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반어법적 농담을 하려는 의도는 눈꼽만큼도 없다.
적잖은 사람들이 부모의 학대 또는 그에 준하는 부모의 빈곤, 무관심, 무지 속에서 자라나
'효도'할 맘이 별로 들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 "낳아준 은혜"에 발목이 잡혀
장성한 후에도 과감하게 제 뜻대로 (법적 의무를 넘어선) '효도'를 안 하는 삶을 살지 못한다.
그러나 위 책을 읽어보면, 낳아준 것은 태어난 이에게 결코 은혜가 되지 못하며
오히려 지대한 해악을 끼친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칸트 또한 <윤리형이상학>에서
부모가 자식의 물리적 원인이라는 사실은
자식이 부모를 사랑할 이유가 될 수 없으며 또한 자식이 감사해야 할 은혜도 아니라고 명시적으로 말했다. .
나아가 칸트는 같은 책에서 출산을, 한 인격을 그의 동의 없이 독단적으로 세상에 내보낸 행위로 정의하면서
부모는 최선을 다해 자기가 세상에 내보낸 인격이 자기 상태에 만족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 자식에게 효도할 의무가 있는 게 아니라
외려 부모에게 자식을 행복하게 만들 중대한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보다시피 이러한 반출생주의적 주장은 유별나게 우울한 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며
고래로 여러 철학자들이 진지하게 주장해온 것이다.
명민한 철학자들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물론 얼핏 보면 그들의 결론이 반직관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뜯어보면 그들의 논증의 가장 근본적인 전제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확실한 것이다.
좋은 논증은 확실한 전제에서 출발한다.
한편 대부분의 사람들은 역설적이게도 지극히 비상식적이다.
물론 쉽고, 간단한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식적이다.
가령 길을 걷다가 아무 이유 없이 누군가가 내 뺨을 후려친 다음,
"나는 재미로 뺨 후려치는 게 도덕적으로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도덕에는 똑부러지는 객관적인 정답이란 없지요. 다 나름대로 각자의 답이 있는거지요~"
라고 하면,
대부분이 터무니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조금만 더 복잡해지면,
"아 그러한 문제에는 정답(또는 잠정적으로 참으로 여길만한 최선의 답)은 없지요.
각자 나름대로 잘 생각해서 각자의 답을 내리면 되죠."라고
나태해져 비상식적인 주장을 가려내지 못한다.
베너타는 위 책에서
<재미로 사람을 패서는 안 된다>에 버금갈 정도의
확실한 도덕적 직관들을 기초로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논증을 펼쳐보이고 있다.
재미로 뺨 후리는 게 도덕적으로 그르다는 도덕적 주장에 동의하는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그만큼 일반적이고 근본적인 상식을 기초로 한 베너타의 논증에도 수긍할 수밖에 없다.
물론 베너타 것이 좀 더 길긴 하지만 말이다.
<애초에 안 태어나서 쾌락이 없는 상태는 태어나서 쾌락이 있는 상태보다 나쁘지 않다>
바로 이게 베너타 반출생주의의 핵심 뽀인트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이것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돈 많고 예쁘고 잘 생기고 성격 좋고 항상 좋은 일만 생겼던 아이 셋 있는 부부가 넷째를 낳을까 말까 고민 중이라고 해보자.
아이 이름도 철수라고 미리 짓고 낳으려고 하다가 걍 말았다.
시간이 흘러 그 부부가 "아 넷째 낳았으면 더 꿀잼이었을 텐데"하고 아쉬워할 수는 있다.
그러나 "철수에게 무언가 아쉬운 일이 생겼다."라고 애초에 태어나지도 않은 '철수'를 위해서 안타까워할 수는 없는 것이다.
바로 이게 <애초에 안 태어나서 쾌락이 없는 상태는 태어나서 쾌락이 있는 상태보다 나쁘지 않다>는 베너타 주장의 의미다.
이 얼마나 상식적인 소리인가.
그럼 이번에는 그 부부가 '철수'를 낳을 생각으로 이제 5월 안에 임신할 계획을 세우고 건강 검진 차 산부인과에 갔는데
의사가, 지금 부인이 어떤 병에 걸려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5월에 임신해서 애를 낳으면 애가 팔 한 쪽이 없이 태어나고
치료하고 6월에 임신해서 애를 낳으면 문제 없이 아이가 태어난다고 했다고 해보자.
미친 사람이 아니고서는 두말할 것 없이 치료하고 6월에 임신해서 애를 낳는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원래 계획대로 5월에 임신해서 태어날 '철수'는 6월에 임신해서 태어날 아이와는 다른 사람이다.
