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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종의 음악 평론집이라고 생각하며 잡았던 책이지만, 조금 방향이 달랐다. 어떤 음악이 좋고 나쁘냐에 대한 가치 판단보다는 그것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고, 그것을 듣는 사람에게 무슨 의미를 주며, 어떤 맥락에서 이를 이해해야 하는가 등에 대한 에세이. 덕분에 다루는 음악도 생각 이상으로 대중적인 음악이 많았고-플릿우드 맥의 <Rumours>라든가-여기에서 음악적으로 뭔가를 새로 얻어갔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이 부분에 대해 조금 더 불평을 하자면 아마도 이 사람이 최근의 이모emo 재평가 붐에 어느 정도 기여를 했으리라 생각이 든다. 이모가 솔직하게 다루는 감정의 종류가 어떻게 대중적으로 허용되지 않았었는지를 이야기하는 건 좋지만, 음악적으론 글쎄. 워낙 진솔하고 설득력 있게 이야기를 하느라 간만에 몇몇 이모 락 앨범들을 다시 들어봤지만 생각이 달라지진 않았다.



그런 점들을 뒤로 하고 보면, 확실히 글을 잘 쓰는 사람이다. 나는 음악을 들을 때 그 사회적 맥락 등과 같은 요소들을 거의 거세하다시피 한 채로 음악을 듣는 걸 선호하는 사람인데-그러니까, 데이빗 보위의 베를린 3부작을 들을 때 그것이 함축하고 있는 '베를린'이라는 도시의 당시의 의미를 신경 쓰지 않는다든가-그런 나조차도 <죽이기>를 읽으며 몇 번이고 그런 점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걸 듣는 사람들은 이 사람이 자신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하는 따위의, 내러티브로서의 음악. 위켄드가 사람들에게 내세우는 파괴적으로 선정적인 이미지나-<After Hours>에서가 화룡점정이겠거니 싶지만-배턴루지의 힙합이 어떻게 당시 태풍 카트리나로 인해 대피한 난민들이 배턴루지를 파괴하고 재건설했는지를 전달하는지 읽고 있으면,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음악을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또한, 소위 흑인 음악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정치와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에 있는지도 새삼스럽지만 강렬하게 다가온다. <죽이기>는 정말 약간 과하게 느껴질 정도로 정치적인 글들을 담고 있지만, 그것과 별개로 <죽이기>에서 몇 번이고 지적하고 연결짓는 힙합과 그 외의 흑인 음악들이 내포하고 있는 인종차별에 대한 저항 정신은 유의미하다. 드라마 <애틀랜타>-어차피 이걸 본/볼 사람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는 사실: 차일디시 감비노가 스스로를 주인공으로 삼아 찍은 드라마-에서 백인 라디오 DJ가 주인공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에게 nigger라는 말을 할 때의 그 불편한 침묵과 켄드릭 라마 콘서트에서 가사에서 나온 이 말을 따라부른 백인 관객에게 쏟아진 야유 같은 것을 솔직히 내가 이해할 수는 없고, 당시에는 광적이라고도 생각했지만, <죽이기>는 그런 부분에 대해 재고해보도록 나를 설득하는 데에 성공했다.



그러나 <죽이기>를 읽고 나면 음악을 들을 때 약간 불편한 기분이 든다. 여전히, 내게 음악은 그런 사회적인 물건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조니 캐시의 <At Folsom Prison>을 들으며 페르소나와 진실성의 충돌과 같은 것을 떠올리기에는 음악이 보다 더 추상적인,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예술이라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이 앨범에서 기실 수감자들은 그가 표상한 범죄자의 이미지를 담은 가사에서 침묵했고, 프로듀서가 이후 수감자들의 환호성을 따로 추가했다는 말은 무시할 수 없는 무언가 묵직한 것으로 다가왔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