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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신적 도피처로서 독서를 선택했다. 굉장한 작가들이 정립해놓은 '이야기'를 엿보는 재미. 심지어 재미가 없고 어려운 작품이 있다면, 재미가 없고 어렵기 때문에 재미있었다.
그리고 내가 불안하거나, 고통스럽거나, 감당하기 힘들고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일을 겪는다면, 유일하게 통제할 수 있는 것이 감정과 생각이라고 느꼈다. 어떤 상황이라도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원수도 사랑하고 싶다. 나는 종교가 없지만 거의 종교적인 사랑을 항상 실천하고 싶었다.
혼자 아무리 고민해도
제대로 단단하게 세울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하에, 좋은 책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책은 이해하지 못하는 채로 꾸역꾸역 읽어나가는 것 또한 흥미롭다. 그런데 감동, 그 중에서도 나 자신이라는 '개인'이 깊이 감화되고 여운이 남는 감동의 측면에서 본다면 어떨까.
도피처 속에서 가끔, 나와 너무나도 잘 맞지만 스스로 상상할 수는 없었을 누군가를 만난다. 여러 인물들이 있겠지만, 내가 결국 이루고 싶은 '이성이나 사상과 무관하게 미소짓는 사랑과 배려'
와 이어지는 몇몇 캐릭터들이 있다.
톨스토이 작품에서 나오는, 자식을 잃은 가죽 수선공, 바보 이반, 안나 카레니나의 레빈이 모두 그렇다. 어리석어 보일 수 있겠지만 그들의 '사랑'은 상당히 위대하다.
보편적이면서도 이성을 뛰어넘는 사랑. 일종의 인류애 라고 할 수 있겠다. 인간적인 감정(짜증, 불쾌, 조바심 등등)을 동반하면서도 사랑과 이해를 배운다.
그리고 도@끼. 그 유명한 이반의 '대심문관'파트에서 볼 수 있듯이, 갈등과 번뇌를 해소하는 것은 그 상대의 전복, 혹은 설득이 아니라 그냥 사랑일 수 있다.
사상, 가치관이 다르다고 한들 사랑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알료샤처럼 '개인'에게 그 위대한 사랑을 알려줄 수 있다면, 비극도 희극이 될 수 있다.
그 방대한 작품들을 개인적인 감상으로 옮길 수는 없겠지만, 바보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계속 배려하고, 너그럽게 행동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주말마다, 혹은 한 달에 두번이라도 보육원에 가고, 그럴 시간이 안되면 뭐라도 봉사하고
모든 여건이 힘들다고 느낀다면
쓰레기라도 줍고... 누가 바빠보이면 자리를 양보하고, 이웃들을 위해 최대한 조용히 하고.
오피스텔 관리인 분들, 청소하시는 분들과 웃으며 대화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 부터, 내가 스스로 타협하면서(부끄럽지만) 최대한 할 수 있는 것까지 다다르겠다.
이기적인 마음으로는, 그렇게 함으로 내 마음의 평화를 가져오겠다.
강약약약. 이게 내 목표다. 그리고 '책'덕에 단단해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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