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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는 인류를 곤충 분류하듯 나눌 수 있으며 수백만이나 수천만 명의 사람들을 싸잡아 좋으니 나쁘니 하는 딱지를 붙일 수 있다고 여기는 모든 습성을 뜻한다. 그런가 하면 때로는 자신을 단일한 나라 또는 다른 집단과 동일시하되, 그것을 선악을 초월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그것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것만이 전부라고 여기는 습성을 뜻한다.’


‘민족주의자들의 생각은 언제나 승리와 패배, 성공이나 굴욕을 향해 있다. 그들은 역사를, 특히 동시대 역사를 거대 세력들의 끊임없는 부침으로 보며, 일어나는 모든 사건에 대해 자기편은 상승세에 있고 가증스러운 경쟁 상대는 하강국면에 있다는 걸 증명하는 현상으로 여긴다. 그렇다고 민족주의를 단순한 성공 숭배와 혼동해서도 안된다. 민족주의자는 제일 강한 쪽과 한패가 되기만 하면 된다는 원칙 같은 걸 따르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일단 자기편을 선택하고 나면, 자기편이 가장 강하다고 자신을 설득시키며, 사실이 압도적으로 불리하게 돌아갈지라도 자신의 신념을 고수할 수 있는 것이다. 민족주의는 세력에 대한 갈망이되, 이 갈망은 자기기만으로 완화될 수 있다. 모든 민족주의자는 극명한 거짓을 범하면서도 자신이 옳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질 수 있다.’

‘정치나 군사분야의 평론가들은 점성술사들과 마찬가지로 어떤 실수를 범하더라도 살아남는다. 왜냐하면 아주 헌신적인 추종자들이 그들에게서 구하는 것이란 사실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민족주의적 충성에 대한 자극이기 때문이다.’

‘민족주의자는 자기편이 저지른 잔학행위를 반대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런 일에 아예 귀를 닫아버릴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다.’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한 정보가 전반적으로 불확실하기 때문에 황당한 믿음을 고수하기가 훨씬 쉬워진다. 무엇 하나 입증되지도, 반증되지도 않기에 엄연한 사실도 뻔뻔히 부인해버리는게 가능해진다. 더구나 민족주의자는 세력, 승리, 패배, 복수에 대해 끊임없이 골몰하면서도 실제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선 다소 무관심한 경우가 많다. 그가 바라는 바는 자기편이 상대편보다 앞서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며, 사실이 뒷받침되는지 확인하기보다는 상대편을 묵살해버림으로써 더 쉽게 그럴 수 있다.’

‘모든 민족주의 논쟁은 토론반 학생들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 어떤 논쟁 참가자든 자신이 이겼다고 믿어버리기 때문에 결판이 나는 법이 없다.’

‘어떤 민족주의자는 정신분열증 환자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실제 세계와 아무 상관이 없는 세력과 정복을 꿈꾸며 제법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민족주의자들에게) 아픈 데를 찌르는 말을 해보라. 아무리 공정하고 부드러운 사람이라 해도 갑자기 고약한 열성 당원으로 돌변할 수 있으며, 상대를 제압하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자기가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하고 얼마나 많은 논리적 오류를 범하는지에 대해선 무심해질 수 있다. (중략) 민족주의의 신경을 바늘로 슬쩍 건드려보라. 지적인 품위는 당장 자취를 감추고, 과거는 바뀌며, 명명백백힌 사실도 부정되는 사실이 벌어질 수 있다.’

‘요지는 두려움, 증오, 질투, 그리고 세력에 대한 숭배가 개입되자마자 현실감각을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무엇이 옳고 그른가에 대한 감각마저도 상실하게 된다. 우리 편이 저지른 짓이면 어떤 범죄도 용서받지 못할 게 없다. 어떤 범죄가 저질러졌다는 걸 부인하지는 않는다 해도, 다른 경우엔 비난했던 범죄가 똑같이 저질러졌다는 걸 알았다 해도, 그것이 부당하다는 걸 지적인 차원에선 인정한다 해도 - 그것이 잘못됐다고 ‘느낄’ 수는 없는 것이다. 충성이 개입되면 연민이 기능을 멈춰버리는 것이다.


- 민족주의 비망록


영국에 대한 애국심이 강해서 우덜 영국 요리는 결코 맛없지 않다고 하던 양반이기는 하지만 민족주의자라고 보기는 좀 힘든데?


사회주의가 무조건적인 기존 가치의 파괴도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