비애적인 작가로 보이게 한 바가 있음
Pyrrhonism(joohong2018)2023-04-27 10:37
문학사를 알규 보면 다르지 않을까
익명(112.76)2023-04-27 02:06
넌 자기 자신이 찌질이라고 생각해 본 순간이 단 한 번도 없니? - dc App
지나가는문과(laumak94)2023-04-27 02:06
직관적으로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면, 굳이 그 재미를 찾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함. 모든 고전 명작을 재밌게 읽는 사람은, 반대로 정말 재미없는 사람일 거임.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라는 점에 천착해서 작품을 바라보는 것도 좋은 관점은 아니라고 생각함.
원래 농담은 말로 설명하면 재미없음
과연 독일 문학.
진지하게 답변하자면 카프카는 단순히 실존주의 이런 말로 치환할 수 없는 작가임. 비유와 알레고리가 가득하기 때문에. 변신은 그나마 직관적으로 이해가능하지만, 선고나 시골의사는 비유로 해석해야 함. 이러한 의미의 다의성은 일반적인 독자에겐 난해함으로 다가오지만, 이러한 다의성 때문에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음. 대표적으로 법 앞에서 는 누군가는 억압과 폭력의 역사를 읽어내고, 누구는 메시아주의를 읽어내며, 누군가에게는 텍스트의 불가해성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거임
실존주의 자체가 샤르트르 제외하면 편의상 사용되는 표현이고 단어 하나로 작가 표현 가능한 작가가 몇 안된다는 점에서 그리 와닿지는 않음. 내 입장에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작품은 처음부터 미완의 작품이거나 작가가 철저하게 무의미를 의도(고도를 찾아서처럼)한 경우밖에 없다고 봄. 그런 의미에서 난 카프카 작품에 큰 의미 부여가 힘들다고 봄.
성경을 예로 들자면, 예수의 비유는 다양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음. 이는 직설적인 언어로는 결코 표현할 수 없는 다양함을 표현하기 위한 것임. 카프카 역시 마찬가지임. 카프카의 일견 역설적이고 무의미해보이는 글들은 실상 비유적인 표현으로 직설적인 방식으론 담아낼 수 없는 다양한 표상들을 담아낸 것이라 할 수 있음. 이는 비슷한 실존주의 문학으로 묶이는 이방인이나, 구토, 타인은 지옥이다 류의 작품과 완전히 다른 영역임. 실존주의 문학은 개인의 강렬한 감정, 삶, 육체, 법칙이나 규칙, 공동체 따위로 환원할 수 없는 배제된 개인이라는 내용을 다뤘다면, 카프카는 그냥 저 작가들이랑 시기가 비슷했을 뿐, 완전히 다른 문학을 한 거임. 그게 카뮈와 사르트르랑은 달리, 카프카는 벤야민이나 들뢰즈, 아감벤 같은 철학자
들에게 끊임없이 인용되는 거임. 물론 에수의 역설적 비유 같은 게 그냥 궤변에 불과한 내용 없는 공허한 소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카프카가 예수랑 비교하기에는 그 비유의 질이나 내용이 너무 떨어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음. 그건 개인의 감상이니까. 다만 후대의 작가들이나 철학자들이 카프카를 좋아하는 이유가 이러한 것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됨
그럼 나도 성경으로 답하겠음. 예수의 비유는 나중에 작성되었다고 추측되는 복음서일수록 모호하거나 모순된 비유를 사용하는데 특히 그리스인을 대상으로 삼은 요한복음서는 공관복음서와 상당히 이질적인 구성으로 이루어져있음. 이는 좋든싫든 공동체나 작성자의 주관이 삽입되어있다고 있다고 보는게 타당함. 그렇다면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작품의 해석이 다양하게 갈리는 것
은 저자의 의도인가? 독붕이는 이 소설이 코미디라고 말했는데 이렇게 복잡하고 난해하게 서술된 것이 독일어 화자의 의도라면 내가 잘못 이해한거겠지만 해석이 제각기 갈리고 그 중 어느 무엇으로도 단번에 설명이 어려웠다면 최소한 그게 작가의 의도라고 생각하지는 않음. 물론 내가 비유를 이해 못했을수도 있지만 연구자나 비평가가 개인 주관을 복음서처럼 투영할 가능성
이 높다는게 내 생각임
카프카가 시기만 달랐을 뿐 실존계열 작가와 다를 뿐이라고 생각 안듦 - dc App
나머지 글은 동의함 - dc App
예수의 비유가 다의성을 지닌다는 게 저자의 의도에 쉽게 영향을 받고, 그런 점이 카프카에게서도 보이는데 이것이 카프카의 단점이라고 생각한다면 뭐 인정함. 문학에 대한 개인의 관점은 옳다 그르다의 영역이 아니니까. 나는 왜 카프카가 많은 사랑을 받는지를 설명한 거고, 이러한 다의성이 다양한 철학자에게 매력적으로 보인다고 말한 거임. 만약 이걸 보고 철학자들은 카프카를 칭찬한 게 아니라, 그저 자신의 철학적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 카프카를 이용한 거다 라고 주장하면 그것도 어느 정도 맞다고 생각함.
연구자나 비평가가 개인의 주관을 투영할 가능성이 높다 >>> 실제로 카프카에 대한 비평은 그런 경향이 매우 강함. 이것을 매력으로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반대로 이걸 포모식 말장난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 실제로 포모 철학자들이 카프카를 그런 식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물론 포모 철학자 외에도 카프카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음. 쿤데라의 경우에는 카프카를 톨스토이나 프루스트와는 완전히 대비되는, 실존의 풍부한 면이 질서에 강제로 편입되어버린 비참함을 다뤘다고 좋아하는 케이스도 있으니까. 하지만 이 역시도 카프카에 대한 완전한 해석이라고 할 수도 없으며, 그런 측면이 있다 정도로 밖에 볼 수 없음. 적어도 도스토옙스키나 하루키 같은 독갤에서 좋아하는 직관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작가랑은 다른 케이스라고 할 수 있음.
ㄴㄴㄴㄴ오히려 실존주의자들이 카프카를 과도하게 비애적인 작가로 보이게 한 바가 있음
문학사를 알규 보면 다르지 않을까
넌 자기 자신이 찌질이라고 생각해 본 순간이 단 한 번도 없니? - dc App
직관적으로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면, 굳이 그 재미를 찾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함. 모든 고전 명작을 재밌게 읽는 사람은, 반대로 정말 재미없는 사람일 거임.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라는 점에 천착해서 작품을 바라보는 것도 좋은 관점은 아니라고 생각함.
부장님 개그는 그 누구도 재미를 느끼지 못하지만 부장 본인은 웃겨죽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