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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에 이 세계는 신의 세계였다. 아주 오랜 시간동안 우리는 신이 만든 세계에서 살아가는 피조물에 지나지 않았다. 종교의 모습이 바뀌고, 도덕 원칙들이 조금씩 바뀌어도 이 절대적인 원칙은 아주 오랫동안 그대로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신의 존재는 희미해졌고(신은 죽었다!) 세계는 우리 모두에게 각각의 모습으로 주어졌다. 우리 모두의 손에 이 거대한 세계가 각각 쥐어진 것이다. 세계의 크기를 감당하기 위해서 개인의 자의식은 미치도록 팽창했고, 어쩌면 지금도 팽창하는 중이다. 빅뱅이래로 우주가 계속해서 팽창하듯이, 어쩌면 영원히. 그러니까 그 팽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비대한 자의식이 유발한 현대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폭발의 순간을 알아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누구보다 동시대적인 이야기를 하던 조너선 프랜즌이 1970년대 시카고의 한 작은 마을에 집중한 것처럼.
크로스로드는 여타 조너선 프랜즌의 다른 소설들처럼 한 가족의 이야기를 각각의 시선을 교차시키며 보여준다. 뉴프로스펙트 교회의 부목사이자 중년의 가장 러스, 너무 살이 쪄서 더 이상 남편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없는 평범한 중년의 주부처럼 보이지만 비밀스러운 과거를 가지고 있는 아내 매리언, 둘의 자식들인 클렘, 베키, 페리, 저드슨.
러스와 매리언은, 기존의 구체제 속에서 탄생한 존재들이다. 그들이 태어날 때 세계는 신의 것이었다. 러스는 누구보다 ‘신’의 세계 속에 살아오던 남자다. 그가 살았던 메노파 마을은 기독교 원리주의자들의 공동체로 그곳에서 개인의 삶은 불필요했다. 그리고 러스는 그런 삶을 누구보다 추구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인생의 여느 순간순간, 보통 젊고 아름다운 여자들에게 끌릴 때, 그는 신에 대한 자신의 신실함을 이기는 호르몬의 강력함을 느낀다. 그 성욕은 그의 자아를 깨우고, 신앙심으로 균형 잡힌 그의 인생을 무너뜨리려 한다. 그것은 러스에게 분명한 죄악이지만, 동시에 놀라우리만치 짜릿한 호기심을 유발한다. 사실 러스는 아직 한 번도 제대로 된 죄악을 저질러 본 적이 없는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끔찍한 건지, 얼마나 흥분될지 러스는 감을 잡지 못한다.
매리언의 경우, 그녀는 가족에게 제대로 된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 그녀에게 기존의 세계는 반쪽짜리다. 가톨릭으로서 세계는 그녀가 저지른 죄에 대해서, 그녀의 원죄에 대해서는 확고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녀에게 무엇을 해야하는지,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는 그 어떤 지침도 내려주지 않는다. 그녀 홀로 채워야 하는 반쪽짜리 도화지에, 그 결핍에 그녀는 답을 구하지 못한다. 세상은 그녀에게 채찍질할 뿐이다. 그녀는 스스로 걷지도, 세상에 몸을 내맡기지도 못한다. 그녀는 자기를 구원해줄 존재, 그녀가 뿌리내릴 땅을 찾지만, 그 누구도 그녀에게 그리스도가 되어줄 수는 없어 보인다. 브래들리도, 남편도, 소피도, 그녀의 자식들도. 그녀는 그 사실에 끔찍한 불안감을 느낀다.
그리고 러스와 매리언 사이에서 자식들이 태어난다. 그들은 이제 신의 존재를 거의 느끼지 못한다. 공기중에는 신이 너무 희박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이제 그들은 그들 스스로 그 세계를 감당해야한다.
