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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유레카>의 그림자를 느낀 건 아마 이공계 학생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올베르스의 역설에서였다. 별들의 개수가 그리 무한하다면 어째서 밤하늘은 별들에게서 온 빛으로 완전히 포화되지 않았느냐, 하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 것은 의외로 에드거 앨런 포였다는 이야기. 그것도 어떤 논문으로 쓴 내용이 아니라 자신의 글에 녹여낸 것이었다길래 대체 그게 뭘까, 하는 생각만 하고 말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달까, 딱히 번역도 없는 글을 원서로까지 찾아볼 의향은 없었다. 그러다 최근에 이 책이 기어이 나왔다는 것을 듣고 약간은 신기한 마음으로 집어들었다. 그리고 "이 책을 펼쳐 앞부분 몇 페이지를 읽다 말고 얼떨떨한 표정으로 책장을 휘리릭 넘겨 이 '옮긴이의 말'로 건너뛴 사람은 당신만이 아니"라는 역자 후기를 보았다. 그럴법한 책이다.


<유레카>는 도저히 일반적인 범주로 분류할 수 없는 부류의 책인데, 순수하게 문학적인 의미에서만 보기에는 과학적 통찰들이 담겨 있고, 과학적으로 보기에는 정말 괴상할 정도로 신학적인 모티브가 원인과 과정에 몇 번이고 모습을 드러낸다. 현대의 빅뱅 이론이나 다중우주론 같은 공상적인 설명을 이끌어내기 위해 신학적 가정을 두고, 그 가정에서 단순함을 잃지 않은 논리 전개로 이러할 것이다, 하는 결론을 이끌어내는 식이다. 읽고 있으면 그 내용이 내용 자체로는 실제로 현대 과학의 언어로 수용 가능한 내용이기도 하면서도, 이런 것을 학술 서적으로 읽을 수 있을까 하면 그건 확실히 아니다. 물론, <유레카>에서 반박하는 당대의 다른 이론들도 수상쩍은 신의 개입이 포함되어 있는 건 사실이다. 마법/연금술과 과학이 분리되어 있지 않던 것처럼, 신학도 과학과 엉켜 있었다는 걸 새삼스럽게 느낀다.


그리고 기어이 올베르스의 역설을 해결한 부분을 읽었더니, 생각 이상으로 짧게 지나가서 오히려 놀랐다. 어떤 의미에서는 <유레카>의 중심이 되는 주장을 그대로 확대해가며 닿은 자연스러운 결론 중 하나이기도 할 테다. 최초의 발산(빅뱅) 이후 다시 한 점으로 모이려는 힘에 의해 서로 뭉치지만, 그 최초의 발산의 힘의 크기와 임의의 반지름의 구의 표면적을 그 확산 범위로 잡았을 때 이것이 어떻게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희박해질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이야기. 그리 수학적으로 엄밀한 계산이 들어가는 내용은 아니지만, 대략적으로 맞다. (사실, 예전의 수학과 과학이라는 것은 다들 그랬다는 것을 느끼고 있기는 하지만. 뉴턴의 <프린키피아>나 최근 읽는 <미적분학 갤러리>의 내용들을 볼 때도 비슷한 감상을 이따금 받는다.)


나름대로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기는 했다. 수학의 증명의 간결한 도약이 양탄자 아래에 숨기고 있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상수 설정들을 생각해보면, 결국 처음에는 어떤 종류의 직관이 다소 무턱대고 의식을 이끌어준 다음 거기까지의 길을 만들어 이 길이 맞는지 확인하는 부차적인 작업을 해야 하니 말이다. <유레카>는 바로 그런 직관에 의한 첫걸음을 예찬하는 책이고, 이 괴상하면서도 그럴듯한 글을 통해 더도 덜도 말고 딱 그러한 종류의 학문을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