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통찰력을 공감을 통한 분별력이라고 했다.

공감? 왜 통찰력 이야기에 공감이 나오는거지?

오늘날 통찰의 사전적 정의는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물을 꿰뚫어본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바라본 통찰은 타인의 여러가지 관점들에 공감하여 다각면에서 바라봄으로써 사물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을 의미한 것일까?

그러고보면 우리가 어떤 사물이나 사건을 통찰하려면 그것에 대한 어떤 관점이 요구되는데 훈수두는 사람이 더 판을 잘보듯 외부의 사람이 더 판을 잘 볼 것이다.

그리고 외부의 사람 한명보다 여럿의 관점을 종합하면 더 좋은 통찰력을 얻을 것인데 이 극한이 알파고일지도?

이처럼 다각도에서 통찰을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에 공감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통찰력이 이런 의미였는지 확실히 모르겠지만 이런 생각을 해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