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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도서관 (nl.go.kr)


여기서 '소련화고'라고 검색한 뒤

'해외한국관련자료' 코너로 찾아보길.


그럼 위에 해당하는 자료 pdf식으로 볼 수 있음.






혹시라도 '소뽕'인 사람들은 핵무기 완성(1949, 소련) 직후 소련의 위용을 보고 싶으면 해당 자료 참조.

(국립중앙도서관 해외한국관련자료 코너)


또 역덕후나 그외 흥밋거리 찾는 이들은 국립중앙도서관의 '해외한국관련자료'에서 여러가지 검색하며 구경을...





사진설명:


출처는 국립중앙도서관 '해외한국관련자료' 코너.

1949년에 중국에서 발행한 화보집이 원 출처.

1949년 소련의 혁명절 열병식 사진을 화보로 낸 것(타스통신의 사진 인용한 듯).


원래 1949~50년경 평양에 어쩌다 있게 된 책이 6.25때 미군이 입성하면서 압수, 미국 국립문서보관소까지 간 듯.

2000년대 들어 한국 국립중앙도서관이 해외 한국 자료 발굴하면서 입수, 사이트에 공개한 것.




사진을 보면, 당시 혁명절 당일에 모스크바 시민들이 주요 공산권 지도자들 초상화를 들고 행진하는 장면.


사진 속 가운데 피켓의 인물은 아무리 봐도 모택동.

초상화는 소련 사람이 그린 듯. 좀 서양스럽게 관상이 나왔음.


한편, 당시 그 행사에 있었던 이태준의 말에 따르면 김일성 피켓도 봤다 함.

(아마 김일성 초상화도 서양인스럽게 나왔을 듯? 근데 이태준의 기행문엔 그런 언급은 無)



사진 속 모스크바 시민들의 표정이 어떤지?......초췌해 뵈고, 추위에 떠는 듯한데.

아무래도 동원돼 나와서 좀....ㄷㄷㄷㄷ

몇명이 웃음기 있어 보이나.....걍 사진 찍는 버릇으로 그런 것 같고.


근데 당시 사회주의에 경도된 이태준은

이 시민들을 '자유스러운, 쾌활, 명쾌, 씩씩, 환호' 분위기에 싸인 사람들로 묘사.

그곳 사람들이 불만 없이 사회주의에 적응하면서 사는 걸로 파악.


실제 본인 눈에 그리 보였나? 아님 제대로 글을 쓸 자유가 없어서 그렇게 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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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책 이야기.






이태준 <혁명절의 모스크바>(1950.3)를 보고....

독후감 겸해 뭐라도 남겨 놓고 싶어 이하, 작성.




독후감만 올리려 했으나 운 좋게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위 사진자료를 찾음.

이태준이 봤을 장면의 사진을 구했으니....

6.25때 평양서 각종 자료를 획득해온 미군님과

미국 소재 자료를 한국으로 옮겨온 한국 공무원님들에게 감사할 일인가....?








[배경]



-소설가 이태준이 월북한 시점.

그럭저럭 북한에서 생활하던 중 1949년 10~11월 즈음에 당시 소련의 혁명절(11월7일) 초청 기회 얻음.



-이미 이태준은 1946년에 소련에 초청받아서 문화인 대표단과 함께 모스크바 갔다 온 상황.

3년 만에 또 대표단에 끼어 가게 됨.


1946년의 방문 결과를 <소련기행>이란 책으로 이미 발표함.

(당시 북측에서도 '자랑할만한' 소설가라고 생각했던 건가? 그래서 그를 자주 해외에 내보내?)



-  1949년의 여행길에 소련에 가서 보고 들은 것 적음.

이태준이 확실한 사회주의자, 친북.친소파가 된 상황에서 작성한 것이기에 전체적으로 걸러 볼 것들 존재.






[자료]



- (사진설명에 쓴 내용들 참조. )

(참고로, 월북 작가들 대개는 해금된 상태! 이거 좀 봤다고 시비 말 것!)

( '김일성 개새끼!' )







<범례>

-은 기행문 속 내용.

ㄴ은 나의 느낌, 코멘트.







[내용]



- 당시 북한, 소련 등지서 유행하던 '2차대전 유머' 소개

2차대전 때 영국, 미국, 소련 병사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독일 베를린 입성 직전.

'만일 히틀러를 붙잡으면 어케 할래?'가 주제.



소련 병사, "난 히틀러 잡으면, 양쪽이 뾰족한 쇠꼬챙이를 구하겠다.

그 중 한쪽 방향을 불에 달군 뒤, 불에 안 달궈진 방향을 히틀러 가슴에 꽂겠다."



영국,미국 병사, "왜? 보통 불에 달군 방향을 적에게 꽂아야 하지 않나?"



소련병, "너희 미국,영국인들이 히틀러 가슴에 꽂힌 꼬챙이를 다시 뽑아주지 못하도록.

꼬챙이에 손 대지 않게 불에 달군 쪽이 바깥에 있어야지."


(ㅎㄷㄷㄷㄷㄷ........)


(ㄴ 위 같은 얘기 들어보신 분?

인터넷 검색해도 안 나오는 듯한데....)




-이태준은 위 얘기를 '자본주의 국가인 영.미가 같은 자본가 편인 히틀러 및 독일을

재건시켜줄지 모르니, 소련은 이를 철저히 봉쇄하겠다는 의지'의 교훈(?)을 담은 얘기라고 해석.