즉, 이 경우 '철수'에게 고통(장애)이 없게 하기 위해서 '철수'가 애초에 안 태어나는 게 좋다는 판단을 우리는 내린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애초에 철수가 안 태어나서 철수에게 고통이 없는 것은 철수에게 좋은 일이지만,
애초에 철수가 안 태어나서 철수에게 쾌락이 없는 것은 철수에게 나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논리정연한 반출생주의 논증을 더 자세하게 알 기회가 있다는 점에서 조금 덜 불운한 인간들에게
위의 책을 추천한다.
공리주의 자체가 도덕 이론으로서 매우 문제가 있는 이론입니다. 사람들을 효용을 담는 그릇 따위로 취급하여 개개인이 서로 구별되며 각각이 존엄한 지위에 있음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령 공리주의를 따르게 되면 무작위로 한 사람을 선발하여 그의 의지와 상관 없이 그를 해부해서 여러 사람에게 장기를 이식하는 서바이벌 로또 제도를 이론적으로 거부할 수가 없게 됩니다. 이렇게 직관적으로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결론에 이르게 된다는 점은 그 도덕 이론에 약점이 됩니다. 반면 의무론의 경우에는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위의 논제들도 부모의 선택에 입각해 이게 안 태어난 존재에게 낫다 저게 안 태어난 존재에게 낫다 판단하고있는 것이 아닙니까? 걍 본인 주장에 안 맞는 논제니 다 반박하고 싶은 겁니까? 제가 말한 논증 역시 부모의 선택으로 내려졌고 본인의 것도 그런데 제가 님 논증에 반박한 건 꼬투리고 지금 제 논증이 일반적인 게 아니다 이건 이래서 아니다 하는 건 반박입니까 반출생주의 역시 직관적으로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문제점이 있는 것은 왜 못 보십니까? 우리 모두 출생을 안 하게됨으로 나를 포함한 인류의 미래는 파멸에 이르게될텐데. 안타깝군요...그냥 그렇게 사세요 너는 너 길 가라 와타시는 와타시의 길을 갈테니
그것과는 별개로 일단 책은 읽어보겠습니다 님도 공리주의와 반출생주의의 반박에 대해 좀 더 면밀히 생각해보세요
1. 님이 든 예는, 그냥 와타시는 누누티비 보고 즐겁게 살란다~ 수준의 사례이고 제가 든 예는,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도덕적 직관이 있으니 우리는 일관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누누티비를 봐서는 안 된다, 라는 사례라는 겁니다. 즉, 님이 든 예는, 부유한 사람, 낙태 찜찜ㅇㅇ 걍 애 낳기 ㄱㄱ, 이런 사례이고, 제가 든 예는, <태어나지 않아서 고통이 부재한 사태는 태어나서 고통이 존재하는 사태보다 낫다>는 도덕적 직관이 우리에게 있으며 일관성이 있으려면 우리는 팔 없이 태어날 철수를 낳을 수 없다는 사례라는 겁니다. 2. 인류가 더 이상 안 태어나는 게 옳다는 주장은 인류가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타인에게 큰 위험을 부과하며 존속하는 게 옳다는 주장보다는 훨씬 덜 반직관적입니다
1. 님이 도덕적 직관이라고 주장한 이것, "A가 태어나지 않아서 A에게 쾌락이 없는 경우는 A가 태어나서 A에게 쾌락이 있는 경우보다 나쁘다" 는 순전히 제가 제시한 직관에 대적하고자 급조한 문장에 불과합니다. 도덕적 직관을 주장하는 것은 단순히 작문을 하는 게 아닙니다. 그 직관을 부정하는 것과 긍정하는 것 둘을 비교하여 긍정하는 것이 보다 우리의 도덕적 판단들과 원칙들에 부합하며, 정합적으로 도덕 이론을 구성할 수 있음을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2. 님이 급조한 그 도덕적 직관이 진정으로 있다고 주장하려면, 님의 예에서 그 부유한 부모 A는 철수는 물론이고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은) 영철, 영수, 민수, 진수, 광수, 영희, 영자 등등에 대해서 그들이 태어나지 않아서 그들에게 쾌락이 없으면 그들에게 나쁜 일이다, 라는 기이한 판단을 내려야 하며 다른 사정이 없으면 그들을 위해 그들을 낳아야 합니다. 나아가 인간을 존재케 하는 기계가 있다고 할 때, 그리고 그 기계를 작동시키는 데 별 부담이 없다고 할 때, 우리는 계속해서 사람을 존재하게 해야 합니다. 따라서 그러한 직관은 부정하면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받아들이면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속 님이 제시한 직관이 문제가 있다고 한 것입니다.
