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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상실의 시대는 내가 처음 읽은 순문학 책이었다. 뭐 그 전에 다른 책 읽은 거 같긴 한데 기억하는 것 중 가장 오래된 책이다. 아마 중학교 1학년인 거 같다. 이거 기억하고 있는 이유가 상실의 시대 읽고 있었는데 같은 반 애가 야설읽는다고 쌤한테 꼰지른 거 때매 기억함. 암튼 그 당시 상실의 시대는 내게 매우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한창 내가 세상에서 제일 잘났다고 믿고 있던 사춘기 시절, 상실의 시대 속 주인공의 쿨함과 냉소적인 태도가 너무 멋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약간 중2병을 상실의 시대를 보면서 경험했는 느낌? 그래서 그 때 뽕 차가지고 비틀즈 노래 존나 듣고 위대한 개츠비도 열심히 읽었다.(그땐 개츠비는 개노잼이라서 억지로 읽음)
그렇게 학창시절을 보내고, 대학생이 되었다. 그러나 대학생이 되어서 다시 읽은 상실의 시대는 더 이상 그때와 같은 느낌이 아니었다. 세상 그 어떤 것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언제나 한 발자국 떨어져서 있는 것은 쿨함이 아닌, 그 어떤 것도 적극적으로 하지 못하는 나약함의 증거였으며, 사랑하는 게 무서워 시작조차 하지 못하는 두려움의 징표였기 때문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썸도 연애도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해서 시작하는 게 아니라, 이것저것 재고 계산기 두드려서 나쁘지 않다 싶을 때 시작하는 나의 모습을 볼 때마다, 이것이 상실의 시대를 읽으면서 느끼는 쿨함과 자유로움이 아닌 내 모든 걸 주는 진정한 사랑을 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내 나약함에서 비롯된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한 때 상실의 시대의 와타나베와 같은 차갑고 쿨함을 욕망했던 나는, 정작 내가 그런 사람이 되니까 그 무엇보다 간절히 뜨거운 눈먼 사랑을, 내 심장을 불태울 만큼 강렬한 욕망을 원하게 되었다.
2.
중2병 걸렸던 청소년기를 지나, 현타에 빠진 청년기도 지난 지금 나는 다시 상실의 시대를 읽었다. 와타나베는 그대로였다. 그는 여전히 공허함을 감춘 매력적인 청년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와타나베는 더 이상 내게 예전과 같은 매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마치 헤어진지 한참 지난 전여친을 보는 기분이랄까. 와타나베는 그대로지만, 나는 와타나베에게 매료되었던 어릴 때의 내가 아니니까. 대신 나는 다른 캐릭터를 보았다. 생기 넘치는 히로인인 미도리를 보았고, 자신감 넘치다 못해 나르시즘에 빠져있는 선배인 나가사와를 보았다. 이 둘은 와타나베와 정반대의 인물이다. 언제나 사건의 중심에서 한 발짝 떨어진 채로 삶을 관조하는 와타나베와는 달리, 이 둘은 삶의 한가운데에 뛰어들어 직접 부딪혀서 경험하고 느끼는 사람들이다.
미도리는 "초콜릿 상자"론을 통해 삶의 모든 측면을 순수하게 느끼려는 사람이다. 그는 삶이 행복할 수만은 없다는 것을 매우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삶에 대한 희망을 잃을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믿는다. 먹고, 섹스하고, 취하며 그는 삶의 기쁨을 순수하게 체험한다. 비관주의자들이 회의적으로 삶을 접근할 때, 그는 삶의 혼돈 한가운데에 뛰어들며 삶의 모든 측면을 순수하게 경험한다.
나가사와 선배 역시 삶은 본질적으로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그는 그만의 의미를 써내려간다. 그것이 하스미에게 상처를 주고, 스스로마저 가혹하게 채찍질하는 것일 지라도, 그는 앞으로 나아간다. "자신을 동정하는 건 비열한 인간이나 하는 짓이야" 라는 그의 말대로, 그는 스스로를 동정하지 않고 스스로의 한계까지 몰아붙이길 원한다. 그것이 젊은이의 치기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그에게 있어서는 그 나름대로 이 무의미한 삶에 의미를 써내려가는 방식일 것이다.
3.
김승옥은 소설을 "이 의미 없는 삶에 의미의 조명을 비춰 보는 일일 뿐." 이라고 말했다. 맞는 이야기이다. 그저 숨쉬고 있다고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의미 없이 사는 것은 죽은 것과 다름이 없다. 그렇기에, 미도리와 나가사와 선배는 각자의 방식으로 무의미로 가득한 삶에 자신만의 의미를 채워 넣었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내 인생에서 의미는 어떻게 채워야 하는 것일까.
한 때는 나를 혐오하고 세상을 혐오하며 끊임없는 후회와 자기연민으로 스스로를 갉아먹은 적도 있었다. 한 때는 내 모든 걸 바쳐서 누군가를 사랑해본 적도 있었다. 한 때는 나의 목표를 위해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단련한 적도 있었다, 한 때는 어떤 제약도 없이 한량처럼 하고 싶은 걸 하고 산 적도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어디서 나의 미도리를 부르고 있는가. 과연 나는 나의 삶을 어떤 의미로 채울 것인가. 나는 무엇을 욕망하며, 삶의 어떤 측면을 보기를 원하는가
이유를 찾으려는 사람은 다 죽거나 미치고, 그냥 살아있으니 살았던 미도리가 가장 생명력이 넘쳤지
중1 때 상실의 시대 읽으면 엄청 충격적이었을 것 같은디 ㅋㅋㅋ
이야.. 글 진짜 잘 썼다.완전 공감해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