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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반어법적 농담을 하려는 의도는 눈꼽만큼도 없다.


적잖은 사람들이 부모의 학대 또는 그에 준하는 부모의 빈곤, 무관심, 무지 속에서 자라나


'효도'할 맘이 별로 들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 "낳아준 은혜"에 발목이 잡혀


장성한 후에도 과감하게 제 뜻대로 (법적 의무를 넘어선) '효도'를 안 하는 삶을 살지 못한다.

 

그러나 위 책을 읽어보면, 낳아준 것은 태어난 이에게 결코 은혜가 되지 못하며


오히려 지대한 해악을 끼친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칸트 또한 <윤리형이상학>에서


부모가 자식의 물리적 원인이라는 사실은


자식이 부모를 사랑할 이유가 될 수 없으며 또한 자식이 감사해야 할 은혜도 아니라고 명시적으로 말했다.  .


나아가 칸트는 같은 책에서 출산을, 한 인격을 그의 동의 없이 독단적으로 세상에 내보낸 행위로 정의하면서


부모는 최선을 다해 자기가 세상에 내보낸 인격이 자기 상태에 만족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 자식에게 효도할 의무가 있는 게 아니라 


외려 부모에게 자식을 행복하게 만들 중대한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보다시피 이러한 반출생주의적 주장은 유별나게 우울한 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며


고래로 여러 철학자들이 진지하게 주장해온 것이다.


명민한 철학자들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물론 얼핏 보면 그들의 결론이 반직관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뜯어보면 그들의 논증의 가장 근본적인 전제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확실한 것이다.


좋은 논증은 확실한 전제에서 출발한다. 


한편 대부분의 사람들은 역설적이게도 지극히 비상식적이다.


물론 쉽고, 간단한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식적이다.


가령 길을 걷다가 아무 이유 없이 누군가가 내 뺨을 후려친 다음,


"나는 재미로 뺨 후려치는 게 도덕적으로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도덕에는 똑부러지는 객관적인 정답이란 없지요. 다 나름대로 각자의 답이 있는거지요~"


라고 하면,


대부분이 터무니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조금만 더 복잡해지면,


"아 그러한 문제에는 정답(또는 잠정적으로 참으로 여길만한 최선의 답)은 없지요.


각자 나름대로 잘 생각해서 각자의 답을 내리면 되죠."라고


나태해져 비상식적인 주장을 가려내지 못한다.


베너타는 위 책에서


<재미로 사람을 패서는 안 된다>에 버금갈 정도의 


확실한 도덕적 직관들을 기초로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논증을 펼쳐보이고 있다.


재미로 뺨 후리는 게 도덕적으로 그르다는 도덕적 주장에 동의하는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그만큼 일반적이고 근본적인 상식을 기초로 한 베너타의 논증에도 수긍할 수밖에 없다.


물론 베너타 것이 좀 더 길긴 하지만 말이다.


<애초에 안 태어나서 쾌락이 없는 상태는 태어나서 쾌락이 있는 상태보다 나쁘지 않다> 


바로 이게 베너타 반출생주의의 핵심 뽀인트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이것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돈 많고 예쁘고 잘 생기고 성격 좋고 항상 좋은 일만 생겼던 아이 셋 있는 부부가 넷째를 낳을까 말까 고민 중이라고 해보자. 


아이 이름도 철수라고 미리 짓고 낳으려고 하다가 걍 말았다. 


시간이 흘러 그 부부가 "아 넷째 낳았으면 더 꿀잼이었을 텐데"하고 아쉬워할 수는 있다. 


그러나 "철수에게 무언가 아쉬운 일이 생겼다."라고 애초에 태어나지도 않은 '철수'를 위해서 안타까워할 수는 없는 것이다.


바로 이게 <애초에 안 태어나서 쾌락이 없는 상태는 태어나서 쾌락이 있는 상태보다 나쁘지 않다>는 베너타 주장의 의미다. 


이 얼마나 상식적인 소리인가.


그럼 이번에는 그 부부가 '철수'를 낳을 생각으로 이제 5월 안에 임신할 계획을 세우고 건강 검진 차 산부인과에 갔는데 


의사가, 지금 부인이 어떤 병에 걸려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5월에 임신해서 애를 낳으면 애가 팔 한 쪽이 없이 태어나고 


치료하고 6월에 임신해서 애를 낳으면 문제 없이 아이가 태어난다고 했다고 해보자. 


미친 사람이 아니고서는 두말할 것 없이 치료하고 6월에 임신해서 애를 낳는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원래 계획대로 5월에 임신해서 태어날 '철수'는 6월에 임신해서 태어날 아이와는 다른 사람이다. 


즉, 이 경우 '철수'에게 고통(장애)이 없게 하기 위해서 '철수'가 애초에 안 태어나는 게 좋다는 판단을 우리는 내린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애초에 철수가 안 태어나서 철수에게 고통이 없는 것은 철수에게 좋은 일이지만, 


애초에 철수가 안 태어나서 철수에게 쾌락이 없는 것은 철수에게 나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논리정연한 반출생주의 논증을 더 자세하게 알 기회가 있다는 점에서 조금 덜 불운한 인간들에게 


위의 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