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신후담 저, 김선희 역, 실시학사 편, 『하빈 신후담의 돈와서학변』, 모시는사람들, 2014
해당 번역서는 성호의 제자 신후담의 서학 비판 저술인 『기문편』과 『서학변』을 번역한 것이다. 초반부에는 신후담과 『기문편』, 『서학변』에 대한 해제가 중심이다. 성호 이익은 천주교에 부정적이었지만, 서양 기술과 자연관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신후담은 서학에 대해 전반적으로 부정적이었다. 이익과의 토론 이후 서양의 천문과 역법 등의 과학기술에 대해서는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23~25쪽) 서학에 대한 입장은 확고하였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신후담이 59세에 저술한 『천문략곤여도설약론』에 따르면 신후담이 말년에는 성호의 생각에 동조하여 서양의 과학과 기술을 인정한 것 같다. (27~28쪽)
『기문편』 초반부에서 신후담은 이익과 『천주실의』와 영혼론에 대해서 논한다. 여기서 이익은 리치가 초목에는 생혼 금수에겐 각혼 사람에게는 영혼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또한 이것이 유학의 심(心)과 다르다는 것 역시 언급한다. 이익이 천주교에서도 천당과 지옥에 대한 언급이 있다고 말하자 신후담은 그것이 불교와 다름이 없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이익은 서학에 실용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하는 태도를 보인다. (40~47쪽) (1724년 봄)
이어서 동년 가을에도 신후담이 서학은 사학이며 불교와 다를 바 없다는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이익은 서양 학문은 가볍게 보아 넘길 수 없다고 말한다. (47~48쪽) 을사년 (1725년) 가을에 성호는 신후담에게 중국에 온 서양 선교사들을 고평가하며 그들의 천주는 유교의 상제귀신과 일정 부분 합치되는 면이 있다고 있다. 신후담은 이에 대해 서양의 선교사들이 재주가 있고 기술이 높은 자들이며, 그들의 천문 역법에는 절묘한 곳이 있다고 언급 그것이 옛날의 역법과 다른 것을 성호에게 질문함. 성호는 이에 대해 서양의 천문과 역법을 고평가함. 또한 옛 역가도 서양 선교사의 역법과 합치하는 면이 있다고 하는 성호의 언급. 신후담은 이에 대해 서양 역법을 믿는 중국의 선비인 이치조를 언급 (48~63쪽)
병오년(1726년) 겨울에 성호를 만났을 때는 서학에 혹 취할 만한 것이 있지만 그 도는 배척할 수밖에 없다꼬 신후담이 주장함. 이에 성호는 그들이 귀신을 너무 믿어서 문제일 뿐, 세상을 속이기 위한 것은 아니라고 말함. 신후담은 이에 대해 서양 선교사들이 유가 경전에는 익숙하지만 유학의 개념 이해가 잘못되어 육상산과 왕양명의 여론을 답습한 것이라고 비판함. (63~67쪽)
무신년(1728년) 봄에는 이익위를 찾아가 그에게 서학의 각종 설들을 설명 아니마의 학에 대한 설명과 서양 선교사의 성리학 이해에 대한 비판 (67~72쪽)
기유년(1729년) 가을에 이만부와 이야기를 나누며, 서학의 삼혼설과 뇌낭설이 특별한 이론이 아니며, 이미 존재하고 있는 성리학의 학설을 이름만 바꾸고 방법을 새롭게 한 것에 불과하다고 평가함. (74~75쪽)
서학변: 서학변의 첫 번째 부분에서는 『영언여작』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신후담은 영혼론을 비판하며 사람이 태어나는 것은 음양의 경기가 모이고, 죽는 것은 혼은 남고 백은 흩어지는 것이라고 언급함. (84~85쪽) 그리고 선행과 악행에 의한 상벌은 유가에도 존재하나, 이는 리에 의한 것이라고 언급하며 천당지옥설을 비판함. (86~87쪽)
이어 많은 분량을 천주교의 영혼설을 성리학적으로 반박하는 데에 할애한다. (90~101쪽) 다음은 아니마의 기능에 대한 『영언여작』의 설명을 비판한다. 여기서는 천주교에서 말하는 본성적 욕구와 성리학의 성은 다르며, 덕을 좋아하는 본성에 기인한 것이 아니기에 견강부회일 뿐이다. 결론적으로 신후담은 천주교가 이익에서 나왔음을 밝히고자 한다고 언급한다.
세 번째 비판에서, 유학의 상제와 인간의 혼에 대해 논하고 있다. 유학에서 상제는 만물을 주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것은 상제가 혼백을 유비한 것이 아니라고 비판한다. (130~132쪽) 또한 신후담은 유학이 실리가 있는 학문인 것에 비해 서학은 실체가 없는 학문이라고 비판한다. 전체적으로 신후담은 서학을 허학이라는 논지에서 비판하고 유학은 그와 대비하여 실(實)의 학문으로 보고 있다. (영언여작 4 참조) (136~138)
『천주실의』에 대한 비판의 서문에서 신후담은 서학이 불교와 다르지 않고, 유교와 합할 수 없음을 논증하려 한다. 그리고 서학이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학문이라는 것을 재차 강조한다. 또한 음양설을 통해 천주의 천지창조를 비판한다.
리치가 주돈이의 태극도설을 비판하는 것 역시 성리학적 관점에서 재비판 하고 있다. (147~154쪽) 그리고 리치의 학문을 사실상 육구연과 왕수인의 학문과 동일시한다. 리치의 불교 배척의 경우도, 가공의 설을 만들어 배척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159쪽)
다음으로 신후담은 서학에서 이치를 추론하는 것이 혼의 역할이지만, 혼은 곧 기로 기로 이치를 추론할 수 없다고 반박함. (161~163쪽) 다음으로는 수도사가 결혼하지 않음이 불교와 다르지 않고, 천주가 갱생한 것을 어디서도 듣지 못했다며 예숲 갱생설을 비판하고 있다. (163~164쪽)
그 다음은 인문지리서인 『직방외기』에 대한 비판이다. 신후담은 유럽, 아프리카 등을 설명한 『직방외기』를 믿지 않고 중화주의에 입각한 세계관을 고집한다. 또한 조선에도 서학에 관심을 가지는 선비들이 많다고 언급하며, 서학의 설들은 불교 아래에서 탄생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169쪽~171쪽) 또 하나의 특징은 수기를 위한 공부가 아닌 천주를 위한 학문을 한다는 점이다. (172~173쪽) 이후에는 서양 교육 제도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서양의 교육 제도가 조선과 비슷하나, 유학 교육보다 못하다고 비판한다. (174쪽~180쪽) 마지막 부분에서는 천주가 행한 기적들을 비판하며 천주가 성인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180~184쪽)
댓글 0