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의 성호사설 한국고전종합db에서 번역본으로 읽고 있는데 되게 많이도 썼더라
여러 주제에 관해서 자기가 생각하거나 느낀거 모아놓은건데, 조선시대에 블로그에 글 써놓은거 읽는 느낌임.
밑에는 대충 훑어보고 인상깊은 구절들 모아놓은거
"우리나라의 종과 주인의 관계를 비교하자면 임금과 신하의 관계와 같다. 그러나 임금은 신하에게 벼슬로써 귀하게 하고 봉록으로써 길러 주니 은혜가 이미 크므로 그 은혜 갚기를 생각하지 않는 자가 잘못이지만, 주인은 종에게 잘 먹이고 잘 입히지는 못하면서 온갖 고역을 다 시키고 성날 때에 형벌은 있어도 기쁠 때에 상이 없으며, 조금만 잘못이 있으면 충성스럽지 않음을 꾸짖으니, 왜 그럴까?
신하가 되는 사람은 벼슬길에 나가기를 마음으로 흠모하여 어깨를 비집고 뚫고 나가서 구차하게 영리를 도모하지만, 종은 그렇지 않아 도망갈 땅마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매어 있는 신세이다. 또 신하가 윗사람을 섬기는 것은 겨우 명령에 따라 계획을 짜내는 데에 분주할 뿐이지만, 종이 주인을 섬기는 데는 도탄(塗炭)에 드나들고 매를 맞거나 치욕을 당하는 것이 보통이고 보니 사실은 원수나 다름이 없다."
"대마도(對馬島) 사람은 간사하기가 특히 심하다. 그러나 그곳에도 두메의 풍속은 충실하고 고지식하여 비록 국중의 비밀이라도 은휘하지 않으니, 생각건대, 교활한 풍습은 우리나라가 더욱 심한가 보다. 요동(遼東)ㆍ심영(瀋陽) 사람의 말에, “세상의 모든 물건은 길들이지 못할 것이 없다. 사나운 금수도 또한 길들일 수 있으나 오직 고려(高麗) 사람은 길들일 수 없다.”고 한다. 대마도에 간사한 사람이 많은 것은 서쪽이 가깝기 때문이다. 또 땅에 오곡(五糓)이 없고 상업으로 생업을 삼으니, 어떻게 순후(淳厚)한 성질을 보전할 수 있으랴? 우리나라의 풍속으로 징험하여도 깊은 산협은 반드시 순박하고 서울에 가까울수록 투박하니, 이것으로도 알 수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일이 또한 이와 비슷하다. 국조(國朝) 이래로 시무(時務)를 알았던 분을 손꼽아 봐도 오직 이율곡(李栗谷)과 유반계(柳磻溪) 두 분이 있을 뿐이다. 율곡의 주장은 태반이 시행할 만하고, 반계의 주장은 그 근원을 궁구하고 일체를 새롭게 하여 왕정(王政)의 시초를 삼으려 했으니, 그 뜻은 진실로 컸다."
"사람의 욕망은 삶에 대한 욕망보다 더 심한 것이 없고, 싫어하는 것은 죽음보다 더 심함이 없으므로, 그 원통한 것도 피살되는 것보다 더 심함이 없으니, 살인한 자를 죽이는 것은 법의 가장 급선무(急先務)인 것이다. 그러므로 한 고조(漢高祖)의 약법 삼장(約法三章)과, 기자(箕子)의 팔조목(八條目)에도 반드시 〈살인한 자를 죽이는 조문으로서〉 첫째를 삼았다.
그러나 관장(官長)이 법을 남용하여 죽이면 감히 보복하지 못하고, 권세 있는 자가 재물을 써서 도모하면 감히 보복하지 못한다. 한번 죽으면 다시 살아나지 못하지마는, 가난한 백성들이 거개 염습(斂襲)과 매장(埋葬)의 경비로서 걱정이 되고, 관리들이 검시(檢屍)할 적에 공궤하자면 재산이 탕진된다. 그러므로 원수의 집에서 뇌물을 받고 사건을 은폐하는 일이 있는데, 이것을 사화(私和)라고 한다. 자제(子弟)로서 부형의 원수를 보복하지 못하니, 교화(敎化)의 퇴패함이 이보다 더할 수 없다."
"내가 보건대, 가축 중에는 오직 닭이 음란한 짓을 많이 하는데 그 죄는 수컷에 있고 암컷에 있지 않다. 오직 사람은 남녀가 서로 따라서 혹 밤낮을 가리지 않으니 금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덕을 잃고 복을 망치고, 명예를 무너뜨리고 자신을 죽이고, 아름다운 얼굴을 망치고 몸에 병을 가져오고, 목숨을 재촉하고 마음의 영각(靈覺)을 둔하게 하고, 이목(耳目)의 총명함을 어둡게 하고 평생의 학업을 폐하고, 선조의 산업을 파괴하는 등 거기(성욕)에서 미친 환해(患害)를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
"세속에서들 모두 법을 변혁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것은, 대개 법을 변혁하면 혹 모순이 생겨 실패하기 쉽고, 옛법을 지키면 오히려 미봉해 넘길 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이 오래되면 폐단이 생기고 폐단이 오래되면 반드시 멸망하는 것이니, 변혁하지 않으려 한들 되겠는가?"
"옛말에, “세상에 강간은 없다.” 했으니, 이는 여자가 만약 목숨을 걸고 정조를 지킨다면 도둑이 범하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옛날 노영청(魯永淸)이 화간(和姦)과 강간의 구별을 판결하기 위하여 힘센 종을 시켜 여자의 옷을 벗기게 했는데, 다른 옷은 모두 벗겼으나 오직 속옷 한벌 만은 여자가 죽기를 한정하고 반항하여 마침내 벗기지 못했다. 이에 강간이 아니요 화간이라고 판결을 내리니, 사람들이 명판결이라고 일렀다.
나는 생각건대, 이는 정리에 벗어난 논설이니, 여자가 거절하는데 남자가 겁간하려 하는 것은 이미 강간이니, 그 후에 딸려 일어나는 일은 족히 말할 것이 없다. (...) 죄는 마침내 겁간한 자에게 있으니, 혹 이같은 송사가 있어 노영청의 판결에 의한다면 폐단이 있을 듯싶으므로 이에 변론하는 바이다."
호 재밌네요 잘읽엇어요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