예가 아닌 것은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라 - dc App
남의 글에 아무런 근거도 없이 보지도 듣지도 말라고 찍 한 줄 갈기는 것은 예가 아닌 줄 아뢰오. 예가 아니면 행하지도 말라고 했거늘..
그래서 행하지 말라는 말만 쏙 뺀것이오
결국 자기가 쓴 말이 '예가 아닌 것'이란 걸 인정한 터인데 그러면 그 '예가 아닌 것'을 의도적으로 스스로 쓰면서 봤다는 말이 되오. 어느 것 하나 지킨 게 없구려
그렇소. 나의 댓글은 예가 아니지. 그러므로 이 댓글을 보고 들은 당신의 패배라오. 예가 아닌 것을 보고 들어버렸지 않소.
나는 당신 주장의 내적 일관성을 공격한 것이오. 나는 <예가 아닌 것은 보지도 듣지도 말라>는 명제를 주장하거나 전제로 삼고 있지 않소. 다만 당신이 그러한 주장을 하면서 스스로 그 주장을 어기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을 뿐이오.
내적 일관성?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군. 우리가 서로의 내적인 부분을 어찌 알리오? 우린 서로 만난적도 없소. 말 한 마디 섞어본 적 없는 사람에게서 무엇을 알아낼 수가 있소? 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악마견이 되어 당신의 목을 물어뜯을 수도 있소. 내적 일관성? 그게 대체 무엇이오. 그런건 공격이 아니오.
얘는 "주장의" 내적일관성이라니까 먼소리하냐ㅋㅋ 남의 글에 어그로짓하다 바보인증 좀 하지 말어라
그럼 남의 글에 어그로 짓을 하지 내 글에 어그로 짓을 하오? 말이 안되는 소리 좀 그만하오. 게다가 바보란 말은 더없는 칭찬인걸 아시오? 사실 바보란 바다의 보배라는 뜻이오.
얘가 독갤 고닉중에 젤 역함ㅋㅋ ㅈ노잼에 완장 후빨 친목질로 버티는 근첩련 ㄹㅇㅋㅋ
진짜무섭네
근데 태어나지 않아서 쾌락을 얻지 않는 것이 결국 차선이라는 논리로 귀결되는거 아닌가
그럼 반출생주의 입장에서는 모든 생명 탄생을 다 반대함? 인간 말고도?그냥 생물 다 사라져야 된다고 보는거?
고통을 겪을 수 있는 유정적 존재 일반에 대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그 존재에게 더 나았을 거라고 하는 거다. 이미 존재해버린 것이 소멸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건 아니고.
그러니까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존재들은 더 이상 안 태어나는게 맞다고 보는 거 맞네
해당 댓글은 삭제되었습니다.
님 댓글에서, 반출생주의가 논리에 맞지 않다, ~명제 자체가 사실이 아니다, ~는 오류가 있다, 모두 그저 선언에 불과한 것이지, 그에 대한 아무런 근거가 없습니다. 그나마 이유 같이 보이려고 쓴 무언가는 <삶이 있기 때문에 도덕과 논리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것 뿐인데 사람들이 태어났기 때문에 도덕이나 논리학과 같은 학문이 생길 수 있었다고 해서 반출생주의가 그르다는 결론이 자동으로 도출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령 불에 타는 고통을 내내 겪는 인간을 만들어내는 희한한 기계 덕분(?)에 태어난 한 사람이 이 기계는 매우 나쁜 기계이며, 없어지는 게 옳다, 라고 판단내리는 것에 오류는 없으며, 그 기계를 부수는 것 또한 전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저는 삶에 쾌락보다 고통이 크다는 식의 주장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본문은 읽고 그에 대한 반박을 해주세요.
삶에 고통이 쾌락보다 더 크다는 주장을 안 하더라도, 태어나지 않는 편이 더 낫다는 반출생주의 주장을 할 수 있습니다. 그 내용이 본문에 있고요..
가치중립적이란 말을 무슨 의미에서 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가령 사지가 없이 끔찍한 고통만을 겪는 인간은 태어나지 않는 것이 태어나는 것보다 더 낫다는 판단은 내릴 수 없습니까?
<태어난 상태도 태어나지 않은 상태도 그 자체로는 가치 중립적이라는 것>이라는 님 주장이, 어떠한 태어나지 않은 존재에 대해서도 안 태어나는 게 더 낫다는 판단을 내릴 수 없다는 '일반적 주장'인지 아니면 그와는 다른 종류의 주장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질문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님 주장은, 끊임없이 끔찍한 고통만 겪게 될 사람에 대해서도 안 태어나는 게 더 낫다는 판단을 내릴 수 없다는 겁니까?