첫째아들 클렘의 경우, 그는 공부도 잘하고 아버지에게 힘을 쓰고 공구 다루는 것도 배운 청년으로 이 세계를 떠받칠 새로운 원칙을 세울 정도로 강인하다. 신의 빈자리를 도덕으로 채우는 것이다. 아주 엄밀하고 엄중한, 절대적인 규칙들로. 세상에 깔려 죽지 않기 위해서는 그 어떤 것보다 합당한 규칙이어야 함이 옳다. 그 규칙은 너무나도 엄격해서, 클렘 자신조차도 끊임없이 채찍질한다. 어느 순간부터 클렘은 그 규칙들에 쫓기듯 인생을 나아간다.
첫째 딸 (둘째) 베키의 경우, 클렘의 영향을 아주 강하게 받아 마치 오빠의 옷을 물려받듯 자연스레 그의 도덕률도 물려받게 되었다. 어머니와 샐리 이모를 닮아 아름답고 학교의 인기인이면서 오빠의 엄격한 규칙들로 무장한 그녀는, 너무나 강하고 완벽해 보여서 그 도덕률을 충분히 버틸 수 있어 보인다. 하지만 사랑과, 이모의 유산이라는 사건들은 그녀가 클렘의 규칙하에서 존재할 수 없음을 알려준다. 그녀는, 누구보다 완벽해 보이던 그녀는, 사실 너무나도 연약한 한 명의 소녀였던 것이다. 그녀는 새로운 규칙을 갈망한다. 그녀가 연약한 소녀가 아니라, 강인하던 때로 돌아갈 수 있도록. 그녀는 그녀의 오빠가 강하게 걷어찼던 구세대의 가치에서 그 편린을 발견한다.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밑에서 말이다.
둘째아들 (셋째) 페리의 경우, 그는 그의 비대한 자의식을 감당하지 못한다. 그는 도덕적 규칙으로 자신의 인생의 뼈대를 세울만큼 강인하지 못하고, 남들의 규칙 속에 갇혀 있기에는 너무나 똑똑하다. 그는 그 속에서 하나의 진리, 자신은 결코 안정될 수 없음을. 어떤 절대적인 규칙을 만족시키며 살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는 결코 도덕적일 수 없다. 그의 조울증은, 그의 가족 구성원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성질이다. 모두가 자의식의 팽창을 겪고 있지만, 사실 페리를 제외한 누구도 그게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메리언 그를 이해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끝내 착각이었음이 드러나는 것도, 베키가 그에게서 꺼림칙함을 느끼는 것도 그때문이다. 페리를 안정시켜줄 수 있는 것은 오직 마약뿐이다.
크로스로드에서 모든 구성원은 자신에게 솔직해야한다. 재미없는 부목사의 설교는 쓸모가 없다. 모두 자신의 세계를 인정하고 받아드려야 한다. 그들은 엉엉 울면서 서로를 껴안아준다. 페리가 마약으로 맛탱이가 가고, 러스의 불륜 사건이 드러나고, 메리언이 꿈꾸던 것은 전부 도피일 뿐이었음이 밝혀지고. 모든 것이 표면 위로 떠오르며 메리언과 러스가 마침내 화해하듯이. 크로스로드에서는 모든 것이 회복되는 공간처럼 보인다.
하지만 페리가 태초에 꿰뚫어 보았듯이, 크로스로드를 구성하는 것은 복잡한 권력관계와 자기 연민일 뿐일지도 모른다. 마지막 순간, 조너선 프랜즌은 클렘과 베키의 모습을, 폭발의 잔인한 속성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끝맺는다. 세계가 우리 모두의 시각에 의해서 재편성된 순간. 그 순간 작은 각도가 벌어져버린 순간. 우리는 멀어질 뿐 영영 가까워질 수 없다. 세계는 온전히 개인의 것이다. 그 누구도 이해해줄 수 없다. 각자의 세계관 안에서 해석될 뿐이다. 우리는 영영 온전히 받아들여질 수 없다. 우리를 묶어주던 하나님은 이제 없는 것이다.
결말 부분의 아이러니함은 정말 최고였지
후반부 연출이 완전 맘에 들진 않았지만(그 의도는 알겠지만서도... ) 결말만큼은 정말 좋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