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흔히 문해력으로 번역하는 리터러시는 단순히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아니다. 유네스코는 텍스트나 디지털 정보를 식별하고, 이해하고, 해석하고, 창조하고 소통하는 능력(스킬) 일반을 리터러시로 정의한다. 즉 글을 쓰고 정보를 생산하는 활동 역시 리터러시의 핵심이다. 개인의 이해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 유의미하려면, 애초에 이해 가능한 방식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따라서 문해력은 리터러시의 정확한 번역이 아니다.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은 리터러시의 핵심 구성 요소지만, 결코 전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의 문해력 논의는 대부분 ‘요즘 애들’에 대한 한탄으로 시작한다. 물론 ‘사흘’을 4일로 이해하고 ‘심심한 사과’를 따분하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은 황당한 일이지만, 과연 이게 리터러시의 가장 중요한 문제일까? 포털사이트에서 문해력을 검색해보라. 문해력 사교육 광고가 첫 페이지를 도배한다. 리터러시를 문해력으로 축소하고, 문해력을 다시 어휘 이해력 정도로 간주하며, 이걸 사교육 상품으로 가공하는 경향 자체가 한국의 리터러시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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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국어영역이나 법학적성시험 따위는 텍스트 독해력을 요구하지만, 이런 종류의 시험이 리터러시 강화에 얼마나 기여할지는 불분명하다. 주어진 텍스트를 읽고 문제를 푸는 능력,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텍스트를 능동적으로 찾아서 이해하고 재가공하는 능력은 다르기 때문이다. 대입이나 취업 논술시험을 준비하는 것만으로 텍스트 작성 능력이 길러지지도 않는다. 글쓰기를 잘하려면 무엇보다 쓰고 싶은 욕망이 있어야 하고, 구조화된 논변의 형식으로 생각하는 습관이 들어 있어야 한다.
한국 문화의 특징 중 하나는 리터러시와 지식에 대한 무관심이다. 한국의 대졸자 비율은 70%에 육박하지만, 독자는 정확한 글이 아니라 쉽게 읽히는 글을 선호한다. 언론사는 ‘중학교 2학년도 이해할 수 있는 쉬운 글’을 기사 작성의 기준으로 삼는다. 정부기관은 시민과 소통하기 위해 형식화된 텍스트가 아니라 알록달록한 시각적 이미지를 만든다. 다양한 분야의 지식이 콘텐츠 상품으로 유통되지만, 정작 고급 지식을 생산하는 인력과 시스템은 너무나 부족하다. 이쯤 되면 허약한 리터러시와 지식 생산 시스템으로도 유지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 모두의 목표인 것처럼 보인다.
출처
https://v.daum. net/v/20230227081658048
정떡이 될 만한 내용도 있어서 몇몇 단락만 추려 퍼옴.
이 글을 쓴 박이대승은 그 악명 높은 <식인의 형이상학>의 역자로 참여한 정치철학자임. 그 난해한 들뢰즈의 개념을 번역한 이력과 별개로, 공동체와 더불어 개념의 규정을 (언어분석처럼) 명확히 할 것을 강조함.
거기에 글 자체도 상당히 달필이라 술술 읽히고, 더군다나 비평도 상당히 날카로움. 다른 칼럼에의 내용인, 우영우가 만일 자폐 스펙트럼이 아닌 고학력자 일반인으로 설정하면 비춰질 괴리를 지적하는 대목은 참 탁월했음.
아무튼 독갤의 만년 떡밥, 수능 국어 문제 잘 푸는 것과 문해력은 과연 별개일까? 그렇다면 수능 국어 지문 중에 결정적인 변별력으로 작용하는 비문학 지문은 정말 잘 쓴 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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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한 글에도 나와있지만 비문학은 독해력 측정기라고 봐도 됨
그러나 마찬가지로 인용한 글에서 나왔듯 리터러시, 즉 텍스트를 이용한 정보 처리능력에 대해서 보면 당연히 논술에 아니니까 바칼로레아 수준의 작문기술은 기대하그어려운 것도 맞는데 우리나라는 객관식 정답을 선호하지
수능은 걍 문제 빨리풀기 테스트임.
글을 읽고 푸는 시험을 문해력이랑 상관없게 만드는 방법이 있으면 좀 알려줘봐라 논문으로 쓰면 기호학 교수자리 하나는 해먹을수 있을듯
이게 맞지 ㅋㅋ
적어도 글까지 잘 써지는 건 아닐 듯?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