내가 너 죽여버리면 나쁜짓이 아니라 구원해준거네?
애초에 안 태어나는 거랑 일단 태어나버린 사람이 죽는 것은 전혀 다른 거다. 지인이 죽었다는 얘기를 듣고 안타까워하거나 그를 불쌍하게 생각하는 경우는 많지만 셋째 낳으려다 말았다는 한 부부의 이야기를 듣고 그 안 태어난 셋쨰가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게 니가 느그애미 뱃속에 있을때 발로 차서 유산시켰어야했는데 그러지 못한게 내 죄임.
어 씨발 틀린말이 아니네
해당 댓글은 삭제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불에 타는 고통을 내내 겪는 인간을 만들어내는 희한한 기계 덕분(?)에 태어난 한 사람이 이 기계는 매우 나쁜 기계이며, 없어지는 게 옳다, 라고 판단내리는 것에 오류는 없으며, 그 기계를 부수는 것 또한 전혀 잘못이 아닙니다.
인간이 불에 타는 고통을 내내 겪는 게 아니잖습니까 위에서 본인이 모든 고통이 부모 탓이 아니라고 했는걸요
인간이 출생을 멈춤으로 노동 인구가 줄어들어 우리의 경제적 부담으로 인한 고통은 날이 갈수록 심해질 것인데도 말이죠 !! 최대다수 최대행복은 개뿔 우리는 도덕을 위해 고통을 줄 가능성이 있으니 이를 배제하기 위해서 다수가 고통에 처하는 지경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 하하하 확실한 고통을 겪게되는데 그놈의 가능성이 뭐라고 ~
자기를 존재하게 만든 무엇(제가 든 예에서는 기계)을 부정적인 것으로 보는 것이 전혀 문제될 게 없다는 걸 보여주는 비유입니다. 도덕이 인간 때문에 생겨났다고 해서 도덕이 반출생주의가 옳다는 결론을 내리지 못할 이유는 없는 것이죠.
자기 이득 때문에 타인에게 큰 해악을 끼치는 것은 옳지 않는 것이죠. 그리고 도덕을 떠나서 봐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자기 자식인데 그 자식한테 해악을 끼치는 행위를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죠. 즉, 적어도 출산이 그로 말미암아 태어나는 사람에게 큰 해악이라는 점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자기 자식에게 그런 행위를 할 수가 없는 거죠. 다시 말해, 아이를 낳을 수가 없는 것이죠.
그럼 님은 지구의 모든 개개인이 아이를 낳지않으면 고통이 확실한 상황에서 아이를 낳도록 하고자 하는 겁니까? 물론 일관성, 정말 중요하죠 그렇지만 일관성있게 산다고하여 그게 더 도덕적인지 아닌 지 어떻게 판별합니까 (지구에 있는 모든) 내가 아이를 낳지않으므로 타인들이 겪게될 확실한 고통은 전혀 생각하지않고 아이를 낳았을 때 내 자신이 겪을 고통 가능성에 대해서만 생각합니까? 아 내가 자식에게 잘못을 하게될까봐 (내 이익때문에) 타인들에게 고통을 가하는 게 잘못인데도 그런 선택을 해야겠군요 - dc App
우리가 아이를 낳지않으므로 타인에게 고통을 확실하게 주게될 상황은 지대한 해악이 아닌가보죠? 이건 확실하고 저건 가능성의 문제인ㄷ - dc App
"그렇지만 일관성있게 산다고하여 그게 더 도덕적인지 아닌 지 어떻게 판별합니까" ㅋㅋㅋㅋ..보는 내가 다 부끄럽네 갈수록 님의 모자람만 드러나는 거 같음
또 앞에서도 말했듯이 위의 고통 관련 논증의 경우 장애가 있는 아이(고통)에서 장애가 없는 아이(쾌락)로의 선택인지 장애가 있는 아이(고통)에서 태어나지않는 아이로의 선택인지 알 수 없습니다 선택의 원인이 불명확하니 이 역시 논증이다 아니다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례로 논증을 제시해주세요 - dc App
위처럼 일관적인 도덕적 판단을 하더라도 우리가 출생을 안 함으로 타인에게 고통을 준다는 것은 팩트아닙니까 ? 출생을 할 경우보다 출생을 안 할 경우 고통을 줄 가능성이 더 큰데 '우리 자식에게 고통을 줄 수 있다'고 해서 '자식이 아닌 타인에게 고통을 줄 수 밖에 없는' 선택을 한다는 게 말입니까 방구입니까 - dc App
타인에게 고통을 줄 가능성이 더 큰 선택보다 더 작은 선택을 하는 건 누구나 납득할만한 판단일 것입니다 그런데 고통을 줄 가능성이 더 큰 선택을 했을 때가 지대한 해악이라뇨? 고통을 줄 가능성이 더 적은 선택을 하는 게 당연지사죠 위의 두 논증이 참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더 나은 선택을 한 것입니다 또 고통을 줄 가능성이 있는 선택을 했다고하더라도 그것이 지대한 해악인 게 아닙니다 물론 자식에게 은혜를 바랄 수는 없더라도 도덕적으로 불가피한 선택이었던 거죠 더 큰 고통을 피하기위한. - dc App
