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에 이어 문학동네 디스 글을 읽고 드는 단상임.


어제는 1번 글만 보고 썼는데, 오늘은 2번/ 3번 글의 통합 버전으로

그 글과 꼭 상관관계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문단권력이라고 비판하는 논리들에 의문점이 생겨서 글 싸봄.

미리 밝히지만 2번 글, 3번 글을 꼼꼼히 읽은 건 아님. 읽을 수가 없었음.


왜냐하면, 이 작가는 정치적 가치 =미학적 가치를 동일시 하고 있기 때문임.

나는 절대 정치적 가치=미학적 가치는 동일화될 수 없다고 생각함.

이것이 가능해지면 이 또한 해묵은 주제가 되는 '문학 도구론'으로 갈 수 밖에 없음.

"문학은 사상을 민중에게 전달하는 도구로서만 그 가치가 인정된다" 혹은 그런 문학이 유일하게 올바른 문학이다라는 결론인데

이것에 절대 동의할 수 없을 뿐더러, 지난 글에도 말했지만 파시스트적인 논리임.


그리고 그 작가가 다른 작가들이나 비평가들을 비판하는 논리들 대부분이 납득하기 힘들었음.

그 작가들의 의도와 전혀 다른 가치 판단으로 그들의 작품을 폄하하는 방식임.


자기만의 문학론이 오직 정의로운 것으로 정의 내린 뒤,

모든 문학이 올바르지 못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나머지 작가들과 비평가들이 윤리적으로 타락한 채. 심지어 자본에 길들여진 부패한 권력으로까지 묘사하는데

나는 이게 엄청 오만할 뿐더러, 좀 더 오버하자면 편집증적 발상에 가깝다고 생각함.


아무튼 그 글과 꼭 상관관계가 있다기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한국 문학의 문제를 문단 권력을 비판하던데,

그들의 주장처럼 과연 문단 권력이라는 게 실존하는지에 대한 내 생각을 써봄



1. 문예지는 문단 권력인가? <한국 문학 비평의 특징?>


문단 권력으로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게 문예지임.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문예지의 비평가들.

우선 또 알아둬야 하는 게 있는데 한국의 문예지는 소설 잡지도 아니고, 시 잡지도 아님.

오히려 비평의 지분이 굉장히 높음. 오히려 문학 비평 잡지라고 보는 게 올바름.


그 이유는 그 출발에 있는데, 문예지의 출발이 문학의 비평적 인식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임.

누차 언급되듯이 창비는 백낙청으로 출발했고, 문지는 김현으로, 문학동네는 애매하긴 하지만 서영채 등으로 볼 수 있음.

다른 문예지들도 대부분 작가들이 참여했다하더라도 문학에 미학적 비평적 인식을 기반으로 활동하기 시작함.

즉, 말하자면 문예지들은 동인지로서의 성격이 굉장히 강한 매체임.


또 문예지는 절대 대중을 타겟으로 한 잡지가 아님. 오히려 학술지에 가깝다고 보면 됨.

마찬가지로 한국 비평도 어느 작품이 좋다, 추천한다 대중들에게 추천하는 역할이라기 보다는 학술적 연구에 가까움.


이는 한국 문예지에 실리는 비평만 읽어봐도 알 수 있음.

그게 과연 일반 독자들이 읽어낼 수 있는 수준일까?

그것을 차치하더라도 한국 비평은 이미 독자가 그 작품을 읽었다는 것을 상정하고 논의를 진행함.

즉, 문학 비평의 역할은 통상적으로 대중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작품을 추천해주거나 평가해주기보다는 미학적 연구에 가까운 거임.


만약 비평가들의 비평 행위가 문단 권력의 악행이다, 라는 이야기를 들으려면

비평가들의 평가와 책의 판매부수와 상관관계가 있을 정도로 영향력이 있어야 함.

그러나 거의 전무함.

어떤 비평가가 상찬했다고 해서 그 책이 많이 팔리지도 않을 뿐더러 비평가가 그것을 기대하지도 않음.

오히려 이런 것이 문단 권력이면 <이동진의 빨간 책방>이 더 강력한 문단 권력이지 않을까?


그러면 아마도 문학 수상작은 하고 반론하겠지?

그러나 문학상이라는 것 자체가 비평적 인식으로 이루어지는 상임.

비평가들이 하는 일 갖고 그거를 문단 권력이라고 비판하면 안되지.

예를 들어 칸 영화제나 베니스 영화제가 영화 권력이다, 라고 비판하면 허무맹랑하게 들리듯이

문학상이라는 것 자체가 원래 그러라고 만든 거임.

다만 오히려 한국 문학상은 그 비평적 인식의 정체성을 파악하기 힘들어 어리둥절 할 정도지.


만약 비판론자들이 주장하듯이 문예지가 출판사의 홍보지 역할을 한다면

오히려 팔리는 작가들을 다뤄야지. 문예지들을 살펴봐. 안 팔리는 작가들 다루는 게 대부분이다.



2. 문예지가 이른바 문단 문학 외의 문학(장르 문학/ 대중 문학 등)은 천시하거나 침묵한다?


문예지가 모든 문학을 다 다루는 잡지가 아님.

최소한 문예지 빅3라고 할 수 있는

문지/창비/문동은 순수문학 잡지임.


이런 논리는 이를테면,

클래식 잡지에 가서 왜 가요는 무시하냐? 아이돌 음악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거냐,

혹은

미술잡지에 가서 너네는 왜 웹툰 무시하냐? 라고 역정 부리는 것이나 뜬금없음.


한국 문예지의 다양성의 한계를 지적하는 건 올바른 지적일 수 있으나

문예지들이 순수문학 외에 다른 문학을 무시한다는 것은 굉장히 이상한 논리임.