ㄴ 글쎄.....이걸 어케 해석할까. 뭐 세월이 오래 지났으니 해석 가치도 없는 얘기?







-1949년 10월28일에 평양 발. 11월4일에 모스크바 도착.

3년 전보다 모스크바가 번화해졌다는 묘사.



-모스크바동양대학 조선어과 학생이 통역으로 붙었다고.




-1949년 11월 7일. 모스크바 붉은광장서 혁명절 열병식 개회.

이날 축하비행으로 '이상한 비행기'가 나왔다는 언급.

'프로펠러 없고, 폭탄 모양 비행기. 소리가 안 들리면서 다가오다가 다 지나가고 나니까 폭음이 들리는 비행기.'


ㄴ 이거, 미그15인가? 음속비행기? 당시 최신예기니까 열병식에 등장?

(위 소개한 화보집에도 무슨 비행기 사진이 있긴 한데....무슨 기종? )




-이 행사에 김일성 초상화 등장. 모스크바 시민들의 행렬이 있었는데

주요 공산권 국가 지도자들 초상화를 들고 지나갔다고 함.

여기서 이태준은 "김일성 장군 / 김 장군"이란 표현 사용.


ㄴ 탈북자 등에게 묻노니, 지금 이런 표현 가능한지?

"김 장군..."?? 달랑 저렇게만.....??



ㄴ 이태준이 봤을 그 열병식 장면은 위 자료 참조해서 화보집을 보시길.


ㄴ 열병식장에 입장하는데 보초병들에게 4~5차례나 증명서 내보이고, 검문 받았다 함.

지금 같으면 불만 터질 일, '검문당하느니 아예 안 가고 만다!' 할 것 같은데...

이런 일이 있는데 이태준이 불만.아쉬움 표현한 대목은 無.


뭔가 무감각해진 건가? 아님 불만 표시할 자유가 없어졌나?....





- 레닌 기념관 방문.

여기서 들은 것, '레닌이 총 맞은 적 있는데 그 실탄에 일본제 독약이 칠해져 있었다'



ㄴ ??? 위 같은 얘기 들어본 분? 러시아사나 레닌에 대해 잘 아시는 분?

여기저기 검색해 봤으나....이건 좀....

소련측 안내원 얘기를 그대로 옮겨 적은 거 같은데....





- 레닌중앙도서관(현 모스크바중앙도서관) 방문.

18층 규모. '유럽 제일의 서고'라고 자랑하는 소련인들.

당시 기준, 장서 1200만 권, 연간 열람자 1500만 명, 열람 서적 700만 권.



- 중앙 <-> 지방 도서관 간에 상호대차가 가능하다고 함.

( ㄴ 과연 가능한가?.....소련 영토가 엄청 크고 교통.통신이 지금보다도 불비했을 텐데...

이게 과연 수월했나?

아니면 중앙<->지방 도서관 간에 '****권 규모의 책을 *년간 빌려주는' 방식의 일종의 '단체 대여'는 어쩜 가능했을지도 모르지만....

공산권 말들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나?)




- 소련 내 각 출판사는 책을 내면 이 도서관에 납본을 해야 함.

(ㄴ 납본제. 당연하겠지! 안하면 처벌이겠지.

소련의 출판사 자체가 당 통제를 받을 테고.

한국의 납본제처럼 문화진흥 목적보단, 검열.정보통제 목적이겠지.

한국의 납본제는 안 지켜도 그만이지만....)





- 레닌이 생전에

"일반인들이 안 오는 밤 시간 동안만 거기 책을 관외대출해서 볼 수 있나?

내 사무실, 내 집에서 책 좀 보고 싶다"고 편지 보낸 적.


도서관 측은 그의 뜻대로 해줌.

레닌이 그때 보낸 편지를 1949년 당시 보관중이었다고.

(영광의 물건으로 보관 중이란 말 같은데....)




ㄴ 참나......이건 일종의 특혜적 갑질 아닌가?

지금도 그 편지가 보관중인가? 그렇다면 '갑질의 증거'로 후대까지 남는 거겠네.







-담배공장 견학 방문.

그 공장에 딸린 노동자 아파트, 유치원, 탁아소 견학.


ㄴ 근데.....묘사만 보면 참 근무여건과 복지상황이 푸짐함.

생활 여건 양호. 근데...이건, 순 선전인지?

과연 괜찮은 환경이었는지 의문.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있나?




-담배공장 임금: 최하 견습공 월 500루블 ~ 숙련공 월 2000루블.

'모스크바에서 당시 승용차 1대 값이 7000루블'


ㄴ 하.....이거 믿을 수 있나?

월급 수준이나, 승용차 가격이나....

무엇보다, 차를 노동자가 맘먹고 막 살 수 있던, 체제.환경인지....?





-소련작가동맹 방문.

(ㄴ근데 작가에 대한 복지 혜택 선전이 너무 풍족.......

거짓인가? 걍 선전일 뿐?

정책은 세워졌지만 집행이 안 되는 복지정책?)








ㄴ 종합 소감:

후....이거 이전에 이태준이 쓴 1946년의 기행문은 나름 글로서 맛도 있고 문학적 맛도 있었다.

이태준의 느낌이 있었다.

근데 1949년의 견학, 1950년에 나온 이 기행문에선....너무 소련 찬양, 공산 찬양으로 가 버렸다.

그 사이에 정말로 쓸 자유가 제한돼 버린 거? 정권의 눈치를 본 거?

아님 이태준 스스로가 용공 쪽으로 확실히 편향화된 거?




여튼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