위의 두 논증이 사실이라면 '자식에게 미안한 선택'인 것도 인정합니다 다만 타인(남)에게 고통을 주는 게 확실한 선택 대신 타인(자식)에게 고통을 줄 가능성이 그보다 덜하지만 있긴 한 선택을 하는 건 도덕적으로 합리적인 것 아닙니까? 불가피하니까요. 그래서 '이미 태어난 타인이 겪을 고통>태어난 아이의 고통>안 태어날 아이의 고통'이니 우린 고통이 덜한 선택을 한 것 뿐입니다 태어난 아이에게 만약 미안함을 느껴야한다면 타인들이 겪을 고통에도 미안함을 느끼셔야죠 - dc App
지금 니가 말하는 내용 전부 책 4장에서 다루고 있으니 여기서 이러지 말고 걍 책을 봐라 그러고 반론해라 안그러면 이미 책에 있는 내용에서부터 전부 떠먹여 달라는 짓이니까
그리고 너의 반론이 일관성 있으려면 너는 출산이 '도덕적의무'라고 해야 한다
바라바라밤// 하나씩 하나씩 따져보죠. 먼저 <고통 관련 논증>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님은 태어나면 사지가 없는 사람에 대해서, 그 사람을 위해서, 그를 낳지 않는 것이 옳다고 생각 안 하시나요?
아이가 사지가 멀쩡하지 않게 태어난다하더라도 태어나고부터 죽을 때까지 고통만 있는 게 아니라면 출산을 선택하지 않겠습니까?고통만 있는 경우는 존재하지않고 지나치게 가난한 경우(고통가능성이 큰 경우)여도 저는 출산을 했을 겁니다 오체불만족이어도 장애가 있어 신체적 고통이 있더라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는 단순 선택의 문제입니다 장애인들을 비롯한 우리 모두는 태어나서는 안됐던 것입니까? 고통의 가능성 탓에요? 우리가 출산을 하지않으면 고통이 확실한데 고통의 가능성 탓에 그런 결정을 내려야하는 겁니까? 고통만 있는 것도 아닌데요 - dc App
그래서 님 주장이, <태어나지 않음으로 인해 고통을 피하는 것은 그 안 태어난 사람에게 좋다는 직관을 보여주는 예는 전혀 없다> 즉, 어떠한 경우에도 (사지가 없고 끔찍한 고통만 겪는 인간)의 경우에도 그 사람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아서 그 사람에게 고통이 없는 것이 그 사람에게 낫다고 할 수 없는 것인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평생 쾌락 없이 고통'만' 겪는 인간이라면 태어나지 않는 게 낫습니다 다만 실제로 그런 인간은 없을 뿐더러 이런 현실성없는 가정에서 도출된 결론으로 '현실에 있는' 사람의 옳고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안타깝지만 그 자체로 문제이지 않을까요? 가정이 현실성 없다면 그 논증은 결코 신뢰할 수 없습니다 왜 허구를 위하여 현실 파괴적인 선택을 하도록 유도하는건가요?? - dc App
1. 여기서 현실성 없는 가정을 한 이유는 님이랑 저랑 모두 동의하는 <차마 부정할 수 없는 도덕적 직관>을 드러내보이기 위해서 입니다. 그러한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비현실적인 가정에서 그러한 직관이 드러나게 되었다고 신뢰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이는 예를 들어, 흔히들 사람들이 도덕적 논쟁에서 꺼내드는 '역지사지' 같은 것입니다. 니가 내 입장이라면 그렇게 행동했겠느냐(즉 당신의 행동은 보편적 원칙에 근거한 게 아니라 저만 좋은 이기적 동기에서 이뤄진 것이다!)는 비판을 했을 때, "응, 내가 어떻게 니가 돼? 그런 비현실적 가정에서 나온 결론은 신뢰 못해"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2. 비현실적 가정을 통해 근본적으로 우리가 부정하지 못하는 도덕적 직관이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일은 너무나 흔한 것입니다. 이는 마이클 샌델의 책에서 나오기도 한 그 유명한 브레이크가 고장난 전차를 뚱뚱한 사람으로 막느냐 마냐 같은 사례에서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도덕적 문제에 대한 논쟁은 다음과 같이 이뤄질 수 있습니다. 논쟁의 상대방과 내가 모두 동의하는 <차마 부정할 수 없는 도덕적 직관>을 드러낸 다음 그것과 양립가능한 도덕 이론이라면 당신(논쟁의 상대방)이 지금 주장하는 결론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반박을 하는 것입니다.
