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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날드 베이커, 김세윤 역, 『조선후기 유교와 천주교의 대립』, 일조각, 1997
저자는 1장에서 성리학의 이론에 대해 설명하며, 이황과 이이의 성리학적 견해차를 설명한다. 또한 주리론의 금욕주의적 영향이 이익에게 영향을 줬다고 주장한다. (11쪽) 이익은 이단에 대해 개방적이었음. 이후 그의 사상은 신후담, 안정복 등을 거쳐 정약용에게 영향을 줌. 정약용은 1791년 이후 천주교를 버렸으나, 서학 사상은 정약용의 철학에 영향을 줌. (11~17쪽) 이어서 저자는 율곡학파의 한원진과 이간 사이의 호락논쟁을 설명함. (17~23쪽)
2장은 성리학자들의 천주교 이해에 대하여 다룬다. 예수회 선교사들은 자연관과 역법에 관련하여 중국 및 조선의 지식인들과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은 17세기에 이르러서 믿게 됨. 또한 12중천설은 1908년 관찬 백과사전인 『증보문헌비고』에도 수록됨. (37쪽) 『천문략』에 대해 언급한 이익은 디아즈의 종교적인 서술은 제외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만을 받아들임. (38쪽) 그러나 선교사들은 유교가 서양과 동일한 사고방식을 가지지 않으며, 동일한 방식으로 과학과 윤리를 결부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지 못함. (41쪽) 조선 지식인들은 천주교를 종교적 측면에서는 박해했으나, 서양 과학과는 분리해서 보고 있음. 이는 박제가의 사례에서 드러남. (64~65쪽) 이헌경은 1790년에 천주교를 비판하는 짧은 글인 『천학문답』을 저술함. (65~66쪽)
마테오 리치의 경우 신유학자들의 리 개념이 자신과 충돌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 그러나 리치는 리가 창조적 힘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창조적 힘은 오직 신에게서만 나온다. (71~72쪽) 그러나 신후담과 안정복은 사물없이 논리가 있을 수 없다는 리치에 말에는 동의함. 그러나 리가 있어야 사물이 사물일 수 있음. 즉 신조차 창조할 사물에 대한 개념이 있어야 함. (72~73) 이후에 리치의 리와 신후담, 안정복의 리에 대한 견해차 설명 (73~76쪽) 또한 안정복은 천주교로 인해 백성들이 현혹될 것을 걱정함. (77~78쪽)
3장은 유교와 천주교의 갈등에 대해 다루고 있다. 성호학파 중 천주교에 관심을 보인 인물들은 천주교가 유교의 미비된 진리를 보완해줄 것이라고 믿고 있었음. (94~95쪽) 이기경과 홍낙안 등은 천주교를 처단해야 한다고 주장. 이후 진산사건을 거쳐 신유박해 당시 『황사영백서』로 인해 조선 정부는 천주교도를 외부 침략자와 내통하여 왕조의 존립을 위협하는 세력으로 간주하게 됨. (96~99쪽)
안정복의 『천학문답』은 대표적인 척사서가 되어 1801년 이후의 박해과정에서 천주교리를 논박하는 대표 저술이 됨. 이러한 업적으로 1871년에는 문숙이라는 시호가 증시되었다. (99~100쪽) 안정복은 자신과 가까운 그룹이 잘못된 길로 빠지자 이를 지적하고, 천주교가 남인 공격의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천학문답』을 저술함.
또한 스승 이익의 명성을 지키기 위한 이유도 포함됨. (101~102쪽) 이후에는 안정복의 서학 비판론에 대한 설명이 이어짐. (103~113쪽) 천주교에 대한 안정복의 비판은 도덕에 그 근거를 두고 있음. 안정복이 천주교를 비합리적이라고 판단한 이유는 그것이 도덕원리에 맞지 않기 때문임. (124쪽) 정리하면, 진리와 윤리, 즉 지식의 존재와 행동의 당위를 달리 이해함으로써 빚어진 차이는 안정복의 비판에서 잘 드러나며, 이것이 18세기 유교와 천주교 갈등의 핵심이라고 저자는 설명함. (125쪽) 천주교는 이들의 관심인 사회도덕에 대해 언급하지 않음. (126쪽) 또한 이익은 『칠극』에 대해 부분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함. (185쪽) 그러나 신후담은 앞서 살펴본 것처럼 『천주실의』와 『영언여작』, 『직방외기』 등의 서학서를 유교적 관점에서 비판함. (186~188쪽) 이후 188~213쪽에 걸쳐 조선천주교회의 설립과 천주교 박해 과정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214쪽부터 288쪽에 이르는 동안 저자는 서양 학자의 시선에서 1980년대까지 한국 사상 연구사의 한 흐름이었던 실학에 대해 논하고 있다. 여기에서 저자는 1980년대까지 한국 실학 연구의 흐름을 총정리하며, 실학의 개념 정의를 확실히 할 것을 당대의 한국 학자들에게 당부하고 있다. 특히 성호학파이자 서학 비판론자인 신후담을 실학파로 분류하는 것에 비판을 표하며, 『서학변』을 분석한다. 이를 통해 저자는 실학 개념이 신후담과는 맞지 않음을 밝히고, 최동희, 이원순, 김한식 등 당대 학자들의 연구를 비판한다. 그리고 실학 개념의 재구성을 촉구하고 있다.
다음으로는 정약용의 의학관과 서양의학에 관한 내용이다. 그리고 당시의 조선에 관한 인구학적 배경을 설명한다. 이후에는 결론부로 조선왕조에서 천주교가 비판받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불교와 도교 무속신앙과 비교하여 유교와 천주교의 논리상 차이점을 대비시키고 있다.
잘 읽었다.사학과 출신인가?그나저나 일조각이 좋은 역사책을 많이 내더라.
ㅇㅇ 그냥 일종의 아카이브로 쓰고 있음. 연구 관련 책이나 논문들
흐음... 좋네요
여기서는 유교가 진리와 윤리를 분리해서 더 현대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