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낙원(失樂園)
천사는 아무 데도 없다. 파라다이스는 빈 터다. 나는 때때로 2, 3인의 천사를 만나는 수가 있다. 제각각 다 쉽사리 내게 키스하여 준다. 그러나 홀연히 그 당장에서 죽어 버린다. 마치 웅봉(雄蜂)처럼—
천사는 천사끼리 싸움을 하였다는 소문도 있다.
나는 B군에게 내가 향유하고 있는 천사의 시체를 처분하여 버릴 취지를 이야기할 작정이다. 여러 사람을 웃길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S군 같은 사람은 깔깔 웃을 것이다. 그것은 S군은 5척이나 넘는 훌륭한 천사의 시체를 10년 동안이나 충실하게 보관하여온 경험이 있는 사람이니까—
천사를 다시 불러서 돌아오게 하는 응원기 같은 기는 없을까. 천사는 왜 그렇게 지옥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지옥의 매력이 천사에게도 차차 알려진 것도 같다. 천사의 키스에는 색색이 독이 들어 있다. 키스를 당한 사람은 꼭 무슨 병이든지 앓다가 그만 죽어 버리는 것이 예사다.
이상, 1939. 2
실낙원에서 천국 치러 들어가는 지옥천사가 염탐하면서 호시탐탐 반역할 장면을 보고 쓴 것 같은데.. 살금살금 천국 침노해 가는 과정이 실낙원에서 꽤 볼 만한 장면임. 게다가 아니 이 정도까지 침입해 오는데 천사들 뭐함? 경비 안 섬? 싶고, 돌격하고 막 쥐어 터지는 장면에서 허무와 실소가.. 실낙원의 그 장면들을 시 한편으로 뚝딱 쓴 것 같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