3.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면, 님은 결국 제가 <고통 관련 논증>으로 드러내 보이려고 했던 <태어나지 않음으로 인해 고통을 피하는 것은 그 안 태어난 사람에게 좋다>는 직관을 수긍한 것입니다. 여기에 이의가 없다면 다른 논점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작성자님이 반출생주의자로 살기를 택하신 것은 존중합니다 지금까지 이야기해본 결과 저 논증에 대해 반박할만한 논증을 제시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제가 못 찾았을지도 모르지만 책은 잘 읽어보겠습니다 - dc App
하지만 모두가 반출생주의자로, 출생을 멈추는 순간 그 멈춘 시대가 지금이라고 한다면 이미 출생을 당한 현대인들은 추후 부양할 수 있는 자녀나 젊은세대가 없음으로 굉장히 고통을 받게됩니다 의료시스템 , 복지 등등 나의 고통에 문제가 될 것이 현실적으로 많습니다 사람은 이기적인 동물입니다 그리고 그 이기심은 당연한 것입니다 애초에 고통은 나를 기준으로 합니다 역시나 인간은 나를 위해서 고통을 줄여가야 하는데 출생이 본질적으로 비윤리적일지라도 내 노후를 위해 자녀 혹은 젊은 세대가 필요하게 됩니다 - dc App
반종차별주의자나 채식주의자, 생명의 평등을 근거로 이를 강요하고 전파하고 이를 따르지않으면 무조건 틀린것이고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베타주의가 될 수 있습니다 반출생주의도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자식된 사람들은 윤리적 정의를 내세우며 사상에 빠져 남들에게 억지동의를 얻으며 살아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 dc App
그러나 출생을 선택한 것=지대한 해악은 아닙니다 존재하지않을 때보다 고통이 클 것이고 쾌락은 나쁘지않을 것이라 하더라도 실제로 고통만을 주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지대한 해악이란 표현은 지나치게 과장되어있습니다 고통을 주도록 선택한 행위는 널리고설쳤는데 그때마다 지대한 해악이라고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 dc App
아직도 하고 있네ㅋㅋ 바라바라밤// 적당히 해야 나중에 이불킥 안 하지 않겠음? 이미 늦긴 했다만ㅋㅋ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자유로운 토론을 위한 주장의 타당성을 인정하면서 "극단으로 밀어 붙여"지는데는 반대한다. 극단적인 경우에 타당하지 않다면, 어느경우에도 타당하지 않다는걸 보지 못하는 것이다> - 존 스튜어트 밀
바라바라밤// 네. 본문에서 저는 "위 책을 읽어보면 ~지대한 해악을 끼친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라고 썼습니다. 그리고 본문에 제가 제시한 '철수' 논증에 의해서 곧바로 삶이 지대한 해악이라는 점이 논증된다고 하진 않았습니다.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에서는 아예 장을 나눠서 2장에서는 존재하게 되는 것이 항상 해악이라는 점, 3장에서는 그 해악이 매우 크다는 점을 다룹니다. 3장 부분은 직접 읽어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정말 친절한 답변 감사드립니다:) 제가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뺏은 것 같은데 정말 죄송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dc App
감사합니다. 긴 시간 고생 많으셨습니다!
토론태도만 바꿀 수 있으면 많은 걸 얻어갈 수 있는 적극성임. 적극성에는 아주 박수를 보낸다만, 토론에 있어 공격적이지는 않길 바람.
