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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메시 서사시



https://youtu.be/QUcTsFe1PVs


https://youtu.be/QUcTsFe1PVs

The Epic Of Gilgamesh In SumerianThe EPIC OF GILGAMESH is the earliest great work of literature that we know of, and was first written down by the Sumerians around 2100 B.C. Ancient Sumer wa...youtu.be

(브금)


그냥 마음 갔던 부분들을 짚은 거라 일관성이 없을 수 있음. 양해 부탁.




신화(神話)는 인화(人話), 인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킬레우스의 노래는 당대 그리스인이 지녔던 명암을 풀어놓은 노래요, 욥의 슬픔은 끊임없이 고통에 몸부림치는 인간의 슬픔이다. 그렇기에 신화는 어쩌면 그 종족이 풀어놓는 자신들에 대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리스-로마 신화를 제외하고 그 어떤 신화도 아는 바가 없었다. 인간의 많고 많은 종족들이 풀어놓은 수많은 태곳적 이야기들 중 어느 한 구석의 이야기만 알고 있던 것이다. 그랬기에 그 얇은 지식에 한 층을 더해보기 위해 '인류 최초의 신화', 더 가볍게는 소위 '근본'이라고 불리는 수메르의 신화를 한 번 읽어보았다.


처음 몰려오는 기분은 당황이었다. '왜 이렇게 빠진 부분이 많지?' 수메르의 이야기들은 기원전 130년 이후 더 이상 필사되지 않았으며, 그 점토판은 먼지 속에 묻혀 갔다. 한창 재밌는 부분에서 점토판이 소실되어 갑자기 이야기가 끊겼을 때는 정말 맥이 확 풀리기도 했다. 하지만 군데군데 빠진 서사시는 정말로 날것의 원형에 가까운 무언가와 마주하고 있다는 특이한 기분을 주었다.


우루크를 다스리는 길가메시는 서사시 초반에 폭군이며, 엔키두는 길가메시의 전횡을 막기 위해 신이 빚은 맹수다. 엔키두는 그러나 인간으로 변모하면서 사냥하는 무리에 더 이상 끼지 못했고, 대신 '이성과 넓은 이해력'을 지니게 되었다. 얄팍한 추측이지만, 혹시나 수렵채집 사회에서 농경 사회로의 전환 또는 인류 최초의 도시민이 생겨나는 과정을 은유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 둘은 싸우다가 서로의 힘을 인정하고 친구가 되어 여정을 떠나며, 삼나무 숲의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위대한 이난나 여신이 내려보낸 천상의 소 또한 무찌른다. 이난나의 청혼을 거절하면서 미친 듯이 딜을 박는 길가메시의 모습을 보고 정말 이래도 되나 싶었다.


결국 이들의 '오만'으로 인해 신들은 징벌을 내린다. 엔키두가 곧 죽으리라 정한 것이다. 천상의 신 엔릴의 번복되지 않는 명령으로. 인간이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엔키두는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다. 길가메시는 수 일을 애도하다가, 엔키두의 코에서 벌레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공포에 휩싸인다. 그리고 그 유명한 길가메시의 영생 찾기 여정이 비로소 시작된다.


먼 옛날 대홍수가 땅을 휩쓸었고 그 홍수에서 살아남은 인간은 우트나피쉬티 하나밖에는 없었다. 그는 영생을 얻은 유일한 인간이다. 길가메시는 그를 찾아간다.

그리고 우트나피쉬티는 이런 말을 한다.




허나 그대, 그대는 갖은 고초를 겪고 무엇을 이루었나?

그대는 부단한 수고로 진을 빼는군

힘줄을 슬픔으로 채워

생의 마지막까지 나아가려 하네.


[...]


그 누구도 죽음을 보지 않으며

그 누구도 죽음의 낯을 보지 않네.

그 누구도 죽음의 소리를 듣지 않네.

너무도 무자비한 죽음은 인간들을 난도질하네.


우리는 가정을 꾸리지

우리는 보금자리를 마련하지

형제들은 유산을 나누지

땅에서는 불화가 일어나지.


강이 불어 우리에게 홍수를 가져오거늘

하루살이가 물 위에 떠다니네

그것의 얼굴이 태양의 낯을 응시하다가

그러다 갑자기 아무것도 거기 없네!


<길가메시 서사시>, X-297~X-315



삶의 무의미성에 대한 비관적 통찰은 그야말로 인류 문명 탄생과 멀지 않은 시각에 시작되었던 것이다. 정말로, 마지막 문단은 글을 읽던 나에게도 4,100년을 뛰어넘어 일순 전율을 주었다.


이 모든 말을 듣고도, 길가메시는 이 생존자의 아내에게서 약초가 있는 곳을 전해 들은 후 꾸역꾸역 그리로 간다. 생에 대한 인간의 갈망은 이리도 크구나 싶다. 그리고 마침내 꿈에도 그리던 영생의 삶을 획득하게 해줄 약초를 손에 얻는다.


그리고 신화의 가장 허무하고 가장 끔찍한 부분이 등장한다. 길가메시가 목욕을 하러 간 사이 뱀이 그 약초를 먹어버리고 허물을 벗으며 유유자적 사라진 것이다. (허물을 벗는 부분은 참 뛰어난 문학적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몰랐으면 더 나았을 것을.


영생은 좌절되었다. 이제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서사시의 마지막 부분은 이렇게 끝난다.


"도시는 1제곱마일, 대추야자 숲이 1제곱마일, 점토 채취장이 1제곱마일, 이쉬타르 신전이 반 제곱마일,

우루크는 3.5제곱마일 뻗어 있소."


이 우루크는 길가메시 자신이 관여한 위업이다. 자신이 일군 도시다.

자신이 이룩한 자신의 위업 앞에서, 길가메시는 더 이상 "힘줄을 슬픔으로 채우지" 않는다.

오히려 의지로 가득 채워 사공에게 이렇게 의기양양하게 소리친다.


"우르-샤나비여, 우루크 성벽에 올라가 이리저리 거니시오!

그 토대를 살피시오, 벽돌 작업을 점검해보오!"




나는 뱀이 약초를 먹음으로써 '인간의 서사시'로서 길가메시 서사시가 완성되었다고 생각한다.

길가메시가 우트나피쉬티처럼 영생을 얻었다면?

그 결말은 해피엔딩일 수도 있겠지만, 필멸하는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게 된다.

하지만 결국 길가메시는 인간으로서, 자신의 위업 우루크를 더욱 아름답게 하려는 성숙한 인간으로서 최후의 자리, 우루크에 선다.

그리고 이제 책을 덮는 우리의 가슴속에는 우리만의 우루크가 깃들 것이다.


길가메시의 노래는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의 악행, 인간의 도전, 인간의 성취, 인간의 좌절, 인간의 성숙을 노래하며, 이로서 인간의 시가 완성되었다.

그리고 그 인간의 시는 4,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읽히고 있다. 아마 길가메시 왕도 자신이 이런 식으로 불멸을 성취하리라곤 생각지 못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