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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력이 좋다고 막 그러던데...
아타시는 그런거 잘 모르겠는 거시야요
필력이란 무엇일까요?
고급스러운 단어를 쓰는 게 좋은 문장일까요?
긴 문장을 쓰는 게 훌륭한 문장력일까요?
간결한 문장 속에 문체의 정수가 담겨 있는 것일까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아타시는 어느 정도의 기준만 넘으면 문장력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야요
마치 기초 체력과 같아서, 체력도 없는 사람이 500m 달리기 우승을 할 수는 없지만 체력만으로 우승할 수도 없는 것처럼 말이에요...
영어는 1도 하지 못하는 아타시의 생각일 뿐이지만, 롤리타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물론 영어의 운율과 단어의 생동감 속에 있기야 하지마는, 그렇더라도 번역을 거친 결과물을 보면서
'와아, 어떻게 이런 표현을 생각해 낼 수 있는 것일까요?'
하고 몇 번이나 생각할 정도로 참신하고 대단한, 언어를 뛰어넘어 전해지는 단어의 선정과 표현의 발상, 문단의 구성과 문장들의 합응성, 그리고 험버트의 악행을 간접적으로 묘사해서 독자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드는 글의 구조가 롤리타를 명작으로 만드는 것이지,
단순히 문장이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롤리타가 명작이 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야요
문학의 정수는 지역의 언어라는 가변적인 요소가 아니라,
세계 어느 곳에서나 보편적으로 독자의 영혼에 광채를 비출 수 있는, 서사와 구성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주제의식과 철학 속에 들어있는 것이 아닐까요?
물론 문화권에 따라, 그리고 심지어 같은 사회 안의 개인들 사이에서도, 같은 대상을 지칭하는 단어일지라도 그 구성원들이 단어로부터 떠올리는 심상이 같지는 않겠지요.
그러나 훌륭한 문학이라면 궁극적으로 보편적인 소설을 지향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문장력에 있어서, 아타시는 김훈의 문장이 못하다고 말하고 싶은 거슨 아니라는 거시에요. 하지만 동시에 과연 모든 문화권에서 통용될 정도로 탁월한 문장인지,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다는 거시다에요.
이건 정말 정말 개인적인 느낌일 뿐인데, 김훈 소설의 문장은 50대 야가다꾼 아저씨가 술 따라주면서, 지금 내가 말하는 게 다 피가 되고 살이 된다고 주장하면서 일어나지도 못하게 무서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라는 거시에요;;
헤밍웨이도 간결체를 썼고, 위화도 짧고 단순한 문장을 썼는데, 김훈 소설은 아무래도 헤밍웨이나 위화를 읽을 때는 받지 못했던 압박적인 느낌이 있었더라는 것이랍니다
그리고 주제의식에 있어서도, 남한산성이나 칼의 노래나 여타 다른 것들이나, 다들
무능한 왕 + 개트롤 발암러 고위직 하나 + 고통받는 백성들
이게 꼭 들어가고 적군이나 고생하는 주인공 따위가 때에 따라서 추가되면서,
끝에는 결국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민초들의 삶은 계속될 것이고, 그들이야말로 모든 것이다'
하는 내용 원툴이라고 느꼈다는 것이에요
물론 글을 못 쓰는 작가님은 아니시지만, 읽으면 시간 낭비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대표작 한 권 읽으면 나머지는 굳이 읽을 필요도 없는 정도라는 게 아타시의 생각이라는 것이다에요...
나도 칼의노래 그냥 그랬어. 무미건조함
어그로 글을 길게도 쓰네..기본적으로 역사 소설이니까 한계가 좀 있을 뿐이지
스토리의 흐름이 역사 그대로 따라가는 건 당장 생각나는 것만 해도 전쟁과 평화, 대위의 딸, 고요한 돈강이 있고 배경을 역사에서 따온 것까지 하면 어둠의 심연, 서부전선 이상없다, 사랑할 때와 죽을 때도 있고, 단적인 예시로, 시바 료타로는 역사 소설만 썼는데 진지하게 김훈이 료타로급이라고 생각함??
야유요와오응님 진심으로 존경합니다ㅋㅋㅋ 김훈 문장력은 국가대표급이지만 손글씨에 너무 심혈을 기울인 나머지 서사나 철학 같은 정신적인 요소는 부족하지 않나 항상 생각하던 참에 제가 노상 불쾌한 골짜기처럼 느낀 꾸리꾸리한 점을 효자손을 능가하는 전기 모기채를 종기를 대고 송두리째 터뜨려주신 것 같아요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