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성


이인성이라는 작가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혼란스러운 한국문학 속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이인성인 사람은 지금까지 내가 보지 못했고 또 없을 것 같고 있다면 많지 않을 것 같아 저리 이른다.

사실 이인성은 내가 태어나기 전에 마지막 책을 낸 사람이다.
거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하지.
어딘가를 통해서 ‘낯선 시간 속으로’를 처음 접했을 때의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비슷한 궤를 걸어가는 정영문이나 박상륭도 좋아하는 편이지만 이인성의 충격을 따라올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이인성 하면 이 사람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누군가는 ‘아, 그 실험쟁이?’ 하고 반응할지도 모른다.
저 말 속에서는 이인성이라는 소설가를 핏속 깊이 자리잡힌 단단한 문학이 아니라 모래 위에 세워진 누각 같이 위태롭고, 교묘한 실험과 모순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는 난해함 가지고 글을 쓰는 글쟁이라고 평가하는 양상이 은연 중에 드러나 있다.
그러나 이인성의 실험의 형태는 삶과 그 속의 인간관계에 대한 깊은 사유 끝에서 나오는 진액과 같은 것을 언어 파괴적인 실험과 관계해 낳은 신생아와 같다.
즉, 난해함 원툴이 아닌 것이다.

당장 ‘한없이 낮은 숨결’만 보더라도 글을 쓰고 있는 작가와 말하고 있는 화자를 한꺼번에 규정하는 1인칭 소설의 한계를 회의함과 동시에 다른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서로 다른 가면을 갈아끼우는 듯한 용태를 보이는 우리의 삶을 여러 형태로 분리되어 살아가는 주인공으로 표현한다.

이 면에서는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나는 이인성이 매우 뛰어난 문장가라고 생각한다.
무언가 얇은 듯 하면서도 완전한 단단한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이인성의 문장이다.
어눌하고 자폐적이고 작가의 체구만큼이나 왜소한 경향이 있지만 대체로 반성과 회의를 주 테마로 하는 작가의 작품세계를 보면 그토록 어울리는 문체도 없을 것이다.

장면들의 기괴한 이미지는 또 어떠한가.
가끔은 아무런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을 때도 있고 보기 싫을 만치 욕지기가 끓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작품세계를 비추는 모습인 것이다.
나는 오히려 실험적인 그의 주제의식에 그런 이미지들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내 개인적인 취향으로 좋아하는 것도 있다.

이인성의 가장 큰 단점이 있다면 70년대 후반에 등단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소설 네 권과 에세이 한 권 정도의 저서를 가지고 있는 과작이라는 것이다.
올 초 2023 한국 출판업계 관련 정보 속 24년만에 소설을 펴낸다는 이인성의 소식을 접했을 때 감격의 아우성을 강하게 질렀다.
그런데 누가 이인성의 출판 소식을 궁금해 하겠는가.

댓글은 온통 조이스의 책과 윤흥길의 ‘문신’ 완산에 더욱 관심을 보이는 형태였다.
제발 이 글을 읽고 누군가 동질감을 느꼈으면 좋겠다.
이인성이 나만 좋아하는 작가가 아니기를 하면서 말이다.

과연 올해 안에 이인성의 신작이 나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