글 반이라도 읽으셨다면 충고 감사합니다~ 글쓴이님께서 친절히 답변해주셔서 태도를 좀 더 유하게 고친 것 같네요 무례해서 보기 껄끄러웠다면 죄송합니다~ 그리고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앞으로 좀 더 예의 지키며 토론하도록 하겠습니다 - dc App
~라고 생각하는 어떤 미친 과학자와 독재자가 모든 인류 불임수술 시키고 고통도 행복도 모르는 기계문명이 지구 지배하게되는 소설 있으면 추천좀
고생이 많습니당
댓글에 글쓴게이랑 키배뜨는 애들은 좀 모자란 애들밖에 없노 ㅋㅋㅋ
이런 책은 인생이 불행한 새끼들만 읽고 인생 행복한 새끼들은 이딴 책 안 읽고 이미 행복하게 사는 중 ㅋㅋㄹㅇ
ㄹㅇㅋㅋ - dc App
머 어쩌라고 씨발년아 그럼 행복한척할려고 안읽어야됨?
내가 요즘하는생각이랑 똑같은책이있었네 ㄳㄳ 사서읽어볼께
읽는다고 니 시궁창같은 삶이 변하겠냐? 자살이나 쳐 하셈ㅋ
독갤에도 마음이 빈곤한 친구가 있네 ㅋㅋ
느검마요~
자살예방센터 1393 본인한테 하는소리인거아니까 전화해봐
꺼져 병신아ㅋㅋ
으따 마오쩌둥동지가 옳았당께요ㅋㅋㅋㅋ
진짜 반박하는 애들이 모자라서 반출생주의가 더 돋보이자너ㅋㅋ 제대로 이해도 안 하고서 아득바득ㅋㅋㅋ
궁금함. 도대체 무엇이 그들의 심기를 그렇게 거슬리게 한건지 ㅋㅋ 무슨 패드립부터 별의별 인신공격 다 날라옴
사실은 누구보다 유교를 숭상하는..
닉 보고 이걸 줄 알았다.
대충 본문을 읽어보고 말하자면 삶은 대체로 고통이라는 전제에서 제목을 저렇게 지은 거라 할 수 있겠군.
베너타의 주장은 아무런 생명체가 없을때나 유효한 주장임. 이미 태어난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의 이익이 유관한 한, 출산은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옹호될 소지가 다분함. 이미 태어난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새로운 생명체를 창조한다는 것을 그냥 쿨하게 인정하고 나면 베너타의 주장은 그다지 강력하지 않음.
어쨋든 효도할 필요는 없는거네
그건 맞는말 같음. 출산에 있어서 그 출산으로 인해 태어난 존재를 위하는 측면은 없다고 보고 가능하지도 않지.
문제는 그것이 피해를 준것이냐는거겠지. 베너타는 “그렇다”라고 말하는 것이고.
문제는 그 공리주의적 관점이 정당화되느냐인데 대체 그런 말은 왜 나오는거임..? 자기과시? "의무론적 관점에서 싱어의 주장은 그다지 강력하지않음" 이게 헛소리인 것만큼이나 헛소리지
1. 네 주장의 전제인 '공리주의' 자체를 옳은 도덕 이론이라고 논증하는 것부터가 난망한 일이라는 점은 차치하고, (그나마 그럴듯한)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가장 바람직한 것은 단계적 인류 멸종이다. 물론 네 말대로 이미 존재하는 사람들한테는 이익이 된다고 쳐도, 공리주의자는 존재하게 될 사람의 이익 또한 고려해야 한다. <한 인간이 안 태어난 사태>와 <한 인간이 태어난 사태>를 비교한다고 할 때, (베너타의 비대칭성 논증을 반박할 수 없다면) 그 인간이 태어나서 겪을 '좋음'은 아무리 많아도 조금도 플러스가 되지 않는 반면 그 인간이 겪을 '나쁨'은 모두 마이너스로 계산된다.
2. 따라서 공리주의자 입장에서 출산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태어날 인간의 확실하게 발생할 <생로병사의 마이너스 효용>보다 타인에게 생길 플러스 효용이 더 크다고 해야 하는데 태어날 그 사람이 이미 존재하는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의 순효용이 마이너스가 아니라 플러스임을 합리적으로 추정하는 일도 어려울 텐데 그 플러스 효용이란 게 <생로병사의 마이너스 효용>보다 더 크다는 것을 합리적으로 추정하는 것은 전자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일 것이다. 따라서 (그나마 그럴듯한) 공리주의자는 어마어마한 마이너스 효용 발생을 확실하게 방지할 수 있는 반출산을 택해야 한다.