그리고

한국 문예지의 다양성, 즉 대중들과의 괴리를 문제 의식 갖고

최근에 악스트나 릿터 같은 잡지들이 나오고 있음.

과연 얼마나 대중들과 가까워졌나 혹은 그 효과에 대해선 평가가 갈리겠지만,

최소한 문예지가 문단문학외에 다른 문학을 무시한다는 것은 어이 없는 논리임.



3. 한국 문학은 주례사 비평이 문제다?


이건 반은 맞고 반을 틀린 얘기다.

일단 구분해야할 것이 출판된 한국 소설 뒤에 실리는 '해설'과 문예지에 실리는 '비평'을 구분해야 한다.


대부분 많은 사람들이 주례사 비평이라고 지적하는 건 이 책 뒤에 실리는 해설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생각해 봐.

책 뒤에 실리는 해설에 어떤 평론가가 그 작품을 신랄할게 깔까??

작가가 청탁을 했든 출판사가 청탁을 했든 도대체 어떤 평론가가 그 작품을 신랄하게 깔 수 있을까?

오히려 자기가 절대적으로 동의할 수 없는 작품이라면 해설 청탁을 거절하겠지.

즉, 해설에 응하는 평론가라면 그 작품에 동의한다는 뜻이다.

최소한 이 책 뒤에 실리는 해설이 주례사 비평이라면 맞는 말이다.

애초에 해설이라는 것의 역할이 그럴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문예지에 실리는 비평이 주례사 비평이라고 한다면,

오히려 자신이 비평을 한 번도 읽어본적이 없다고 고백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자 일단 비평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대부분의 문예지 지면은 굉장히 한정적이다.

게다가 메이저 문예지에 청탁이 들어오는 확률까지 말한다면 자신의 비평을 알릴 기회 자체가 굉장히 적다

그러면 이 비평가는 별볼일 없는 작품이 별 볼 일 없는 이유에 대해서 쓸까?

아니면 자기가 굉장히 좋다고 생각하는 작품에 대해서 쓰면서 자기의 예술론을 펼칠까?


즉 대부분의 문학 비평이 현실적으로 비중이 칭찬에 비중이 클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 비평들도 칭찬 일색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비평이 논의를 진행하면서 그 작품이 가진 한계를 지적하는 행위는 분명 한다.

진짜 그 작품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한 비평가들은 대부분 비판적 사고로 비평을 이어가고, 또 이게 당연한 거다.


전적으로 비판이 실리는 경우는 대부분 현실적으로 이 문학에 동의할 수 없는 문제가 심각할 때 이루어지고,

이런 글들이 문예지에 안 실리는 게 아니다.

오히려 이럴 정도로 큰 문학적 사건이 벌어지는 경우가 당연하게도 극히 적을 뿐이다.


실제로 비평가가 짤막하게 언급한 부분이든, 크게 언급한 부분이든 평론가의 평가에

다른 평론가가 반론을 펼치는 게 비평의 대부분이다.

이런 것들이 문학 담론 혹은 문학 논쟁을 이끌어가고,

항상 작게든 크게든 이런 논쟁들은 줄곧 있어왔다.



4. 문예지가 신인들을 뽑기 때문에 문단 권력이다?


이것 또한 굉장히 심각한 오류인데,

작가를 등용시키는 것이 공적인 분야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문예지에서 신인을 발굴하는 게

공무원이나 공기업 채용비리처럼 공공성으로 평가를 받아야 할 분야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회의 이런 요구 때문에 문예지의 색깔이 점점 희미해진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애초에 문예지의 출발이 앞서 말했듯 동인지의 성격이 강하다.

즉, 처음부터 자기랑 마음 맞는 애들끼리 친목해서 자기들이 생각하는 문학을 담론화 하겠다는 게 문예지다.

그럼 이런 문예지가 자기들과 색깔이 맞고, 동의하는 작품들을 신인 작품으로 뽑는 게 도대체 무슨 문제인가?

이건 jyp에서 가서 트와이스이라는 걸그룹을 만들 때 얼마나 공정했는지 묻는 것과 다름 없다.


공정하게 모두가 동의할만한 좋은 작품이란 게 존재할 수도 없고,

이것은 오히려 문학의 다양성을 해치는 일이다.

실제로 최근 문예지가 너무 여론을 의식해 그런 방향으로 가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들고.


오히려 나는 이런 문예지의 색깔이 더 강해질수록 더 좋은 작가들이 많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문학적으로 아직 완성이 안됐지만, 수많은 가능성을 보이는 작가를 등용해서

문예지에서 케어한다면 더 개성있고 좋은 작가가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신인상 외에도 문예지의 편집 위원들이 자기들이 원하는 작가와 비평가들에게 원고 청탁하는 것 또한

문예지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문예지의 정당한 행위이지 않을까?


아무튼 또 글이 길어졌는데,

급하게 마무리하자면 내 생각은 이럼.



한국 문학의 문제를 문단 권력이라는 가상의 권력을 만들어 '주례사 비평'이다, '문단 권력'때문에 한국문학이 부해했다고 매도하는 것은

그 비판을 하는 사람에게 '메인 스트림에 입성하지 못한 루저의 자기합리화'라고 하는 것만큼이나

무례하고도, 소모적이며 비논리적인 논쟁이 아닐까 생각함.


그리고 내가 이런 글을 썼다고 해서 한국 문학의 현재 모습을 옹호하는 것은 절대 아님.

문단 권력이라고 비판하는 논리들이 비합리적이라고 판단할 뿐이지

나 또한 한국문학에 문제점들이 수없이 많다고 생각함.


모국어로 쓰인 문학보다 외국 문학이 더 자국민들에게 사랑받는 것 자체가 한국문학에 큰 문제가 있다는 가장 강력한 방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