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욕망을 분노보다 더 나쁜 것으로 바라보는데,
이는 분노는 나름의 이성에 근거해서 (자기 기준의) 불의에 대해서 나오는 것이지만 욕망은 이성을 포함하고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욕망에 굴복하는 것은 분노에 굴복하는 것보다 더 수치스러운 것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참된 지혜로 도달하는 수단인 이성과 동물적 욕망을 대립되는 것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런 결론에 현대인들은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선 우리는 욕망을 이성에 대립되는 나쁜 것으로 보지않고 남에게 해를 끼치지않는 이상 인정하고 있다.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분노가 욕망보다 낫다는데 동의하기도 쉽지 않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분노는 욕망보다 더 위험하기 쉬운 감정이기 떄문이다.
분노를 자제하지 못하는 사람은 욕망을 자제하지못하는 사람보다 더 위험하기 때문에 어떤 면에선 더 큰 악덕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읽다보면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기까지 금욕주의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아리스토텔레스가 스토아 학파 등 금욕주의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도 짐작이 된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자발적, 비자발적 행동에 대해서 올바른 판단이 가능한 상태인지를 중요하세 다루는데...
말하자면 '심신미약'으로 대변되는 법률적인 부분이 이미 수천년 전부터 다뤄져왔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는 윤리로서 다뤄진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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