3, 다만 노인 비율이 지나치게 높아지는 등의 문제로 인해 미래 세대가 겪을 고통이 어마어마하게 크다는 것이 합리적으로 예상될 때가 도래하면 (그나마 그럴듯한) 공리주의적으로 출산이 정당화될 가능성이 생긴다. 여기서 "미래 세대가 겪을 고통"이란, “지금 한국이 저출산이라 연금 부담이 커지니 뭐니” 따위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일할 사람이 너무 없어서 불도 못 끄고 치료도 못하고 도둑도 못 잡고, 사람이 말 그대로 픽픽 죽어 나가는 그런 재난 상황에 준할 정도여야 하는 것이다. 이는 한 사람이 태어남으로써 발생하는 암, 치매, 요로결석, 디스크, 실연, 사별, 우울증 그리고 죽음의 어마어마한 마이너스 효용과 상응할 만큼 미래 세대의 고통이 커야만 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비대칭성 논증 자체도 동의하기 어려움. 쾌락과 고통의 부재가 그 부재를 경험할 주체가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그것들이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것인지 나로선 이해하기 어려움. 평가라는건 어찌됐든 경험의 주체를 언급함으로서만 의미를 지니는 것인데..
<베너타의 주장은 아무런 생명체가 없을때나 유효한 주장임>. <베너타의 주장은 그다지 강력하지 않음>이라는 네 말은, 베너타의 논증이 맞다고 쳐도 그렇다는 뜻 아니었냐? 지금은 아예 베너타 논증 자체를 문제 삼고 있는데. 그럼 베너타 논증이 옳을 경우에, 공리주의자조차도 강력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은 적어도 인정하는 거냐?
출산에 관해서 할 수 있는 말은 생식결정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손익으로밖에 판단할 수 없으며, 그러한 손익계산이 잘 합의된 방식으로 계산되기 매우힘들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거의 대부분의 출산은 잘못이 아니다라고 생각함. 어차피 위와 같은 방식으로 출산이 거부된다하더라도 베너타가 원하는 방식대로의 거부는 아닐것이고.
그런 입장이면 애초에 베너타 반출생주의의 핵심인 비대칭성 논증부터 거부한건데 <베너타의 주장은 아무런 생명체가 없을때나 유효한 주장임> 같은 말은 이상한 거지. 네 입장에서는 그럼 애초에 틀린 이론인 건데 언제는 유효하겠나. 어쨌든 그럼 비대칭성 논증을 포함한 베너타의 논증이 건전(sound)하다고 하면, 공리주의적 입장에서, 이미 태어난 사람의 이익이니 뭐니 다 쿨하게 인정하더라도, 베너타의 주장은 강력한 거지?
그 말을 꺼낸 의도는 인류의 자발적 멸종을 통해 존재의 고통을 끝내려는 베너타의 도덕철학적 입장이 애초에 무의미한 얘기란걸 비꼬려거 한거지. 설령 그렇게 해서 멸종한다 하더라도 유정적 존재가 또다시 화학적 결합에 의해 생겨나겠지. 이런식의 물고늘어지기를 피하기 위해 선을 그으려는 모습이 보이지만 출산의 관한 문제는 결국 인간실존의 문제와도 뗄 수 없음.
베너타의 논증이 건전하게 받아들여지는 이해를 나로선 하기 어려움. 내 능력부족일려나. 인류멸종을 옹호할때 베너타도 공리주의적 접근을 버리지 못하면서도 비대칭성 논증에서의 두 가능세계의 비교에선 오로지 잠재적 존재의 이익에 근거해서만 이야기하는 이유도 잘모르겠고.
인류가 자발적 멸종을 하면 고통이 적어지는 건데 도대체 왜 베너타의 도덕철학이 무의미하단 거임? (1) 그 적어지는 양이란 게, 천문학적 시간 관점에서는, 매우 적어서? 또는 (2) 그러한 인간의 도덕적 행위가, 천문학적인 시간 관점에서는, 미래의 어떠한 비극(인간 또는 유정적 존재가 더 많아짐)과 인과적으로 이어질지도 몰라서? 그런 논리면, 아예 인간의 모든 도덕적 행위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또는 어떠한 의미도 부여할 수 없다)고 하는 허무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유정적 존재가 또 생겨난다"는 니 추측이 맞다고 치면 그런 '사실'이 베너타의 도덕철학적 논증을 왜 무의미하게 만든다는거지? 사람을 때리는 놈팽이는 또 생겨나니까 "사람을 때리면 안된다"는 주장이 무의미해짐? 첫 댓글부터 얼토당토않은 말을 하더니 그거 변명하겠다고 심연으로 가는 느낌인데?
일단 배너타는 '존재하게 되는 것'이 바로 그 존재(잠재적 존재)에게 해악인지 아닌지부터 따져본 것이고. 그 이후에 이미 존재하는 사람들까지 고려해서 출산이 정당화되는지 따져본다. 네 지금 말은 왜 수학의 정석 1단원은 미적분은 안 나오고 집합만 나오는 거지? 랑 비슷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