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말이야"

기요시가 이야기를 꺼냈다.

"세상에서 제일 슬픈 일이 동그라미를 그릴 수 없다는 거였어."

"······."

"학교에서 말이야. 컴퍼스로 동그라미를 그리는데 내가 그리는 동그라미만은 몇 번을 그려도 동그라미가 안 되는 거야. 모두들 척척 그리는데 내 것만은 아무래도 동그라미의 선이 이어지지를 않았어. 아무리 열심히 해도 동그라미가 안 돼. 내 컴퍼스는 녹슬고 낡아빠진 거였거든. 그러니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게 당연했지. 어쩌다가 컴퍼스가 나를 불쌍히 여겼는지 동그라미가 잘 그려질 때도 있었어. 그렇지만 그 다음에 그리면 역시나 또 선이 이어지지 않은 동그라미야. 그럴 때는 더욱 슬펐지. 나는 말이다, 울면서 동그라미를 그렸어."

"······."

"난 노부에 숙모네 얹혀살았는데, 사촌들이 많았어. 컴퍼스를 사달라는 말은 어림도 없었어. 그래서 누나한테 편지를 썼지. '동그라미를 그릴 수 없는 컴퍼스는 슬프다. 다시는 아무것도 사달라고 안 할테니 동그라미를 그릴 수 있는 컴퍼스 하나만 사달라고. 평생 소원이라고······.' 이렇게 편지를 보냈더니 누나가 컴퍼스를 사서 보내 주었지."

후짱은 살짝 눈앞에 있는 컴퍼스를 보았다.

"누나가 보내 준 컴퍼스로 그리니까 동그라미가 되는거야. 얼마나 기뻤는지. 난 신이 나서 동그라미를 그리고 또 그렸어. 몇 개나 몇 개나······. 난······."

여기서 기요시의 말이 끊겼다. 목울대가 또 꿈틀거렸다. 기요시는 단숨에 내뱉듯이 말했다.

"내가 그렇게 신이 나서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을 때, 바로 그 순간에 누나는 죽었어."

후짱은 무슨 겁나는 일에 부닥쳤을 때처럼 눈을 크게 떴다.
기요시는 흑흑, 숨을 삼키며 울었다.

"엄마가 버리고 간 후에 누나와 둘이서······."

다음은 잘 들리지 않았다. 기요시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신문에 실린 여자처럼 좁은 방에서 외롭게 혼자 죽어간거야."

"······."

"'기요시 , 이젠 너무 지쳤다. 기요시. 용서해다오······.' 편지에 이렇게 써 놓고 누나는 열아홉에 죽어 버렸어."

기요시는 그렇게 말하고 또 울었다. 컴퍼스를 움켜쥔 채 한참을 울었다.

그날 밤 후짱은 기요시가 울면서 들려준 이야기를 수없이 되새겼다. 후짱은 불행이나 슬픔이 제각기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줄줄이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아프게 깨달았다.

기요시가 신문을 내던져 버렸던 데는 하나뿐인 누나의 불행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기요시의 자포자기한 듯한 태도 역시, 단지 남에게 학대받는 데 익숙한 탓이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었다. 후짱은 그것을 새록새록 이해할 수 있었다.

기요시가 자라온 이야기를 다 털어 놓은 것은 아니었다. 감정이 격했던 탓인지 기요시의 이야기는 단편적이었다. 기요시는 엄마에게서 버림받은 것이 기억의 경계선이 되어 버린 듯했다.

기요시는 오키나와를 어렴풋이 기억할 뿐이었다. 아버지는 불발탄을 건드려서 죽었고, 그 이전에 엄마가 없어졌다고 했다. 여럿이 사탕수수를 날랐던 기억이 있다고도 했다. 왠지 오키나와에 관한 기억은 대부분 흐릿하고 애매했다.

오사카에 사는 숙모에게 얹혀살 때부터의 일은 자세히 기억하고 있었다. 컴퍼스 이야기처럼 슬픈 이야기들 뿐이었다.

"엄마."

후짱은 곁에서 자고 있는 엄마에게 가만히 말을 건넸다.

"안 잤니?"

엄마가 왠일이냐는 듯 후짱 쪽으로 돌아누웠다.

"기요시의 누나는 왜 죽었을까?"

엄마는 말없이 후짱을 끌어안았다.

"지쳤다고 말했는데 무엇 때문에 지쳤을까?"

후짱은 혼잣말처럼 말했다. 엄마는 말없이 후짱의 등을 어루만져 주었다.

후짱은 아까부터 줄곧 한 가지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슬픈 일은 모두 오키나와에서 온다. 왜 그럴까?'

후짱은 가슴이 철렁했다.
후짱은 재빠르게 아빠 쪽을 보았다. 아빠는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그 순간 후짱은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을 생각했던 것이다.
후짱은 도리질하듯이 머리를 흔들었다. 그런데도 눈물이 자꾸 흐르자 후짱은 엄마 품에서 소리 죽여 울었다.



하이타니 겐지로《 태양의 아이》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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